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랑의 스승 홍인표 선생을 찾아서
참사랑의 스승 홍인표 선생을 찾아서
  • 신문식 시민기자
  • 승인 2015.08.01 2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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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교육부 선정 "8월의 스승 홍인표" 선생님

▲ 서남교회 비전센터 카페에서 만난 8월의 참스승 홍인표 서남교회 장로님
참사랑으로 학생들의 인생을 바꾼 8월의 스승 홍인표 선생을 만나기 위해서 광주 남구 백운2동 서남교회 비전센터를 8월 1일에 찾았다. 서남교회 비전센터는 백운동 인근이기 때문에 쉽게 찾을 수가 있었다.

교육부의 이달의 스승 선정위원회(위원장 김정호)는 8월의 스승으로 홍인표 선생님(1948 생)을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교육부는 스승 존경 풍토 조성과 교원 사기 진작을 위하여 학교현장에서 오랜 기간 묵묵히 교육에 임하고 제자들에게 존경받는 퇴직 선생님의 미담사례를 매월 발굴하여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게 이야기를 알리고 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 선생님으로 발령을 받았습니까?
-예, 저는 22세였던 1969년 3월에 장흥군 관산 북초등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그 당시는 사회적으로 매우 어려웠던 시절이다. 더구나 농촌학생들은 가정형편이 가난하여 학교보다는 먹고살기에 힘든 시절이었다.

1970년경 초등학교학교 학생들이 육성회비를 낼 수가 없어서 학교 공부를 그만두고 일터나 머슴살이. 서울로 가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학부형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교장 선생님과 가정방문을 하여 교육이 학생들의 미래를 바꾸고 학생들의 인생을 바꿀 것이라고 초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고 설득하려 했으나 가난에 시달리는 학부형들을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닭을 사주었다는데 왜 닭을 사주었습니까? 물었더니 한참 생각하시더니,
-예, 저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내고향은 승주군 외서면 장산리다. 가난한 생활을 해보지 않으면 가난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관산 북 초등학생들은 학교 육성회비 납부하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을 설득하여 병아리 750마리를 사주라고 졸랐다. 교장 선생님의 허락으로 학교 사택에서 병아리를 길렀다. 병아리를 사육하는데 기술이 없어서 책을 사서보고 주사도 주고 했는데 추위에 한 50여 마리를 잃고 말았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인연을 만났다.

☞인연이란 무슨 인연입니까? 좋은 인연입니까?
-예, 아주 좋은 인연이었다. 하루는 중국에 '반하'를 수출하는 업자를 만났다. 그분께서 '반하' 두 홉만 모아오면 닭 한 마리 값을 주겠다고 했다. 그 당시 '반하'는 약초로 사용하는데 논에 자생하는 풀로써 논밭에 널려있었다. 기회였다.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반하'를 모았다. 그리고 '반하' 수입으로 병아리를 키우면서 발생한 모든 비용을 갚을 수가 있다.

또 하나의 인연은 닭 유행성 병 “뉴캐슬”을 만났다. 관산지역에 닭 병이 왔다. “뉴캐슬”이라는 닭 병인데 관산에 마을 전체가 전멸하다시피 했으나 학교에서 사육한 닭은 예방주사를 놔준 덕택에 한 마리 희생도 없었다. 닭도 제법 중닭을 넘었다. 금방 알을 낳을 수 있는 닭이 되었다.

☞학생들에게 닭을 나눠줬다고 들었다. 학교에서 사육하지 않고 왜 학생들에게 나눠줬는지? 선생님은 여기서 환한 웃음을 지었다.
-예, 참 그때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닭장 앞에 680여 명의 학생에게 닭을 나눠주는데 그 닭을 받기 위해서 줄 서 있는 맨 뒤 학생은 까마득하게 보였습니다.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이 닭이 달걀을 낳으면 학교에서 모두 매입하겠다. 꼭 학교에다 팔아라.”고 당부를 했다. 이 닭들이 알을 낳으면 그 당시 10원이었다. 육성회비는 300원이었다. 매일 낳으면 육성회비를 마련할 수가 있어서 학교에다 팔라고 했다. 그 당시에 달걀업자가 매입해갔다. 학교에서 보급해준 닭이 아닌 다른 닭이 낳은 달걀도 학교에다 팔았다. 학교 달걀 값이 시장보다 좋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사육해서 나눠주었던 그때 그 시절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닭은 학생들에게 무엇이든지 열심히 일하면 자생력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물론 중학교 입학금까지 마련하는 경제활동을 가르쳐준 것이다.

