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鄕 광주, 역사 인물에 관심을
義鄕 광주, 역사 인물에 관심을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5.03.12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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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역사연구원장

왜 광주가 義鄕인가? 광주 사람들의 DNA속에 義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의향 광주에는 선비, 의병, 義士들이 많았다.

옛날부터 儒林에서는 ‘광나장창’이란 말이 전해 내려왔다. 훌륭한 조선 선비들이 많이 배출된 곳이 광주.나주.장성.창평이라는 의미이다. 광주의 이선제와 박상.박우 형제, 김윤제와 기대승, 양응정과 임형수, 나주의 최부와 임제.박순, 장성의 송흠.김인후와 기정진, 창평의 송순.양산보와 정철이 그들이다. ‘광나장창’ 맨 앞에 ‘광’자가 자리 잡은 것은 광주가 절의와 기개 높은 선비들이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한편 광주는 임진왜란과 한말에 수많은 의병들이 구국 항쟁을 하였다. 임진왜란 때 고경명과 고종후.고인후 부자, 박광옥, 정충신과 양산숙, 송제민과 김덕령이 있었다. 한말에는 김태원(본명이 김준)과 김율 형제, 양진여.양상기 부자, 강사문, 김원국.김원범 형제, 김동수, 조경환 등이 의병으로 나섰고, 호남창의회맹소 맹주 기삼연은 1908년 음력 설날 광주공원 앞 川邊에서 총살당하였는데 광주 사람들은 이를 애도하여 화려한 옷으로 거리에 나오지 않았다 한다.

또한 일제 강점기인 1929년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고, 1980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그런데 지금 의향 광주는 겉돌고 있다. 광주광역시청 누리집에는 ‘광주의 인물’이란 화면이 없다. ‘빛고을 소개’ 화면에는 광주의 과거, 5.18 민주화운동만 있을 따름이다.

반면에 부산광역시 누리집에는 ‘부산 소개’ 화면에 ‘부산의 인물’이 있다. 그 하위 화면 중 ‘충신열사’ 맨 첫머리에 녹도만호 정운(해남 출신)이 소개되어 있다. 동래부사 송상현을 네 번째로 소개하고 있는데 해남 출신 정운 장군이 첫 번째인 것이 이채롭다.

광주의 도로명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이다. 동구청을 제외한 광주광역시와 각 구청 누리집에는 ‘도로명과 인물’ 소개가 없다. 아이러니 한 것은 제봉로는 동구청 누리집에 실려 있으나, 정작 제봉 고경명의 위패를 모신 포충사는 남구청 누리집에서 찾을 수 없다.

더구나 이제는 주소를 洞 이름이 아닌 도로명으로 표기하고 있다. 자기 집의 도로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아는 광주시민이 얼마나 될까?

충장로가 의병장 김덕령을 기리는 도로임은 잘 알겠지만, 금남로가 정충신 장군을 기리는 도로임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다른 도로명도 마찬가지이다. 고봉로가 기대승, 눌재로와 사암로는 박상과 박순, 하서로와 면앙로는 김인후와 송순, 필문대로는 이선제, 회재로는 박광옥, 경열로와 구성로는 정지와 전상의 장군, 죽봉로와 서암로가 한말 의병장 김태원과 양진여 등 역사인물을 기리는 도로임을 얼마나 알까?
하기야 義士 안중근을 醫師 안중근으로 아는 초.중등학생이 있을 정도로 역사에 무관심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유독 광주시민에게 도로명의 인물을 알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주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위치한 백일로가 친일파 김백일에서 유래한 도로임을 작년에야 알게 되어 광주사회가 큰 충격에 빠졌던 것은 역사가 얼마나 소중함을 일깨운다. 아울러 광주는 역사인물에 대한 현창도 소홀하고, 제대로 된 역사인물 강좌 하나 없다.
광주공원에는 ‘도원수충장 권공창의비(都元帥忠莊權公倡義碑)’가 있다. 이 비에는 권율 장군의 업적과 권율과 같이 전투에 참여한 제공(諸公) 명단이 적혀 있다. 광주목사였던 권율은 약 1천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1592년 7월8일 금산 이치전투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육전에서의 최초 승리였다. 이 승전보를 의주로 피난 간 선조에게 전한 이가 바로 17세의 정충신이었다. 그런데 창의비 앞에는 안내판 하나 없다.
또한 의향 광주를 제대로 알리는 역사 강좌 하나 없는 것이 광주의 현실이다. 조선의 선비들, 임진왜란과 한말 의병, 광주학생독립운동,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20회 정도 연속 강의하는 프로그램 하나 없다.
이것이 의향 광주의 민낯이다.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광주 역사인물에 관심을 갖자. 역사인물을 기억하지 못하면 正體性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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