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9)
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9)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5.01.1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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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친일 활동이 현저했음에도 독립유공자로 잘못 서훈된 윤치영 초대 내무장관의 서훈이 취소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잘못된 것이 고쳐졌다는 것은 아무튼 반가운 일이다. 고쳐 가면서 사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포폄(褒貶)의 증거가 현저하지 않은 관계로 그 평가가 쉽지 않은 일들도 많고 무엇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그 초입에서부터 가늠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망국의 현실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던지 항일을 하는 것은 일견 너무나 당연한 것 같지만, 그것이 일상적 삶을 위축시키거나 생명에 위해를 초래할 것이 자명한데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떨쳐 일어나는 것이 용이한 일은 아니었다.

반세기가 넘는 민주공화국의 역사에서 민주화는 당위임에도 불구하고 국가권력의 억압 때문에 전전긍긍하면서도 일상을 별 탈 없이 살아온 도도한 생활의 물결은, 모범된 생활인은 세상의 추세에 편승해서 사는 것임을 삶의 역사를 통해서 거듭해서 보여주었던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았던 숱한 사례가 홍수보다 더 도도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독립투사들의 후예들과 민주열사들의 후예가 어떠한 오늘을 살고 있는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가치에 솔선하고 정의에 용감하라는 말을 누구를 향해 내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도 사람은 가치 없이는 못사는 존재인 모양이다.

'나는 바담풍해도 너는 바람풍해'라고 하면서, 그나마 가치를 사람 곁에 남겨 온 역사였던 것 같다. 손해 볼 줄 알면서 가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홍진세상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아직도 희망을 노래하는 성 싶다.

다수의 삶에 보탬이 되는 보편적 방향이 가치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구체적 삶에서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지만, 보편적 방향의식이 없으면 인간의 삶이 절대적으로 훼손되거나 애시당초 성립 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인간 삶의 속성을 자각한 존재들이 사람들 가운데에는 있기 마련이었던 것 같다. 나라가 망했을 때, 그 울분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 온 가족을 이끌고 남부여대 고향을 떠나 독립투쟁의 길에 나서는 사람들, 사람 된 길을 찾아 생명을 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여세출하지도 않고 정신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다수였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여세출은 기회이고 능력을 필요로 하는 것인데, 그 길도 경쟁으로 선택되는 길이기 때문에 준비가 필요하다. 기왕의 생활 터전이 붕괴되더라도 자신만의 삶을 좆는 뻔뻔함과 집요함이 친일의 소양이 되고 귀여운 푸들의 길이 되는 것인데, 모든 공동체인들의 손쉬운 자질은 아니다.

항일파도 선각자도 아니고 여세출하는 기회주의 친일파도 아닌 다수 인민들의 시대에 대한 책임과 몫은 어떤 것일까? 용기도 자각심도 없고 그렇다고 교활함도 뻔뻔함도 없어서 그냥 살아버린 일생이 결과적으로 친일파를 날뛰게 하고 부역배를 설치게 했다면, 자기 존재를 할퀼밖에 없는 인간 존재의 나약성이 한스러울 뿐으로 삶을 가치적으로 자각할 기회를 못 가진 갑남을녀에게는 삶을 그냥 영위한다는 것만으로도 삶이 무겁지만 자각심을 가진 지식인은 다르다.

한말의 선비 안규용은 다섯 가지 불행을 말했다. 만물의 영장이 된 것, 남자로 태어난 것, 예의의 나라에 태어난 것, 우리 조상의 후손이 된 것, 성현의 글을 읽은 것이 그 다섯이다. 자각심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사람 된 자의 몰래 몰래 은폐해둔 양심을 후빈다, 그럼에도 일상을 영위하면서 삶의 결단을 못 내리는 것은 또 다른 귀숙처가 있기 때문이다.

훗날을 기약하여 도의의 종자를 보전하여 퍼뜨리거나 어두워져 버린 시대에 밝은 기운을 회복할 터전을 닦는 일로 자신의 삶을 대치시킬 수도 있다. 그렇기 위해서는 현실에 그러한 인식의 터전이 있어야 하고 넘쳐나는 감상을 씻어줄 대화자와 술도 필요했다. 안규용의 삶이 그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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