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18) -백야축제 Nuit Blanche2015
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18) -백야축제 Nuit Blanche2015
  • 정대인 전 미국 산타페예술대 교수
  • 승인 2015.01.2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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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백야축제 Nuit Blanche2015의 작품 모습

우산을 쓰기에도 안 쓰기에도 애매하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으슬으슬한 저녁, 거의 한 시간 정도 밖에서 비를 맞으며 줄을 서 있었다. 우리 앞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몸을 움츠리고 서 있었지만, 대부분 밝은 표정이었다. 하룻동안 파리의 거리가 예술작품으로 뒤덮이는 백야축제 Nuit Blanche를 즐기러 나온 사람들은 다들 만족스러운 듯 보였다.
몇 주 전부터 길거리 광고판에서는 백야축제를 홍보하고 있었다. 벌써 10년째 진행되는 행사로, 매년 10월 첫째 일요일에 열리는 이 축제에서는 단 하룻동안 수많은 예술작품들이 파리의 거리를 뒤덮는다.
파리는 이미 온갖 종류의 미술관, 박물관으로 가득 찬 도시이지만, 실내에서 감상하는 예술이 아니라, 자유로운 밤거리에서 보는 예술작품들은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다. 그것도 단 하룻밤만 전시한다니 놓치기 아쉬운 기회였다. 독특하게도 이 행사는 해가 저문 저녁시간에 시작하여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비교적 안전한 파리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매 년, 새로운 사람이 행사 총감독을 맡고 파리의 각기 다른 장소를 선정하는데, 이번에는 상카트르의 디렉터가 지휘하여 리브고쉬(파리 남쪽)를 중심으로 전시가 이루어졌다.
파리 시청, 오스텔리츠 역, 몽파르나스 타워, 몽수리 공원 등 파리 남쪽을 가로지르는 넓은 지역에 걸쳐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행사 지역을 지나는 지하철은 특별히 밤새 운영한다고 했다.

거리의 모든 공간이 전시장 탈바꿈

여름 관광철이 끝나고 가을이 와서 요즘 파리가 조금 한가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저녁을 먹고 부담없이 슬슬 거리로 나왔지만, 시작 시간 1시간 전부터 파리 시청 앞은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었다. 아마도 여기가 파리 중심지이니 특별히 사람들이 많이 모인 것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그날 밤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은 죄다 밖에 나온 것 같았다. 행사 본부에서 받은 예쁘게 제작된 안내책자에는 수십 페이지에 걸쳐서 작품 설명이 실려 있었고, 각각의 설치 장소도 표시되어 있었다. 주요 전시와 개별 전시를 합치면 100개가 넘는 정말 대규모의 행사였다. 밤중에 모든 것을 돌아볼 체력은 안될 것 같아서 아쉽지만 13구를 중심으로 해서 몇 가지만 골라서 봐야했다.
13구는 파리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파리 중심부와는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곳이다. 차이나타운에는 거대한 아파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쪽으로 갈수록 재건축이 한창이어서 현대적인 모습의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그렇게 공사가 채 끝나지 않은 거리를 전시 공간으로 활용했고, 그래서 거리 예술이라는 컨셉도 잘 어울렸다. 적막한 거리, 공사 중인 건물들 사이로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모습 자체가 행위 예술같이 보이기도 했다.
공사가 한창인 오스텔리츠 역 기차선로 아래는 커다란 기둥들이 끝도 없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이곳에 설치된 작품은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런 육중한 기둥에 하얀 전구들을 설치해놓고 불빛이 켜질 때마다 기계음이 짧게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기둥들이 100미터를 넘게 뻗어있고, 빛이 각각의 기둥을 비추면서 점점 나에게 하나씩 다가온다면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밤새도록 추위를 이기며 본 전람회

짧고 건조한 기계적인 소리는 큰 공간을 채우지 않고 여백을 남겨서 나머지는 관객들의 상상력으로 그 느낌을 채울 수 있었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 움직이는 빛이 리듬을 타고 점점 빨라지는 모양을 보고 있으니 이 거대한 건축물 사이로 내가 움직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몽파르나스 타워에 붙어있는 쇼핑센터 옥상에 설치된 작품은 United Visual Artists의 설치 작업이었다. 예전에 발표한 유명한 작품으로 이미 인터넷에서 본 사진과 비디오로 익숙한 작업이었지만, 직접 그 공간에서 경험해보고 싶어서 비가 오고 추운 날씨에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지만, 약 한 시간을 기다려서 결국 체험해 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나와 같이 몸을 웅크리고 줄서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작품은 옥상 공간에 설치된 불빛 기둥들뿐만 아니라 몽파르나스 타워 외벽에 설치되어있던 전구들까지 이용하여 또 색다른 느낌을 주었는데, 잔잔한 불빛의 움직임과 환상적인 색감, 몽환적인 전자음악 그리고 타워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빛의 애니메이션이 한데 어우러져 마치 신의 계시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듯한 황홀한 느낌의 전시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시간에도 여기저기서 전시 관람에 한창인 사람이 많이 보였다. 단 하룻밤의 무료행사를 위해서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초대해서 대규모의 전시를 기획하고, 그런 예술과 경험의 가치를 알고 존중하는 사람과 사회가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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