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학습 근절, 우리는 무엇 할 수 있나
강제학습 근절, 우리는 무엇 할 수 있나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5.08.20 0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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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민단체, 학생, 학부모 모인 원탁토론회
강제학습 피해, 언론 통해 알려져 공론화돼야
구조적 문제 속 강제학습문제 완벽히 해결 어려울 듯

기자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에 학교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느꼈다. 그 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실 당연한 것이라고 느끼는 것 자체도 강제적으로 자율학습이 이뤄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지난 18일 화정동 청소년 문화의 집에서는 ‘강제학습 근절을 위한 원탁토론회’가 열렸다.
광주교사실천연대 활, 광주교육연구소, 광주어린이청소년친화도시협의회, 광주인권운동센터,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광주지부,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등 교육단체들이 주최했다.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KBC광주방송의 ‘강제학습 논란, 언제까지’란 주제의 ‘따따부따’ 방송영상을 시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따따부따에서는 ‘고교생 5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3.8%가 보충수업을 강요한다고 답했으며, 86.3%가 야간자율학습을 강제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답했다’고 소개하며, 현재 시행되고 있는 야간자율학습제가 강제학습임을 강조했다.

현장점검, 단순히 이야기 나누는 수준

또한 광주지역 교육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강제학습대책위원회는 “교육청은 현장점검 결과 야간학습 강제실시는 전혀 없다고 밝혔지만 장학진들이 가서 만나는 사람들이 피해당사자가 아니라 교장 등 교육 관리자들 위주다 보니 단순히 이야기만 나누고 오는 수준”이라며 “피해자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하지 않은 점검은 무효다”라고 지적했다.

교육청에서는 야간학습을 하지 않고 집에 가는 학생이 혹시 탈선하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에 설득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비춰질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입시전문가들은 강제학습이 아이들의 진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학생 스스로 진로를 탐색하고 이에 맞춰 공부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학부모들 역시 강제로 공부시키기보다는 입시트렌드에 맞게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영상시청이 끝나고 이민철 광주 어린이청소년친화도시협의회 실행위원은 지난 6일 시교육청에서 열렸던 교육국장 정책기획관 간담회에서 다뤄졌던 주요 내용을 설명했다.
먼저 ‘자율학습 폐지’냐 ‘강제학습 금지’냐를 두고 봤을 때, 최소한의 합의로 강제학습 금지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로 강제성의 기준에 대해 교육국장이 정리한 내용은 ‘학생이 강제로 느끼면 강제다’이고, 이는 학생인권조례에 근거한 해석이라고 정리했다.

세 번째로 실태조사 결과 학생들은 80% 이상이 강제학습을 하고 있다고 답변했지만, 교육청 장학사들이 조사한 것은 강제학습 0%로 이 사이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실태조사를 하자는 것이다.
교육시민단체 측은 민관합동 공동조사를 요청했지만, 교육청에선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교육국장을 중심으로 전교조가 참여한 TF팀을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실행위원은 “오늘은 강제학습을 멈추기 위해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시민과 어떤 활동을 벌일 것인지 논의하기 위해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이번 토론회 취지를 설명했다.

네가 음악으로 성공할 것 같으냐

이어서 학교현장에서 강제학습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들어보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 고등학교 교사의 발언이 이어졌다.
학생 대표 2명은 자신과 주변 친구들이 강제학습을 어떻게 강요받고 있는지 사실적으로 설명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학생들이 말하는 ‘야자’란 ‘야간 자율학습’을 줄인 말이다.

▲너무 아파서 병원을 가려고 했는데, 조퇴가 아니라 외출로 해서 진료 받고 학교로 다시 오도록 했다. ▲부모님 허락도 맡고 체대 입시학원을 다니겠다고 말했는데, 학원을 그만두고 야자해서 성적을 올리라고 했다. ▲야자를 신청하지 않고, 만약 성적이 떨어지면 다음 학기엔 무조건 야자를 해야 한다. ▲부모님께 외부활동 한다고 해서 허락을 받았는데, 담임선생님이 허락해주지 않는다. ▲음악 하겠다고 중학생 때부터 학원 다니면서 연습 많이 했는데, 담임선생님이 ‘네가 음악해서 성공할 것 같으냐. 그 시간에 차라리 야자해서 공부를 더 해라’라고 했다.

이 중의 한 학생은 “강제로 잡혀서 야간학습하고 있으면서 왜 내 시간을 여기에 뺏겨야 하나 싶어 자살까지 생각했다”며 “어머니가 선생님과 직접 상담하고, 자살예방 교육도 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학생들도 강제로 학습하길 강요받으면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한 학부모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6시가 넘어도 오지 않아 학교에 전화했더니, 바로 야자한다고 해서 이게 현실이라고 받아들였다”며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짠하다고 생각해 하루 정도 야자를 빼고 영화를 같이 보러가자고 했는데, 선생한테 전화가 와서 한번 나가면 야자를 계속 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잘하다가 하루 빼달라는 건데, 화가 났다”고 말했다.
그녀는 “학교에선 성적관리를 해준다고 하지만 심화반 위주다. 성적이든 미술이든 학원에서 다 관리해주고 있다”며 “점점 학교가 공교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제학습 사례 파악 후 계몽방법 고민해야

상일여고에서 윤리를 맡고 있는 노영필 선생은 “입시결과를 더 만들어내야 하는 학교일수록 강제학습이 심하다”며 “수시란 학교생활을 충실히 한 학생을 뽑겠다는 것이고 올해 수시에서 67%를 뽑는데, 실제 정시로 가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은 공교육이 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생인권을 말할 때 주로 폭력중심, 왕따 등 관계중심으로 이야기 하는데, 구체적으로 강제학습의 사례를 파악하고 어떻게 계몽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냐 자율이냐 하는 것은 괜히 시빗거리 만들어 방해하고 있다고 와전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서 참여자들의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됐다.
이종화 씨의 설명을 시작으로 토론은 월드카페 방식으로 진행됐다.
토론이 시작되고, 6개의 테이블에서는 호스트를 중심으로 ‘강제학습 근절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학생으로 보이는 한 여학생은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고 하는데, 왜 최고가 되어야 하죠?”라고 당차게 말하며 도덕과 인성 등이 무시되고 성적만이 중시되는 현 교육실태에 대해 조리 있게 비판했다.
한 학부모는 “최소한 시간을 활용하고, 학교 외 시간에 사회활동 등을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학교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분이 지나고, 토론자들은 자리를 바꿔 기존에 같은 테이블에 앉지 않았던 새로운 사람들과 토론을 계속해나갔다.
각 테이블에서 나온 주요 내용으로는 먼저, 강제학습으로 인한 피해가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과 시민단체들의 활동만으로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을 수 있고, 공론화가 돼야 더 많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강제학습의 문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이다.

교사들, 교육자의 의무 고민해야

또한 학부모와 교사들의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교사들의 경우 왜 교육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쳐야 할 의무감이 있어야 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메리트로 이 직업을 택한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방과 후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 근처가 아니라 집 근처에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입시공부를 하다가 인생공부를 놓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실질적으로 정시를 준비하고 있는 학생들의 통계를 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가능한 정확한 통계로 야간자율학습이 학생들의 진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강제 자율학습을 폐지하더라도 대학은 가야 하기 때문에 학원으로 빠지지 않겠냐는 우려도 있었다.
입시경쟁이 과열화되고, 학벌주의가 만연한 구조적인 문제 속에서 이 문제를 완벽히 해결하긴 어려워 보인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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