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그녀의 후회
우아한 그녀의 후회
  • 채복희 시민의소리 이사
  • 승인 2015.06.1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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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선배 한분이 있다. 국내 유명 사립대학을 나와 평생 전문직에 종사하다 퇴직한, 60 후반의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는 여성분이다. 세계여행도 두루 했고 젊었을 때 보면 늘 책을 손에 들고 있었으며 얼마 전 번역책 한권을 출간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이분은 스스로 자신을 보수라 일컫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체제가 안전하게 유지되는 가운데 예의바른 변화를 추구하며 주어진 역할에 최대한 충실한 삶을 살아온 당사자의 모습 자체가 그러하다. 염색은 하여 윤기나는 검은 머리에 투명한 피부가 아직도 곱다. 다만 눈과 입 주변, 목 언저리에 생겨나는 주름은 어쩔 수 없는 세월의 잔인함을 확인하게 만든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서울로 유학했고 호남 남자와 만나 광주에서 조금 산 적이 있는데, 전라도 정서가 아직도 데면데면 낯선 것이 많다. 간혹 대화 중 “에휴~ 000###” 하면서 은근 지역폄하 발언을 한다. 물론 평생의 반려자이자 든든한 지원자인 ‘전라도 출신 남편’이 구체적 공격 대상이다.

선배의 집에 초대돼 두어번 맛있는 밥상을 받아 본적이 있다. 단호박을 갈아 요플레를 섞어 만든 스프가 투명한 유리컵에 담겨 전체요리로 나왔고 발쌈 소스가 끼얹어진 야채샐러드, 잘 구워진 바케트 빵, 그리고 완두콩과 검정쌀이 들어간 현미잡곡밥, 괴미있는 전라도 김치, 김 등이 차려졌다.

가짓수는 많지 않았으나 손질이 많이 간 즉석 요리와 김치를 얹어 김에 돌돌 만 김밥은 완벽한 밥상으로 만족 200%였다. 냅킨을 멋스럽게 접어 얹은 센스는 역시 본 것이 많고 다닌데 많은 선배다웠다.

그런 그녀가 지나 버린 두 번의 대선에서 여당 후보를 연이어 찍었다. 특히나 3년전 선배는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후보에게 지지와 기대를 가득 모아 보냈다. 마초 사내들과 그들의 근거없는 권위, 협잡과 모략에 찌든 양아치 수준의 남성 정치꾼들에게 물릴 데까지 물린 선배다운 선택이었다.

‘싸가지 없는 진보’의 무례함에도 뉘가 나 있었고 ‘그X이 그X’인 역량 총량의 법칙을 깰 돌멩이도 필요했다. 그리고 당시 최초의 여성대통령 감은 선배가 지향하고 있는 세련미와 고품질 선진사회로 나아가는데 맞춤한 격을 가진 것으로 판단되었다.

하지만, 3년이 채 못 미친 오늘, 오랜만에 만난 선배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서도, 유가족들의 아픔에 동조하지 않는바가 아니었지만, 광화문 광장의 ‘어지러운’ 모습과 지원을 빙자해 모여든 ‘불순세력’을 경계하던 그녀였다. 그렇지만 이제 선배는 고백한다. “이렇게 무능한 줄 몰랐어, 그녀에게 투표한 걸 정말 후회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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