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길 위에서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5.04.23 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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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처음 이 세상 길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추측컨대 그 옛날 인류의 조상들은 수렵으로 살았을 때 나무 열매를 찾아가거나 숲속으로 짐승을 쫓아가는 길, 강으로 물을 마시러 가는 길, 이런 길들이 먼저 생겨났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농경 정착 사회가 생기면서 물물교환 같은 것을 하려 이웃마을과의 교류하던 길, 바다에 배를 띄우러 가는 길, 그리고 조상들의 무덤으로 가는 길 같은 것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그 다음으로 마차가 발명되면서 신작로가 생겨났을 터이다.

길은 인류의 역사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달라져왔다. 그 옛날 괴나리봇짐을 메고 과거 보러 다니던 한양 길은 이제 거의 다 사라지고 자로 잰 듯 반듯한 포장도로가 이리저리 생겨나 자동차가 휙, 휙 내달린다. 사람이 걸어 다니던 길들, 산 넘어 강 건너 몇날 며칠 서울 가던 옛길은 자취없이 사라지고 없다.
언젠가 한번은 그 길로 걸어서 광주에서 서울까지 두 다리로 걸어가 보려니, 그래서 내가 살던 이 땅과 스킨십을 하려니 하고 생각했던 젊은 날도 그 옛길과 함께 아득히 사라져버렸다. 나의 꿈은 그 옛길을 복원하는 것. 길 어디메쯤마다 주막집도 만들리라.

우리 앞에는 과거는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오직 현재만 펼쳐진다. 그윽한 옛길이 사라져버린 직선 길을 보자니 무슨 중요한 것을 꼭 잃어버린 것만 같다. 나는 우리 조상들이 흰 도포자락을 날리며 걷던 그 옛길들을 가능하면 복원했으면 싶다. 그래서 그 길로 삶에 지친 사람들이 며칠이고 걸으면서 몸과 마음의 아픔을 치유받았으면 한다.
포장도로를 보라, 쨍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속도를 부추기는 선, 선, 선밖에 보여줄 것이 없다. 직선으로 난 길은 빠르고 그래서 효율적일지는 모르나 인간의 심성을 되레 고달프게 한다. 곡선 길은 우리의 마음을 은근히 감싸 안는다.

직선은 멀리까지 그 끌을 한눈에 보여주나 곡선 길은 휘돌아가는 그 다음 길을 슬쩍 감춘다. 그 감춘 모퉁이를 돌아가면서 보여주는 아늑한 길이 정답고 이물없다. 구불구불 곡선으로 난 옛길들은 길을 걷는 동안 길이 사람의 동무가 되어주었다.
예를 들자면 아홉구비 문경새재니 하는 길들이 길을 걷는 사람에게 살아가면서 터득할 무언의 진리를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결코 휙 지나가버릴 수 없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다니던 길에는 어디쯤에서는 귀신이 나오기도 했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말했다.

그 쳐녀귀신이 나온다는 묏동 많은 산 아래를 돌아갈 때는 가슴이 떨리고 조마조마했다. 모든 길에는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스토리텔링이 깔려 있었다.
아버지 산소를 찾아갈 때마다 조부장한 그 구불구불 길이 사라져 버린 것에 마음이 너무나 슬펐다. 가버린 세월이여, 너는 아버지가 다니던 길, 내가 아버지 손을 잡고 다니던 길마저 가져가 버렸구나.
그렇게도 멀기만 하던 길, 한 나절을 걸어야 당도하던 함평장으로 가던 길. 그런 길은 이제 없다. 자동차가 아버지 산소 가까이 가서 멈춘다. 자동차가 함평장까지 내달린다.

옛길은 이제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아, 부처가 말하지 않았던가. “나는 옛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가리켜 보여주었을 뿐”이라고. 모든 길은 내 앞에서 시작되고 그 끝은 내 앞에서 맺는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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