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길을 걸어요(2)구성로, 전두환 조상으로 잘못 알려져
함께 길을 걸어요(2)구성로, 전두환 조상으로 잘못 알려져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5.06.03 18: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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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상의(全尙毅) 장군 광주 3대 충신으로 알려져

도로명 주소로 바뀐 지도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도로명 주소가 잘 정착되고 있는지, 시민들은 자신들이 사용하고 있는 도로명과 그 유래는 잘 알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그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터이다. <시민의소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지역공동체캠페인 사업으로 '함께 길을 걸어요'라는 프로젝트로 도로명 홍보에 나선다./편집자주

▲구성로 입구
“익숙하지 않으니까 도로명 주소가 더 어렵게 느껴진당께”

도로명 주소가 바뀐 뒤 1년이 지났지만 도로명 주소로 본인의 집주소를 외우고 있는 시민들은 얼마나 될까.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OO동에 산다고 답하고, 잘 알아듣지 못하면 인근에 있는 관공서나 큰 건물의 이름을 말한다.

신 주소로 바뀐 주소는 ‘OO로’를 지나는 길에 순서대로 번호를 매겨 도로명만 잘 알고 있다면 위치가 어디쯤인지 가늠하기가 오히려 더 쉽다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

그렇다면 동(洞)이름이 아닌 도로명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자기 집의 도로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는 광주시민은 얼마나 될까?

구성로 입구 닭전머리로 더 많이 알려져

서구, 남구, 동구까지 이어지는 구성로(龜城路)에서 만난 한 시민에게 이 근처에 살고 있느냐고 물었다. 50대의 남성인 한 시민은 “양동에 산디 왜 묻는 당가? 근디 여기는 닭전머리라고 하면 척이면 척 다 알아

들어블제”라며 “뭐? 구성로? 아, 인자 구성로라 부르라고 그런께 구성로인갑다 하는거여”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양동 방향으로 돌고개를 지나 좌측에 닭전머리로 빠지는 길부터 구성로가 시작된다. 그 길을 따라 구성로는 월산사거리까지 이어진다. 구성로는 월산사거리에서 남구 빛고을 아트스페이스 방향으로 이어지다 광주대교를 지나 동구에 위치한 광주고등학교 오거리 앞에서 끝난다.

현재 구성로 1은 빈 건물로 사용하고 있지 않고 있어 알루미늄셔터가 굳게 내려져있었다. 기자가 구성로를 찾은 당시에는 좁은 골목에 도시가스 인입 배관 및 연결공사가 진행중이라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있었다.

닭전머리라고 불리는 이곳은 용하다는 소문난 점집과 철학관이 즐비해 있고, 캄캄한 밤이 되면 빨간 네온사인으로 뒤덮인 동네로 변해 자동차가 아니면 지나가기 꺼려지는 길목이기도 하다. 지나가는 길목에는 양동 건어물 도매시장과 달뫼 평안길 입구를 볼 수 있다.

오래전 옛길, 장년층 남성 많이 다녀

그렇게 월산사거리에서 광주대교를 지나면 1971년에 문을 열어 오래전부터 불낙맛집으로 유명한 삼희식당이 구성로에 위치해 있다. 70~80년대 구성로 인근에 위치한 명성예식장에 예식이 있는 날이면 이곳은

사람들로 발 딛을 틈이 없었다고 한다.

구성로는 금남로를 가로질러 반도전자 도매상가를 지나 대인시장을 따라 계림동 광주고 앞에서 끝난다. 이 길목은 성인 오락실 등이 위치해 있어 풍문으로 듣기로 특정요일에는 이른바 ‘말밥’을 주러온 중·장년층 이상의 남성들이 많이 지나다닌다고 한다.

약 3km정도 되는 구성로를 따라 걸으면 광주에 그렇게 많다던 아파트를 볼 수 없다. 구성로는 오래된 낡은 건물들이 아직까지 자리 잡고 있고, 이 길을 따라 지나가는 연령층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장년층 이상의 중절모를 쓴 어르신들이 걷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구성로는 정묘호란(丁卯胡亂)의 충신인 전상의(全尙毅) 장군의 아호를 딴 도로명이다. 전상의 장군의 호는 구성(龜城)으로은 1575년 광주 남구 구동에서 태어났다. 29세에 무과에 급제한 그는 1617년 일본에 건너가 포로 150명을 생환하는데 공헌을 했다.

구성로, 전상의 장군 기리는 길

1622년 정묘호란때는 평양에서 서울로 통하는 관문인 안주성(安州城)을 사수하고자 안주성 남영인 백상루를 지키기도 했다. 그렇게 홀로 백상루를 지키던 전 장군은 적과 싸우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상의 장군은 김덕령, 고경명 장군과 함께 광주 3충신으로 불려졌다.

그런데 김덕령 장군의 충장사와 고경명 장군의 포충사는 잘 알려져 있지만 전상의 장군은 익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성 씨가 같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조상으로 잘못 알려져 광주시민들에게 외면을 받았다고 한다. 구성로는 이러한 맥락에서 되새겨보면 꼭 기억해야하고, 더욱 의미 있는 도로명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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