▲ 백운2동 서남 비전센터.
☞그럼 닭 사육 외에 다른 사업은 안했습니까? 물었더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신앙생활로 몸에 뵌 매우 다정한 목소리로,
-예, 학생들의 가난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계몽을 하기 위해서 유실수 심기 운동을 했다. 유자나무를 심었다. 유자나무를 심어서 수학여행을 갈 수 있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또, 교장선생님과 협의해서 밤나무를 심었다. 시장에서 밤 15가마를 사서 네모공간을 만들어서 약초를 뿌리니 벌레가 전부 나왔었다. 모래와 황토를 썪어서 이듬해 3월에 싹이 나놨는데 12만 본의 밤나무를 심었습니다. 그 밤들은 쥐 밤이므로 종자를 개량하기 위해서 접을 붙여야 한다. 그래서 군 산림조합을 찾아가서 접사(묘목에 접을 붙이는 사람)를 요청했는데 쾌히 승낙하고 37명의 접사가 꼬빡 3일간을 작업했다. 산림조합 측에서도 감동했다. 관산에 밤나무가 많이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관산북초등학교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셨군요?
-예, 선생으로서 학교에 학생들이 있어야 설자리가 있다. 학생들이 가난 때문에 학교 교문을 나가는 모습은 선생으로서 너무 가슴 아팠다. 그래서 닭 사육하기. 유자나무 심기. 밤나무 심기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보고서를 썼는데 대통령상(홍조근정훈장 제17955호)을 받았다.

나에게는 의미 있는 일이었고 그 덕분에 광주시내 백운초등학교로 발령을 받는 행운을 얻었다. 부부교사였으며 우리 집사람은 이듬해 3월 1일자로 광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 IMF 당시 금 모으기에 대한 보고서도 썼다. 그런데 그 당시 인수위에서도 금 모으기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산북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학생들이 패기가 없어서 핸드볼을 가르쳤다. 1교 1운동을 실시하는 때였다. 핸드볼을 가르쳤는데 관산북초교는 핸드볼 지정학교가 되었다. 돈은 없어서 고기는 못 먹이고 개구리를 잡아서 삶아 먹이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면서 열심히 한 결과 첫해에 준우승의 영광을 차지했다.

또 악단 밴드를 만들어서 관산극장에서 연주하는 것이나 관산시가지를 악단이 연주하며 누비고 다녔던 행사는 기억에서 생생한 의미 있는 일이었고 자신감을 주었던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관산 극장에서는 극장이 생긴 이래 이처럼 많은 관객이 오기는 처음이라고 할 정도였으니 참 기억에 남는 일이다. 밴드 악단은 학생들에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으며 이들은 희망을 연주하고 관산을 웃게 했던 참으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홍인표 선생은 이상의 행적들이 초임지인 관산북초교에서 근무할 때 학생들을 위해서 학교를 위해서 지역사회를 위해서 피와 땀을 흘리면서 선지자적인 참사랑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백운초교. 상도초교 성남분교장. 의성초교 모도분교장. 나주중앙초교. 금천초교. 목포대성초교. 목포한빛초교. 명덕초교. 장흥초교까지 이시대가 원하는 참사랑 교육 39년간은 학부형과 학생들에게 감동을 주었으며 퇴임 때의 감사의 편지를 보면 선생의 참모습을 알 수가 있다. 기회가 되면 참 스승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를 게재하고 싶다.

그리고 많은 표창 중에 문교부장관상. 과학기술처장관상. 국민일보 남강문화재단 남강교육상. 국무총리상. 한국교원단체 총연합회장상. 미션21신문사상. 대통령상으로 봐서 시대가 요구하는 참사랑 스승이었다.

39년간 평교사로 재직했던 홍인표(서남교회 수석장로)선생은 손을 잡아주고 대화를 하고 학생들의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이 가난했던 시절, 교육이 미래를 바꾸고 인생을 바꾼다는 철학을 심어주기에 심혈을 기우렸다. 그 결과 수천 명의 제자들의 가슴에 항상 「그리운 참스승」으로 남게 된 것이다. 광주 서남교회부근에는 제자들이 걸어놓은 대형 현수막이 붙어있다.

▲ 서남 비전센터 벽에 걸어 놓은 제자들의 축하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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