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기록유산 콘텐츠화(8) 고문서
호남기록유산 콘텐츠화(8) 고문서
  •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
  • 승인 2015.05.2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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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고문서 5만 여점 추정, 의미 있는 원천자료 발굴, 가공, 유통 목표
우리 지역 고문헌 연구는 우리 지역에서 해야

우리 지역은 예향, 의향이라고 불린다. 예술을 사랑하고 의리를 중시하는 선비들이 많은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이렇게 불리게 된 것으로 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예향, 의향이라는 이름값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난 주 부부의 날을 맞아 경북 경산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나라얼연구소에서 책 한권을 발간했다. 먼저 간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조선 선비의 사부곡(思婦曲)인데, 임재당(任再堂, 1678~1726)이란 선비가 1724년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한문으로 쓴 일기를 번역해낸 것이다.

▲1796년에 국왕이 김인후에게 내린 추증교지
전혀 놀랄 일은 아니다. 선비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자신이 죽기까지 2년여 일기를 쓴다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그러나 필자가 놀란 것은 이 일기 원본이 작년에 대구 고서점에서 발견되었고, 이 일기를 쓴 임재당이 보성 선비라는 사실이다. 입으로는 예술, 의리의 고향입네 떠들어대면서 이 지역 고문헌을 타지에서 떠돌게 해서야 예향, 의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소한 우리 지역 고문헌은 우리 지역에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우리 지역에 관한 연구를 서울이나 안동에 가서 해야 한다면 그 자체로 안타까운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지역에는 이미 조선대에 한문학과가 있고, 조선대, 전남대 대학원에 한문고전번역학과도 있어서 이미 100여명의 한문 해독 가능 인재들이 재학하거나 배출된 상태이다.

우리 지역 고문헌을 우리 지역에서 연구하고 번역할 수 있는 역량이 이미 갖추어져 있는데도 언제부터인지 우리 지역의 고문헌들이 우리 지역 밖에서 번역, 소개되어 역수입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한번쯤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볼 일이다.
▲1683년 국왕이 이신의(李愼儀)에게 내린 교지
호남지역 고문서 조사와 현황

호남지역에서 고문서 조사는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개별적인 조사가 진행되다가 1980년대 시군단위로 문화유적 학술조사를 시행하면서부터 좀 더 체계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이후 문화재관리국, 국사편찬위원회, 문화재청 등에서 지역단위 조사가 실시되었고, 대학박물관을 중심으로 몇 개 시군의 고문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전북지방에서는 고창군(1984), 김제군(1986), 남원군(1987), 장수군(1988), 순창군(1988), 진안군(1989), 임실군(1990), 전주시(1995) 등의 조사가, 전남지방에서는 함평군(1993), 영광군(1993), 담양군(1995), 곡성군(1996), 장성군(1999), 순천시(2000) 등의 조사가 이루어졌다.
다음으로 한국 전적 종합 조사가 1984년 이루어졌다.

호남지역은 광주시, 전라남도가 1983월 7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41개소, 전라북도가 1984년 7월부터 같은 해 12월 30일까지 7개소의 고문서 조사가 있었다.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주관한 지역사 자료조사가 1997년부터 진행되었는데 호남지역 고문서 조사는 전라남도 8개 과제, 전라북도 9개 과제 등 총 17개 과제로 나누어 추진되었다. 또 2005년에는 문화재청의 일반동산문화재 조사를 통해 고문서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이후에는 별개로 자치기구나 관련연구기관에서 수행한 조사가 있었다.

전남권은 목포대학교에서 74개소를 일괄 조사하여 고문서 5,472건을 조사하였고, 전북권은 전북대학교박물관, 전주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예원예술대학교 전북역사문화연구소 3개 기관에서 11개 시군을 조사하여 고문서 33,536건을 조사하였다.

소장처 별로 보면 전북대박물관이 19,000여점으로 제일 많고, 국립전주박물관이 5,400여점, 원광대박물관이 3,300여점을 소장하고 있으며, 전남의 경우 순천대박물관이 3,500여점, 전남대, 목포대박물관이 각각 1,000여점, 옥과미술관이 간찰 약 5,770여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들 조사를 통해 현재 파악된 호남의 고문서 수량은 전체적으로 50,000여점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조사는 특정 지역과 한정된 주제로 진행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 최소 5배는 더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무술년(1898) 10월 26일 최익현(崔益鉉)이 추당(秋塘) 윤항식(尹恒植)에게 보낸 편지

