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과 강항
정유재란과 강항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5.04.02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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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문화연구원장

주말에 KBS 대하드라마 '징비록(懲毖錄)'을 보면서 호남을 다시 생각하였다. 류성룡(1542-1607)과 강항(1567-1618), '징비록'과 '간양록'이 오버랩 되었다.

류성룡은 1604년 7월에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그는 서문에 “ 아! 임진년의 전화(戰禍)는 참으로 참혹했다”고 적었다.

그런데 1592년에 전라도는 전국 8도중 유일하게 온전하였다. 오히려 호남은 병참기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호남사람들은 큰 역할을 하였다. 1593년 2월에 전라순찰사 권율이 이끄는 전라도 군사들은 행주산성에서 이겼고, 김천일 · 최경회 · 고종후 등의 호남의병은 6월 하순에 9일간 진주성을 지키다가 순절하였다.

1593년 7월16일에 한산도로 진영을 옮긴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친구인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호남국가지보장, 약무호남 시무국가(호남은 나라의 울타리입니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습니다)’는 그냥 빈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1597년에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호남은 비참하였다. 7월16일에 왜군은 원균이 이끄는 조선수군을 칠천량에서 전몰시키고 전주로 진격하였다.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코를 베어갔으며, 포로로 끌고 갔다. 남원의 만인의총이 그 흔적이다.
다행히도 9월16일에 이순신이 명량해전에서 승리하여 일본수군의 서해진출을 막았다. 이후 이순신이 군산 근처 고군산도로 진영을 옮기자, 왜군은 보복이라도 하듯 무안 · 해남 · 영광 · 장성 등 전라도 일대를 초토화 하였다.

9월23일에 강항 일가도 영광 앞바다 논잠포(영광군 염산면)에서 왜장 도도 다카도라 부하에게 잡혔다. 강항은 일본 시코쿠 지역의 오즈성(大津城 현재 에이메현 오즈시)으로 끌려가 포로 생활을 하였다. 그는 탈출을 시도하다가 붙잡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는데, 유학자이고 관리라는 신분이 밝혀져 교토 후시미에서 후지와라 세이카, 아카마쓰 히로미치 등을 만나 이들에게 주자학을 가르쳤다.

후지와라 세이카는 에도 시대 주자학의 비조(鼻祖)이다. 그의 제자 하야시 라잔도 에도 막부의 대학두(大學頭)로 활동하였다. 에도 막부는 사무라이들에게 신분질서를 확립시키는 주자학을 가르쳐 270년간 도쿠가와 쇼군 시대를 유지하였다. 그리하여 일본에서는 강항을 ‘일본 주자학의 아버지’로 추앙하고 있다.

강항은 포로 생활 중에도 왜국의 기밀을 파악하여 선조에게 소를 올렸다. 그는 1598년, 1599년에 세 차례 적중봉소(賊中封疏)하였는데 명나라 사신 왕건공에게 보낸 것이 조정에 도달하였다. 이는 1599년 4월15일자 선조실록에 나온다.

1600년 5월에 귀국한 강항은 일본에서의 환란생활을 기록한 '간양록(看羊錄)'을 남겼다. 간양은 중국 한나라의 소무(蘇武)가 흉노의 포로가 되어 19년간 양을 치는 수모를 겪었다는 데에서 따온 것이다.

한편 강항은 절의를 지킨 선비였다. 1607년에 회답겸쇄환사로 일본에 간 부사 경섬은 '해사록'에서 ‘왜인들의 말에 의하면, 강항이 포로 되어 온 지 5년 동안 자신의 바탕을 무너뜨리지 않았고, 의관도 바꾸지 않고 방에 조용히 앉아 책이나 보고 글을 짓기만 일삼았다.’고 기록하였다.

1980년에 '간양록' 드라마가 MBC에서 방영되어 강항에 대한 대중화 작업이 활발하였다. 사극 작가 신봉승이 가사를 쓰고 조용필이 부른 주제가 '간양록'은 지금도 심금을 울린다.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 서리고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달 일세.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2002년에 방영된 KBS '역사스페셜'도 강항을 우리의 선조임에도 우리보다 일본에서 더 많이 알려진 인물로 소개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강항에 대한 연구나 대중화 작업이 뜸하다. 영광군 내산서원에 내방객이 별로 없고, 영광군과 오즈시의 한일 교류도 중단 상태이며, 강항에 대한 평전 한 권 없다. 어쩌면 역사 속에 묻힌 인물이 된 느낌이다.

2017년은 강항 탄생 450년이고, 2018년은 강항 서거 400년이다. 지금부터라도 강항에 대한 재조명에 박차를 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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