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 대해부(7-1) 우리는 ‘5.18기념재단’을 기억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대해부(7-1) 우리는 ‘5.18기념재단’을 기억하고 있다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5.02.13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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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박석무 이사장 (임기 2004.03.23~2006.08.21)
5.18 관련 3단체 ‘분열’ 문제 해결해야

<시민의소리>는 창간 14주년을 맞이해 역대 5.18기념재단의 이사장을 만나 재임시절 이야기와 5.18기념재단의 향후 발전방안에 대해 듣기로 했다. 그러나 몇 명의 이사장은 5.18관련 단체와의 마찰, 끈질긴 언론의 무분별한 질타로 인해 다시 한 번 언론에 노출 되는 것에 대해 손사레를 치기도 했다. 우여곡절 속에 어렵사리 연결된 7대 박석무 이사장, 8대 이홍길 이사장, 9대 윤광장 이사장을 만나 5.18기념재단에 관련한 공통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을 사실 그대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5.18기념재단 7대 박석무 이사장
▲ 5.18기념재단 이사장으로 취임 전 80년 5.18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활동을 하셨는지.
- 5·18 당시 저는 39세의 고등학교 교사 신분이었습니다. 총을 쥐고 계엄군과 싸울 수 있는 용기도 없던 처지였습니다. 5월 18일은 일요일인데, 그날 점심 뒤 시내에 있는 모 예식장에서 어떤 분의 자녀 결혼식이 있던 날이어서 시내버스를 타고 예식장으로 가던 중에 금남로에서 학생 시위대와 마주쳐 버스가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자, 버스에서 내려 시위대를 따라다니게 되었다.

결혼식에 가야할 생각도 잊어버리고 분노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옆에서 지켜보는 일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저녁이 늦어 집으로 가서 잠을 자고 아침식사 뒤에는 바로 금남로 일대의 시위 현장을 누비면서 시위대들이 당하는 처절한 현장을 지켜보고, 쫓기고 또 후퇴하면서 현장에서 떠나지 않았다.

발포가 있던 뒤로는 수없는 부상자나 시체를 운반하던 모습을 목격하였고, 5월 20일 쯤 시위대에게 총기가 소유되면서 사항이 급변하고, 마침내 계엄군이 시내에서 퇴각하자 YWCA 사무실에서 민주인사들이 모여 수습대책이 논의될 때 그 회의에 참석했었다.

총기반환에 절대 반대하며 도청에 있던 후배들과 연결하여 총기를 반환하는 한 싸움에 굴복하는 일이라 여기며 총기 소지를 끝까지 지켜야 한다는 후배나 선배들을 설득하여 회수된 총기를 시민군들이 다시 소지하도록 강력히 주장했었다.

24〜26일 경에는 대자보가 붙기 시작했는데 그 대자보 제작에도 일정 정도 관여하는 등, 총을 들거나 시위에 직접 앞장서지는 못했어도 그들과 동조하고 격려하는 일에는 소극적이지 않았다.

▲ 이사장직 임기동안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들에 대해 말해주신다면.
-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으로 재정적 기반이 취약했던 재단의 재정확보를 약속받은 일이 가장 기억에 새롭다. 당시 재경부 예산 실장이던 장병완(현 국회의원)이 노대통령의 명을 받아 다산연구소로 저를 찾아왔다.

논의 끝에 일정액의 기금을 조성하는 일보다는 매년 일정액의 정부 보조금을 지급받는 일이 매우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어, 장 실장의 의견대로 매년 25억 정도의 예산을 지원받기로 합의했다.

그런 결과 바로 2005년부터 행정자치부에서 광주시로 25억 전후의 예산이 하달되면 시에서 재단에 교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후 지금까지 재단의 재정 자립이 가능하게 되었다. 재단의 역사상 가장 큰 일 하나가 제가 재임 중에 해결되었던 사례였다.

▲ 앞으로 5.18기념재단의 발전을 위해 향후 나아가야 할 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 5.18기념재단이 발전하기 위해선 재단이 중심이 되어 5·18 유관 단체들의 화합과 소통을 이룩하는 일이 남아있다. 유족회·부상자회·구속자회 등 몇 개 단체로 분열해 있으면서 서로 간에 주도권을 지니려는 많은 갈등이 일어났다. 거기서 파생하는 문제점을 재단이 중심이 되어 해결하는 일을 해야한다.

제가 재임 중에는 실제로 3대 단체의 통합이 거의 결론에 이르렀는데 결실을 보지 못했다. 저의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고, 재단에서 떠났던 일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요즘은 5·18 후원회의 문제점이 많은 갈등을 낳았다. 재단이 중심이 되어 그런 갈등을 해결하고, 5·18 세 단체가 협력 합심하여, 5·18 정신의 계승과 선양에 한 마음 한 뜻으로 함께 할 길이 열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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