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자 남도의례음식장, "전통음식에 인생을 담다"
최영자 남도의례음식장, "전통음식에 인생을 담다"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5.04.28 05: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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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같은 만남, 그것으로 평생 행복해

최씨는 1936년 광주 동구 충장로에서 광주의 명문가로 손꼽히던 탐진 최씨 가문에, 6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일본 유학을 한 아버님과 역시 일본 유학을 마친 신여성이었던 어머님 사이에서 때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최씨와 음식과 운명적 만남의 시작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최씨의 집안은 종갓집으로 대소사가 많아 자연스럽게 전통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배우려고 했던 것은 아니겠지요. 그런데도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이 완성되는 과정을 보면 그렇게 즐겁더라고요. 그때도 손끝이 야무지다는 칭찬을 많이 들었어요.”

결혼 후 전통음식에 잠시 멀어졌던 최씨는 우연한 기회에 다시 전통음식과 해후한다. 최씨의 친정 고모였던 이연채 여사(1989년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의 권유로 의례음식을 만드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다.

초대 기능보유자인 이 여사는 70여 년 동안 대표적인 의례음식인 폐백·큰상·제사음식 등 향토전통음식을 후진들에게 전수했다.
특히 폐백닭, 신선로탕(열구자탕)은 독보적인 솜씨를 갖고 있었다. 그렇게 스승으로서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로서 의지하던 이 여사가 1994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최씨는 홀로 남도 의례음식 연구와 계승에 몰두하게 된다.

그리고 2002년 12월 드디어 광주시 무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남도의례음식장의 거장으로서 자리에 오르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음식은 제 운명인 것 같습니다. 고모님이 굉장히 깐깐했는데 제 작품을 보고는 흐뭇해 했지요. 혼도 많이 났지만 배우는 과정이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고모님의 제자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우리 전통음식의 맥을 잇는 문화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할 일은 전통음식을 많이 알리는 것입니다.”

최씨에게 전통음식을 전수 받은 제자들은 현장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그 중에는 현재 광주대학교 호텔조리학과 겸임교수이자 최씨의 딸인 이은경 교수도 포함된다.
이 교수는 의례음식이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라 어린 시절부터 최씨를 조금씩 도왔다. 어머니가 하던 일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이 교수가 전통음식의 길로 들어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 교수는 현재 대학에서 후학도 양성하지만 서구 농성동에 연구소를 설립해 의례음식의 명맥을 잇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 소중하게 지켜야

사람이 태어나서 성장하고 생을 마칠 때까지 누구나 지나는 생의 여러 길목이 있다. 출생과 성장, 죽음이 그것이다. 인생의 통과의례에는 규범화된 의식이 있고, 그 의식에 반드시 따르게 마련인 음식이 있다. 이것을 의례음식이라 한다.

산모가 아기를 낳기 전, 삼신상을 차려 순산을 기원하고 순산 후에는 삼신상에 올렸던 쌀과 미역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끊여 산모에게 먹인다.

백일이 되면 하얀 백설기를 상에 올리고 백 사람에게 떡을 돌리고 돌이 되면 돌상을 차린다. 돌상에는 수수팥떡과 무지개떡을 올린다. 이것은 아이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찬란하게 자신의 꿈을 키우기를 바라는 의미가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되고 결혼식을 하게 되면 폐백과 이바지 음식을 준비한다. 이바지란 국어사전에 보면 ‘ 공헌하다’ 혹은‘ 정성들여 보내는 음식’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고이 키워 시집 보내는 딸이 시댁에서 시부모님께 사랑 받고 살았으면 하는 친정 어머니의 바람이 담긴 음식이다.

죽음 또한 음식을 빼놓을 수 없는 통과의례다. 죽은 자를 기억하고 남은 자를 위로하기 위해 한상을 차린다.
언뜻 형식에 치우친 의식처럼 느껴지지만 모든 의식 하나하나에 우리 조상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무탈하길 바라고 건강하길 바라고 행복하게 살길 바라고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다.

“기쁜 일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거나 우리 민족은 음식을 해 기념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음식은 아주 정갈하게 정성을 다해 만들었습니다. 중요한 행사에 예를 다해 음식을 만들었던 것은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지요.”

최씨는 우리의 전통을 허례허식으로 치부하거나 불필요한 의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모든 의식은 자신의 형편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정성스러운 상을 차리면 된다며, 귀찮은 의식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바라면서 정성을 다하는 시간, 그리고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 되길 최씨는 바라고 있다.

최씨는 소중한 우리의 자산을 쉽게 버리려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가슴이 아프다고도 말한다. 전통음식의 뿌리에는 사람에 대한 애정과 정성이 담겨 있다는 최씨의 바람은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고 전통음식의 의미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전통문화는 소중한 자산입니다. 제가 제자들을 양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제자들이 제대로 배워서 후대에 제대로 가르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전통의례 자체를 치르는 사람이 줄어 자연스레 의례음식의 맥도 끊기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의 전통은 반드시 지켜 나가야 지요.”

비를 맞은 무등산 자락의 전통문화관은 고즈넉했다. 폐백음식을 손질하는 최씨의 조심스러운 움직임과 정성을 다해 음식을 다루는 손길, 정갈한 상차림, 우리의 문화, 우리 음식에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아온 최씨의 평생의 시간들을 우뚝 솟아 오른 무등산이 품고 있었다./광주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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