호남지역 고문서 DB화

우리 지역 고문서의 DB화 현황을 보면,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전북대박물관과 순천대박물관에서 호남지역기록문화정보시스템(http://honam.chonbuk.ac.kr/)을 구축하여 약 1만 8,000여점을 DB화 하였고, 2008년부터 현재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자료센터 호남권역(http://www.kostma.net/)에서 전북대와 조선대가 12,298여점을 DB화하였다.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는 2010년부터 문광부의 지원을 받아 호남기록문화유산 발굴ㆍ집대성ㆍ콘텐츠화의 일환으로 고문서 이미지, 탈초, 해제 등을 DB로 구축하고 있다.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는 이들 국책사업과 중복을 피하면서도 호남지역기록문화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최근 3~4년 동안은 한글편지와 한문편지 위주로 DB화 작업을 진행해서 현재까지 915점의 고문서가 탑재하였다. 물론 1차 사료로서의 옛 편지에 대한 중요성 인식 때문에 편지 위주로 DB화 작업을 수행한 점도 있다.

옛 편지는 교통이 불편하고 통신수단이 미흡했던 시대에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소통수단이었다. 친지 사이의 안부와 소식을 전하는 사교적 연결망이었고, 사우(師友)간에 학문적 논쟁을 통한 자기 성숙의 매개체이기도 했다. 편지쓰기는 조선시대 양반에게 일상적인 일이었다. 안부, 경조사, 물을 일, 부탁할 일, 선물할 일 등이 있을 때 편지를 주고받았다.

자식의 과거합격을 위해 종이와 붓을 구하는 일, 노골적인 청탁이나 송사문제의 도움 요청, 유배인의 생활, 선물의 증여, 간찰의 유통, 세금을 둘러싼 갈등, 사상적 논쟁, 부모에 대한 효도, 자녀의 교육과 혼인, 질병에 대한 조언, 친구들 간의 우정 등 선비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그 안에 풍부하게 담겨 있다. 하영휘는 조선사회를 혈연, 지연, 학연 등 갖가지 인연에 따라 오고가는 편지가 만든 촘촘한 그물로 통합되어 있는 ‘왕래망 사회’라고 명명했다.

옛 편지에는 발신자의 생활공간과 활동영역 그리고 인간관계의 범위가 생생하게 간직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선비들의 생각과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실로 옛 편지는 우리 민족의 얼과 사상을 간직하고 있는 문화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다.

고전에서 새로운 동력을 얻어야

뿌리가 없는 문화는 얕은 개울물과 같아서 큰 배를 띄울 수 없다. 가벼운 바람에 쉽게 흔들리고 뒤집힌다. 소리 없이 잔잔하게 오래갈 수 있는 문화의 동력은 고전에서 나온다. 고전에 뿌리를 두어야 그 문화가 산과 강처럼 단단하고 오래갈 수 있게 된다. 2014년에는 서울 인사동에서 표구점을 하는 표구학(장황학)의 권위자인 이효우 선생이 고문서의 중요성을 깨닫고 평생 모은 호남지역 고문서 700여점을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 기증해 주었다.

이효우 선생은 “평생 모은 호남지역 고문서를 지역 고문헌 연구을 가장 열심히 연구하는 곳에 기증하고 싶었다”며 “호남의 지방 문헌을 연구하는데 긴요하게 쓰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기증 문서들은 호적문서, 간찰, 고목(告目), 혼서(婚書), 고강(考講), 제문, 통문 등이다. 주로 나주의 초동 이씨, 영광의 수성 이씨, 신안 하의도 김해 김씨, 강진의 밀양 박씨, 나주 남평의 경주 최씨 및 문익점 후손 가문에서 작성한 것들로 17세기부터 19세기에 걸친 조선 후기 호남의 고문서들이다.

이들 문서는 당시 지역 사정이나 사회 실상을 담은 사료로서 매우 중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선생의 바람에 부응하기 위해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에서는 2015년에 선생이 기증한 고문서 일부를 탈초, 해제하여 호남기록문화유산 홈페이지(www. memoryhonam. co. kr)에 탑재할 계획이다.

고문서 연구는 자료가 생명이다. 많은 고문서가 아직도 먼지가 내려앉은 곳에 방치되어 좀이 슬거나 산화되어 가고 있다. 혹 문중이나 개인이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는 경우에는 전남대 호남한문고전연구실(062-530-5022)로 연락을 주거나 저희 호남기록문화유산 홈페이지 ‘시민참여란’을 활용하여 문의해주길 바란다. 우리 지역 고문서 소장 문중이나 연구자들의 깊은 관심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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