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향먹거리1. 광주의 먹거리 골목
내고향먹거리1. 광주의 먹거리 골목
  • 한울 시민기자
  • 승인 2015.03.05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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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먹거리가 풍부했던 남도는 미향의 도시로 음식의 맛부터 식기까지 특색있는 먹거리문화가 많았다. 2015년 세계 스포츠 축제인 U대회가 광주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광주와 남도의 대표적 특색 있는 먹거리를 소개한다.<편집자주>

얼마 전 서울 Coex에서 열린 내 나라 여행박람회의 ‘남도여행이야기’ 강의요청을 받은 박재완 작가는 고민에 빠졌다. 남도를 어떻게 소개 할 것인가? 남도는 예향이며, 미향의 원류인데 막상 가으이할 내용을 찾기 힘들었다. 고민 끝에 광주의 음식장인 최영자 선생에게 2달 동안 음식공부를 하였다.

박 작가는 이제 “음식이 뭘까?” 라는 생각만 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음식의 고장, 맛의 고장 광주의 먹거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박 작가만의 문제는 아닐게다.

곧 세계적인 대학생들의 스포츠축제 U대회가 열린다. 광주와 남도의 대표적 특색이 있는 잊지 못할 먹거리는 많다. 먹자골목 탐방을 통해 소개한다. 주변에 대표적 먹자길목이나, 꼭 여기를 소개하고 싶은 곳은 먹자길목을 신문사에 제보를 바란다.

전남의 고을마다 특색 있는 음식은 있었다. 지금은 개발과 환경오염, 패스트푸드 음식 등의 변화로 특색있는 음식이 줄어들고 있다. 더욱이 언제부터 우리의 입맛을 변하게 만든 인공 조미료(MSG)에 길들어져 옛 맛을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그래도 먹자의 길목을 찾아 나셨다.

광주의 먹자골목의 원조는 어디일까? 광주의 향토사학자 박선홍 선생의 ‘광주1백년’을 보면 옛 현대극장 주변의 큰 장을 공수방(公須坊)이라 했고, 현 부동교 근처의 백사장에 열리는 작은 장은 부동방(不動坊)이고 했다.

천변의 큰 장과 작은 장은 전국 각지에서 장꾼이 모여드는 호남의 대표적 장으로 손꼽았다. 호남상권을 장악 하였기에 자연스럽게 광주읍성 주변에 먹거리 골목이 형성되면서 장돌배기와 보부상들이 목을 축이고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던 먹거리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1940년대 두 군데 장이 지금의 양동시장으로 옮겼다. 1945년 조국해방과 함께 중국, 만주, 남양군도 등 동남아 이곳저곳으로 끌려갔던 동포들과 북한지방에서 살다 내려온 이주민 등이 먹고살기 위한 생계 수단으로 양동시장에서 주막을 열었다. 음식의 맛에서부터 식기까지 각기 특색 있는 멋이 있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돌아온 사람은 중국 식기에 중국 음식을, 그리고 일본에서 고생하다 온 사람은 일본 식기에 일본요리를, 북한지방에서 온 사람은 이북요리를 내놓았다. 이런 식으로 양동시장은 다국적으로 최고의 특색 있는 먹자골목의 원조였다.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의 쉼터였을 것이다.

요즘의 먹자골목은 각 구역별로 나눠져 있다.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충장로 뒷골목의 일대와 시장 주변에 먹자골목이 형성되었다. 이제는 도시 규모가 커지면서 지역별로 번성하고 있다. 동구는 산수오거리 일대와 예술의 거리, 계림동 등이며, 서구는 염주 사거리와 상무지구, 농성동 등이 있다. 남구는 봉선동 일대, 북구는 전대 후문과 용봉동, 일곡동, 문흥동 등이며 광산구는 송정 떡갈비 골목 하남, 첨단 등으로 분류할 수가 있다.

모두가 신흥 도시 타운이 형성 되면서 만들어진 주민 편의형의 먹자 길목이다. 다만 송정의 떡갈비 골목만 유일하게 단일 품목의 먹거리 골목으로 볼 수 있다.

광주에는 오래 전부터 음식으로 유명한 식당들이 있었다. 각 개개인의 취향과 입맛이 달라 어떤 곳이 유명한 맛 집이라고 쓰지는 않겠다. 어느 먹자골목에 어떤 집이 있다고만 쓸 예정이니, 그 점 양지하여 주기 바란다.

▲현재 길이 확장되고 현대화 되었지만 얼마전 까지만 하여도 국밥집으로 유명했던 양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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