1909년 10월26일 오전 9시 반에 중국 하얼빈 역에서 총성이 울렸다. 안중근(1879~1910) 의사가 조선 침략의 괴수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사살한 것이다. 안중근은 저격 후 당황한 빛 없이 두 손을 높이 들고 ‘코레아 우라!’(대한만세의 러시아어)를 삼창한 후 러시아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여순 감옥에 수감되었는데 1910년 2월에 ‘견리사의 견위수명’ 글씨를 쓰고 손바닥 도장을 찍었다. 안중근은 3월26일에 현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향년 32세였다.
‘견리사의 안위수명’의 원전은 <논어> ‘헌문’ 편이다. 이를 읽어보자.
자로가 완성된 사람(成人)에 대하여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장무중의 지혜와 맹공작의 욕심 없음과 변장자의 용기와 염구의 재주를 가지고, 예악을 보태어 다듬는다면 완성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말씀하셨다. “오늘날의 완성된 사람은 어찌하여 꼭 그래야만 하겠는가? 이익을 보면 의리에 맞는 지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며(見利思義 見危授命), 오래된 약속일지라도 평소에 한 그 말들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성인(成人)이라고 할 만 하다.”(久要不忘平生之言)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장 헌신적으로 공자를 섬긴 이이다. 그는 위나라에서 벼슬하던 중 내란이 일어나 죽었는데 공자가 소식을 듣고 너무 슬퍼했다 한다.
한편 이(利)는 벼를 뜻하는 화(禾)와 칼을 뜻하는 도(刀)가 한 데 묶인 글자다. 농경사회에서 벼는 재물의 상징인데, 낫으로 벼를 베어 수확한다는 뜻이다. 이는 이익을 취한다는 의미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재물을 취하려는 자는 칼날을 각오하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반면에 의(義)는 아(我)와 양(羊)이 결합된 글자이다. 양은 새의 깃털로 장식한 모양을 의미하며 본래는 위엄을 나타내는 모습이었다. 의(義)는 정의(正義)이다. 맹자는 “의는 사람이 걸어가야 할 바른 길(義, 人之正路也)‘이라고 하였다.
이와 의에 관하여는 맹자의 ‘하필왈리(何必曰利)’란 말이 유명하다.
<맹자> 책 첫 부분에 나온다.
양혜왕(梁惠王)이 천리 길을 온 맹자에게 말했다. “천리를 멀다하지 않고 오셨는데 어떻게 우리나라를 이롭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맹자가 대답했다. “왕께서는 어째서 이익을 말하십니까? 오직 인과 의가 있을 뿐입니다.”
퇴계 이황(1501-1570)도 1568년에 16세의 선조에게 ‘사사로움’을 경계하라고 글을 올렸다.
사(私)는 마음을 파먹는 좀도둑이고 모든 악의 근본입니다. 옛날부터 나라가 잘 다스려진 날은 항상 적고 어지러운 날이 항상 많았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파멸시키고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모두 임금이 ‘사(私)’라는 한 글자를 버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성인의 경지에 이르러서도 혹시나 편벽된 사(私)가 있을까 두려워하여 항상 조심하며 경계하거늘, 하물며 성인에 이르지 못한 사람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주서(周書)>에 이르기를, “성인이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광인(狂人)이 되고, 광인이라도 충분히 생각하면 성인이 된다.” 하였습니다.
그렇다. 공직의 길은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길이 아니다. ‘공직자’는 사익을 취할 일이 있더라도 그 이익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지를 잘 따져보아야 한다.
사업하는 친구가 상품권을 준다고 덥석 받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아무리 친하여도 진실로 호의를 베풀 이유는 없다. 때로는 곤욕으로 돌아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