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왔습니다
택배 왔습니다
  • 문틈 시인/시민기자
  • 승인 2015.03.18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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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사시는 어머니는 자주 택배를 보내오신다. 아들네 가족들이 먹으라고 김치며, 푸성귀며, 감태며, 병치며, 고구마며, 된장이며, 무며 깨, 참기름 등 빼꼭히 박스에 넣어 보내신다. 어떤 때는 한 번에 세 박스나 보내셔서 그걸 갈무리하느라 아내가 아주 지쳐버린 일도 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택배를 보내셨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아내는 고향에서 보낸 어머니의 마음을 이것저것 꺼내어 옮겨 담아 냉장고에 넣는다. 아내는 여러 날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지 않고 어머니의 정성어린 ‘선물’을 밑반찬으로 하여 밥상을 차린다. 식탁은 갑자기 고향 어머니 밥상이 된다. 지난 설날에도 어김없이 그랬다.

구순이 내일모레인데도 어머니의 마음은 한결같다. 나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어쩌면 타관에 나가 있는 자식을 둔 다른 어머니들도 우리 어머니처럼 그렇게 택배를 보낼 것이다. “이제 그만 택배를 보내셔요. 너무 힘드시잖아요…”
그래도 어머니는 내 말을 못들은 척 늘 이렇게 묻는다. “어째, 먹겄드냐?” 내 대답은 정해져 있다. “엄청 맛있게 먹고 있어요.” 정말로 맛이 있어서다. 왜 안그렇겠는가. 고향의 어머니가 보내온 무안 감태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타관에서 오래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고향 어머니의 손맛은 언제나 최고의 맛이다.
“어머니, 백 살까지는 사셔야 해요.” “뭔 소리냐? 다 산 사람한테.” “어머니가 오래 사셔야 제가 맛있는 어머니 반찬을 맛보며 오래 살 거 아니예요.” 어머니는 분명히 아주 흡족해하시는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리신다.

나의 진짜 속마음은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그 택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도한다. 어머니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신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그런 일은 일종의 재앙이다. 내게는 그렇다.
이렇게 택배 선물은 몸소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신 것과 진배없다. 그것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다. 먹을거리에 불과하다면 시장에 가면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손으로 빚은 맛은 시장에서는 아무리 비싼 먹을거리일지라도 댈 일이 아니다.
나는 어머니가 보내주시는 택배를 풀면서 늘 가슴이 설레인다.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어머니에게 중독되었다. 언젠가 한번은 이런 나의 심정을 눈치 채시고 에둘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넌 나한테 너무 의존하고 있는 것 같어야. 그러지 마라.”
아들이 자못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었다. 당신은 언젠가 먼저 세상을 떠날 터인데 환갑이 넘은 아들 녀석이 어린아이처럼 어머니의 손을 놓지 않고 않으니 은근히 걱정이 되시는가보다.

나도 잘 안다. 내가 어머니를 늘 그리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것, 고향의 맛에서 한 걸음도 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 어머니께 불효하는 자식의 마음이 그렇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날마다 시외전화로 어머니의 안부를 묻는다. “목소리가 감기 걸리신 것 같은데요. 어머니, 당장 병원에 가서 영양제라도 맞으세요.” 어머니는 별것 아니라며 영 돈 쓰기가 마땅치 않으신 듯한 말투다. 나는 졸라서 기어코 병원에 가시도록 원격 투정을 부린다.
“어머니, 제발 새해부터는 힘들여 택배 보내지 마셔요. 여기서 다 알아서 할께요.” “알았다.” 대화는 이런 식이지만 봄나물들이 나오면 틀림없이 또 "함평서 직접 캐온 거란다"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서 택배를 부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짐짓 고향의 맛을 기다릴 것이다.

“택배 왔습니다.“ 그것은 그리움이 왔습니다라는 말로 즉시 번역되어 내 귀에 들린다. 택배에 담겨오는 고향 어머니의 정을 어찌 벗어나 살 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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