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유배지, 문화 관광자원의 재발견(4)-하
남도유배지, 문화 관광자원의 재발견(4)-하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5.04.23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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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임자도(조희룡) 유배문화 흔적을 따라서
역사 깊은 그늘진 유배문화, 콘텐츠 활용가치 높다
조선시대 전남은 유·무인도는 말할 것도 없이 내륙까지도 ‘죄지은 사람’은 ‘멀리’ 내쫓는 중앙으로부터 가장 ‘먼 곳’ 중의 하나로 유형의 최적지였다. 조선 8도 중 가장 많은 유배인을 맞았던 전남에는 그들이 유배생활을 하면서 현지주민들과 교류를 통해 형성한 유·무형의 유배 관련 유산들이 산재되어 있다. 21세기에는 ‘유배’라는 형벌은 없지만 지난날 유배인들이 만들어낸 부산물들은 그 지역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문화자원, 관광자원으로 재평가 받고 있다. <시민의소리>에서는 역사 자원으로 중요성이 높은 ‘유배문화’를 집중 조명해 전남의 관광 및 문화콘텐츠 사업으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사례와 방안을 찾아 기획보도 시리즈를 연재한다.<편집자주>

1. 프롤로그 - 유배문화의 새로운 가치
2. 삼봉 정도전의 유배지, 전남 나주를 찾다
3. 전남 강진, 다산 정약용의 18년 유배생활
4. 전남 신안군 임자도(조희룡), 흑산도(정약전) 유배문화 흔적을 따라서
5. 남해유배문학관(서포 김만중)의 어제와 오늘
6. 조선시대 유배지 1순위, 제주 추사 김정희 유배길
7. 러시아 이르쿠츠크① 시베리아의 유배문화의 산실, 새로운 역사를 쓰다
8. 러시아 이르쿠츠크② 볼콘스키, 데카브리스트의 도시에서 유배문화를 엿보다-1
9. 러시아 이르쿠츠크③ 트루베트코이,데카브리스트의 도시에서 유배문화를 엿보다-2
10. 유배문화 집결지 남도, 역사·문화 콘텐츠의 재발견

1004개의 섬으로 둘러싸여 천사의 섬이라 불리는 전남 신안군. 수많은 섬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만 교통수단이 크게 발달되어 있지 않다. 이번에는 문인화의 대가인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1789∼1866)의 적거지를 찾아 임자도로 떠났다.

임자도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흑산도와 마찬가지로 배편을 이용해서 들어갈 수밖에 없다. 현재 임자도를 잇는 대교를 건설 중이지만 증도대교와 마찬가지로 10년 가까이 오래 걸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임자도를 들어가기 위해 신안군 지도읍 점암선착장에 점심시간 즈음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암선착장을 들어가기 전 뜻밖에 변수가 나타났다. 선착장 입구로 들어가는 1차선 밖에 안 되는 도로는 2km전부터 관광차량이 줄지어 꼼짝달싹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진리 선착장에 약 4.5km떨어진 이흑암리

이 날은 신안 임자도 튤립축제를 시작한 첫 번째 주말이었다. 선착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너무 꽉 막혀버린 탓에 중간에 차에서 내려 선착장까지 걸어가는 관광객들, 교통지도를 하고 있는 축제 관계자들과 해경이 엉켜 북새통을 이뤘다.

점암선착장에서 겨우 승선권을 구입할 수 있었지만, 먼저 도착해있는 사람들과 승선을 대기하는 차량에 밀려 3시간 만에 임자도행 배에 오를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까다로운 해경의 통제로 인해 줄 지어있던 관광객들은 부족한 매표소, 승선 제한인원 등 이곳저곳에서 불만을 터트리곤 했다.

점암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 정도 걸려 진리선착장이 있는 임자도에서 내렸다. 이곳은 튤립축제기간으로 축제장소로 가는 셔틀버스가 운행 중이었지만, 조희룡의 적거지는 정 반대편에 위치해 택시를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진리선착장에서 약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봉의 유배지는 이흑암리다. 사실 조희룡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조선 제일 가는 매화에 미친 화가였을 것이다.
우봉은 조선후기 화가로써 추사 김정희와 세살 터울로 쌍벽을 이뤘다. 조희룡은 우리나라 역사상 매화를 가장 잘 그렸고, ‘홍매도대련’, ‘매화서옥도’, ‘묵죽도’ 등 명작을 남겼다.

추사 김정희와 문인화로 쌍벽을 이루다

그는 1813년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오위장(五衛將)을 지냈다. 1851년 국가 전례에 따라야 할 기본인 왕실전례(王室典禮)에 개입되어 전라도 임자도에 유배되었다가 1853년에 해배되어 귀향하였다.

