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의 미래 먹거리, 공장굴뚝보단 자연을 4
전남의 미래 먹거리, 공장굴뚝보단 자연을 4
  • 성주=권준환 박용구 기자
  • 승인 2015.05.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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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조성한 비보림, 후손들의 자랑거리 되다
최근 전남도가 발표한 ‘숲속의 전남’ 10년 계획이 그 동안 진행돼왔던 단발성이고 관 주도의 사업형태에서 벗어나 도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사업이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시민의 소리>는 전남도의 ‘숲속의 전남’ 10년 계획을 점검하고, 국내 및 해외 우수사례 취재를 통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기획보도 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취재진은 88올림픽 고속도로를 타고, 경상북도 성주군으로 향했다. 88고속도로는 현재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공사가 곳곳에서 진행 중이었다.
공사가 완료되면 지금보다 더 안전하고, 영호남 교류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 같다. 공사로 인해 위험천만한(?) 고불고불한 길을 달려, 겨우 성주에 도착했다.

   
 
참외향이 진하게 나는 동네라, 눈을 감고 있어도 이곳이 성주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주읍으로 이어지는 경산교(京山橋)를 막 지나자 오른편으로 거대한 왕버들 나무들이 있는 성밖숲이 보였다. 한창 ‘2015 성주 생명문화축제’가 성밖숲에서 열리고 있어 많은 방문차량들이 줄지어 서있었다. 빨간 모자를 쓰고 해병대 군복을 입은 할아버지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고, 근처 골목들은 차량이 출입하지 못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간신히 안내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주차를 하고 성밖숲으로 향했다.
입하(立夏)를 지난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넘은 탓인지 여름 날씨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햇볕이 뜨거웠다. 성밖숲은 멀리서 봐도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로 큰 왕버들 나무들이 넓은 그늘을 만들고 있었다.
할아버지들은 이천변에 있는 벤치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한 무리의 유치원생들은 소풍을 나왔는지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생명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행사장이 나왔다.
행사장 한 가운데에는 거대한 왕버들 한 그루가 있다. 이 나무를 중심으로 빙 둘러 놓아진 벤치 위에 마을 주민들이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성밖숲, 흉사 막기 위한 비보림으로 조성

성밖숲은 왕버들 숲으로서 생물학적 가치 외에도 향토성, 민속성, 역사성 등의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돼 1999년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됐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지만, 성주 일대에 둘러져있던 토성인 성주읍성 서문 밖에 위치했다고 해서 성밖숲이라고 불려왔다.
성밖숲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조성된 인공림이다. 풍수지리설에 의한 비보임수(裨補林藪)인 동시에 하천의 범람으로 인한 수해를 예방하기 위해 조성된 수해방비림(水害防備林)이기도 하다. 수령 300~5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왕버들 55주가 자라고 있다.

경산지(京山志) 및 성산지(星山誌)의 기록에 따르면, 조선 중엽에 성주 일대에서 아이들이 이유 없이 급작스럽게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지관(地官)은 마을의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가 서로 마주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사이에 숲을 조성하면 흉사(凶事)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천(伊川) 강가에 밤나무 숲을 조성했지만, 임진왜란 이후 마을의 기강이 해이해지고, 민심이 어지러워지자 밤나무를 베어내고 왕버들로 숲을 다시 조성했다.

성밖숲의 왕버들 나무들의 키는 평균 12.7m, 둥치의 둘레는 평균 3.1m 정도다. 이 나무들은 무척 신기하게 생겼다. 기묘하다고 하면 어울릴 것 같다.
연리지(連理枝)처럼 보일 정도로 큰 줄기 두 개가 각각 자라고 있는 나무도 있었고, 나무가 오래되고 몸집이 커지다보니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비스듬히 기운 나무들도 많았다.
그래서 성주군에서는 지지대를 설치하고 수시로 정비하고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면 그곳의 땅은 다져지고, 길이 생긴다. 하지만 땅이 다져지면서 나무들의 숨구멍을 막기도 한다. 때문에 99년도 성밖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당시만 해도 59주였던 왕버들 중 생육환경의 불량으로 현재 55주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왕버들 아래에 키 작은 맥문동(麥門冬)을 빼곡이 심었다.

원래 목적은 왕버들 뿌리에 해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의 발길을 막아 왕버들의 생육환경을 보장한다는 것인데, 의외로 또 다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7~8월에 연한 보라색으로 피는 맥문동 꽃무리들이 왕버들 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이 연출된 것이다.

마을숲 시설물 등 관리부분 우수

성밖숲은 문화재청이 ‘마을숲 보존관리 매뉴얼’을 마련하기 위해 2008년 실시한 연구용역 보고서에서 휴게시설, 놀이시설, 운동시설, 기념구조물, 화장실 등의 시설물관리 부분과 접근도로, 주차관리, 쓰레기관리, 안내물 설치 등 기타관리 부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기념구조물 및 운동시설이나 놀이시설 등이 전부 숲 외곽으로 빠져있다. 성밖숲의 장소성 및 역사성을 바탕으로 한 특색 있는 공간의 재창출을 목표로 숲을 다시 재생시키기로 해 이동시킨 것이다.

현재 왕버들나무 군락지 바로 옆의 넓은 공간에서 생명문화축제를 비롯해 성주의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지금은 왕버들이 아닌 느티나무나 벚나무 등이 심어져 있지만 원래 이 공간도 왕버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성주군은 ‘성밖숲 종합정비계획’을 세워 전통적인 마을 비보림의 역사적 가치를 되살리고 숲의 원형을 보존·확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나가고 있다.
게이트볼장이나 중앙광장 등의 기존 시설물을 제거하고 유휴 공간에 수목의 생육환경을 고려한 수목을 이식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설물을 전부 없애고 숲 조성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주민편의 증진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설물 배치는 각 시설의 선호성, 접근성, 시설지의 특성과 제약성, 시설지 상호간의 관련성, 주변 경관과의 조화성을 고려해 이용편의를 증진시킬 수 있도록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실제로 성밖숲의 기념조성물들은 한쪽 구석에 전부 모아 진열해 놨다.

숲과 사람이 공존하는 숲 목표

또한 ‘성밖숲 이야기길’을 조성해 성밖숲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기 위한 스토리보드 도입과 더불어 음악이 흐르는 길로 방문객들이 성밖숲을 걸으며 가족과 이웃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왕버들 숲의 확장을 위해 ‘참여의 숲’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계획도 눈여겨 볼만하다.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방식이 아니라 계획에서 운영까지 지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숲을 조성해간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민의 기부와 자원봉사를 활용한 관리, 참여를 통해 변화할 수 있는 가변적인 공간 형성 등으로 ‘숲과 사람이 공존하는 숲’이라는 목표를 반영했다.

이 종합정비계획에 따르면 성주군 및 성밖숲의 특성에 부합하는 정체성과 생태적 특성을 고려해, 생육과 유지관리가 용이하고 계절성을 느낄 수 있는 향토수종 위주로 수목을 선정할 계획이다.

성주군 문화재팀의 박재관 주무관은 “성밖숲이 단순히 지역주민이 휴식하는 장소가 아닌 새로운 가치를 재창출하고, 새로운 복지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정주환경을 개선하고 삶의 질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성밖숲은 우리의 선조들이 흉사를 막기 위해 만든 인공 숲이긴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문화재로서, 근사한 휴식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숲 속의 전남’ 10년 계획은 후손들이 고마워 할 수 있는 숲으로 만들자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전남이 이 계획대로 숲으로 둘러싸인 자원을 갖는다면 후에 반드시 전남의 먹거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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