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창창한 날, 용소의 물소리를 들으면
달빛 창창한 날, 용소의 물소리를 들으면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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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필-길위의 희망>


'98년 담양의 용추산에서 임도를 놓다가 옛날 자기를 굽던 가마터가 발견되었다. 그 동안 가막골, 가마골, 피잿골이라고 함께 부르던 그 이름이 가마골로 고착되던 순간이었다.

영산강 350리의 시작지점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지만 사람들 사이에 가마골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생각해 볼 때 여행의 대상지로 가마골은 너무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와 생활에서 근원을 생각하게 된다면 가마골은 우리 여행의 가장 처음이어야 한다.

호남인의 성지
영산강의 시원
가마골을 찾아


물을 빌려 태어나고 물과 더불어 살며, 물의 이치를 보며 각오를 새롭게 다지고 그 속에 문화를 일구고 살아온 우리에게 가까운 거리에 그 물의 시작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 동안 수많은 여행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돌이키게 하는 곳이 가마골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호흡조차 가누기 힘겨웠던 날들이 많았다면 가마골에 가려거든 이른 새벽이거나 달빛 창창한 날에 떠나길 권한다.
가마골의 골짜기에는 숙박시설과 야영장이 영산강의 시원인 용소보다 더 위에 자리하고 있어 차가 진입할 수 있도록 포장이 되어 있다. 사람이 걸었던 길에 도로가 개설된 것이야 별 수 없다지만 자연과의 호흡을 위해 걷는 사람들의 길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길로 덮고 차에게 우선권을 주었을 때 그 길을 사람이 걷는 것은 사람과 차 서로에게 미안한 일이다. 더욱 차가 길을 막고, 사람이 발디딜 틈새 없는 대낮에 그곳에서 어떤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이른 새벽길이거나 늦은 밤길을 가길 권한다.


호흡조차 가누기 힘든 날
바람도 자고 풀벌레도 숨어버린
이른 새벽, 창창한 달빛 아래
우렁찬 용소의 물소리
그대, 호남인의 뜨거운 자부심이...


바람도 숨을 죽이고 풀벌레도 나뭇잎 사이로 숨어 들어간 적요한 시공간에서 우렁찬 용소폭포의 물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이곳이 진정한 호남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성지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가마골 용소에는 이런 전설이 내려온다. 그 옛날 방울방울의 물이 모여 깊은 연못을 이룬 곳 안쪽 굴속에 이무기 한 마리가 살았는데 드디어 승천할 수 있는 날을 받았나 보다. 그런데 승천의 순간은 이 세상 그 누구도 보아선 아니 되는데 고을의 원님이 그 연못이 보고싶어 하필 그 날 행차를 한다고 했단다.

아니 될 일이라고 이무기는 하얀 산신의 모습으로 사또에게 간청을 했건만 무시를 당하고 마침내 그 날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순간 사또의 가마도 거기에 도착하고 하늘을 오르던 용은 피를 토하고 떨어져 죽고 만다. 한편 가장 비밀스런 순간을 목도하게된 사또 또한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그 불쌍한 용을 위로하기 위해 깊디깊은 이 연못의 이름을 용소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지금 그 용소의 맞은편 윗머리에는 담양군에서 만든 시원정이라는 정자와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다리가 있어 어색하지만 또 하나의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이 용소에서 물을 한웅큼 손으로 퍼서 마셔보기 바란다. 위로만 향하는 인간의 탐욕에 어지간히 애닮아 했던 순간들을 기억한다면 시원하게 가슴을 적시는 물 한모금은 그 모든 뜨거움을 가라앉혀 줄 것이다.

그리고 떨떠름하게 남아 있는 물맛은 이 땅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했던 전쟁의 피비린내가 담겨 있음을 상기할 수 있다. 서로를 죽여야 했던 6.25가 끝나고도 2년이나 붉은 기를 내리지 않았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마골의 입구에서 시원한 폭포가 내리는 용추사쪽으로 가는 길은 두 방법이 있다. 하나는 등산로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인데 차례로 용연 제1폭포를 만나고 한참을 오르면 제2폭포를 만난다. 다른 방법은 임도를 타고 용추사로 가서 가마터를 보고 용추사의 오래된 단풍나무를 보고 등산로를 따라 300미터 쯤 내려오면 용연 제 2폭포를 만나는 것이다.

호남인의 젖줄이 발원한 곳이자 아름다운 자연과 숨막히는 역사가 함께 했던 공간 가마골을 첫 번째 희망의 길로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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