한때는 헌종의 총애를 받아 금강산의 명승지를 그리기도 했지만, 철종이 오른 후 안동 김씨 가문에 의해 김정희의 주변인으로 정치적 유배를 당한 셈이었다.

그는 시 글씨 그림에 모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글씨는 잘 따르던 스승 김정희의 추사체를 본받았고, 그림은 난초와 매화를 특히 많이 그렸다. 하지만 김정희는 조희룡의 그림에 문인화 답지 않게 화법만 중시하는 태도를 면하지 못했다고 낮게 평가 하였지만, 그 시대 최고의 화가임에 틀림없다.

택시에 내려 이흑암리에 도착했다. 조희룡이 머물렀던 오두막인 ‘만구음관(萬鷗金館)’ 안내판이 서있었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조희룡 기념비가 서있었다.

이 기념비에 그려진 ‘홍매도대련’ 매화그림은 여백의 미 없이 꽉 채운 듯 용 한마리가 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림을 보고 조희룡은 남자답고 강인해 보이는 사람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다.

그는 대머리에 모난 얼굴 그리고 성긴 수염과 가늘게 찢어진 눈이라 전해지고 몸은 빼빼 말랐다고 전해진다.

만구음관, 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지짖는 집

푯말을 따라 올라간 곳에는 조희룡이 그린 그림들이 비석에 걸려 자리 잡고 있다. 이흑암리는 한적하고 조용한 작은 어촌 마을이다. 비석에 그려진 우봉의 그림을 감상하며 길을 따라 오르고, ‘만구음관’ 현판이 보이는 집으로 다가 갔다.

그가 섬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어땠을까? 흑산도와 마찬가지로 울창한 나무들과 뼛속까지 시린 차가운 바닷바람이었을 것이다.

최해용 이흑암리 이장을 만나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최 이장은 “당시 만구음관이 있었던 자리는 바다와 더 가까운 곳에 위치했고, 현재는 간척을 해서 논으로 바뀌었다”며 “복원된 자리는 원래 자리보다 한참 떨어진 곳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원된 만구음관에 앉아보니 그리 높지는 않지만, 아래로 보이는 섬 풍경이 시원하게 보였고, 시야가 탁 트여 멀리 바다까지 보이는 운치 있는 곳이었다. 이흑암리에 위치한 조희룡의 적거지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안군이 복원사업을 실시하면서 ‘만구음관’이 세워지고 난 후 세상에 그 모습을 다시 나타냈다.

만구음관이란 ‘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지짖는 집’이란 뜻으로 그도 갈매기처럼 그 안에서 처절히 외로움을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처음 임자도로 유배를 왔을 때 조희룡은 자신이 왜 유배를 와야 했는지 화가 나고 분에 찼을 것이다. 그러나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을 다독이며, 다시 시작을 했다.

매화에 미친 화가, 복원사업 이후 관리 소홀

매화그림에 탁월했던 그는 사방으로 매화병풍을 둘러친 방에서 매화벼루에 매화 먹을 갈아 매화그림을 그렸다. 또한 노년에 유배지에서 자신의 화풍과 남은여생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듯하다.

조희룡 적거지 주변에는 흑산도 사리와 마찬가지로 돌담으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잘 복원되어 있는 만구음관과 비석 등은 있었지만 한 쪽에는 무너져 내린 돌담, 잠겨 있는 화장실, 아무 의미 없이 세워진 관리실 등을 보니 그동안 유지관리가 전혀 안 되고 있는 듯 했다. 또한 만구음관은 곳곳은 새똥으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최 이장은 “`조희룡의 유적지를 복원해 놨지만, 실제로 방문객들을 자주 오지 않는다”며 “조성해놓은 공원 인근에 조희룡 기념관을 유치하려고 했지만 땅 값의 시세차이로 인해 대광해수욕장이 위치한 곳에 유치할 수밖에 없었고, 현재 진행중이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조희룡의 유배지였던 신안 임자도는 관광객 수만 7만이 넘게 찾아 섬 중에서도 꽤나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역사 깊은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이 유적지는 홍보가 잘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방문객들의 발길을 끌어당기지 않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현재 임자도에는 조희룡 적거지의 복원사업만 진행되어 하드웨어만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다. 이흑암리에서 와서 우봉의 흔적을 찾아 느끼고, 볼거리가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콘텐츠와 프로그램이 마련해 그늘져 있는 역사 깊은 유배문화의 유적지를 재조명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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