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나무 꽃그늘에서
목련나무 꽃그늘에서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5.04.0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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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에 목련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작년에는 목련 꽃이 몇 송이 초라하게 피었더니 올해는 수 백 송이가 눈부시게 피었다. 이미 봄에 필 꽃들은 다 피어 세상이 온통 꽃무리 천지라 어디에 눈길을 둘지 모르겠다. 봄이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양 수많은 꽃들이 시위하듯 피어 있다.
나는 어느 꽃이나 망연자실 죄다 신비감으로 바라본다. 특히 목련꽃은 단단한 나무 등걸에서 연꽃 모양으로 피어난 것이 넋을 놓게 한다. 마치도 지팡이에서 꽃이 피어난 듯하다. 목련꽃이 환하게 피어 있는 목련나무를 보자니 마술사가 보자기에서 비둘기를 꺼내는 장면을 보듯 놀랍고 신비하다.

어떻게 저렇게 단단한 목재 같은 나무 등걸에서 저렇게도 하얀 꽃이 피어날까 감격할 뿐이다. 나는 하얀 비둘기떼가 앉아 있는 듯한 목련꽃 송이들을 하나 하나 세기라도 할 것처럼 목련나무 꽃그늘에 서서 눈이 시도록 바라본다. 하나, 둘, 셋, 넷...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 세상의 모든 목련나무 꽃들을 다 셀 일이 아닌 바에야 그 꽃들을 수로 세어 무슨 재미가 있을소냐.
내가 목련나무에게 무슨 소리라도 지른다면 일시에 하얀 목련꽃들은 하늘로 다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그러므로 나는 목련나무 꽃그늘에서 목련꽃을 피워낸 자연법에 기대어 조용히 내 마음을 자연에 의탁하고 싶어진다.

생명을 얻은 것들은 일생에 한번은 다 꽃이 피는 것이리라. 사람도, 강아지도, 고슴도치도. 장작불을 때다 보면 한 번은 확 하고 불길이 솟아날 때가 있다. 그처럼 세상의 모든 꽃들은 저 스스로 꽃을 피워내면서 다른 뭇 생명들이 꽃 피어남을 비유하는 것만 같다.
석가모니 부처가 꽃 한 송이를 들자 그 많은 제자들 중에 가섭존자라는 제자가 빙긋이 웃었다니 않은가. 석가모니가 천지를 거머쥔 진리를 이심전심으로 제자에게 전하듯 목련꽃도 지금 그 대공사를 인간에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는 영 모른다. 목련꽃이 피어나는 까닭을, 목련꽃이 지는 까닭을. 해마다 봄에 목련꽃은 어김없이 피어서 무슨 말인가를 하는 듯하건만 나는 귀먹은 사람처럼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미럭둥이. 그렇다. 나는 거대한 바닷가에 나온 벌거벗은 어린아이와 같다. 그저 파도쳐오는 바다에 물놀이나 할 뿐이다. 그저 막대기 나무에서 공룡알 같은 하얀 꽃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는 것을 아! 하고 감탄할 따름이다.
목련나무는 꽃을 먼저 피워놓고 나중에 잎사귀가 나기 시작한다. 문장으로 치면 두괄식이다. 결론을 앞에 써놓고 나중에 그 결론을 도출한 과정을 해설하는 격이다. 무슨 결론인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내 좁은 소견에는 그렇게 보인다. 혹시, 목련나무에 꽃이 피어나는 것은 모든 생명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도 해본다.

한 그루 목련나무에서 비롯한 나의 미럭둥이 짓은 여기서 끝난다. 다만 목련꽃이 전하는 단 한 마디라도 알아들었으면 좋으련만 나는 부처를 만나지 못해 그저 모를 뿐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세상천지는 알고 싶은 것들뿐이다.
그 시작과 끝이 어떤 모양새로, 무슨 뜻으로 우리 앞에 현현하는 것인지.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한 공자의 말을 조금은 알 성도 싶다. 보리수나무 아래서 대자유인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의 간절함도 그렇지 않았을까.
봄은 “보라!”는 말의 집대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도무지 볼 수가 없다. 한 그루 목련나무도 눈이 부셔 다 보지 못하는데 대체 무슨 봄꽃을 또 본단 말인가. 나는 목련나무 꽃그늘에서 시력을 잃고 그만 눈을 감는다. 봄이 가기만을 기다리듯이. 그렇게도 기다렸던 봄이었는데 봄이 왜 이리 쓸쓸한지, 그 까닭을 누군들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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