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17) 쌓여가는 동전
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17) 쌓여가는 동전
  • 정대인 전 미국 산타페예술대 교수
  • 승인 2015.01.15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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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순간 주머니의 동전들이 통제가 안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신용카드는 해외구매 수수료가 붙기 때문에 대부분의 것들을 현금으로 구매하다보니, 매일 바지 주머니와 탁자 위에는 동전들이 수북이 쌓여간다.

동전은 나중에 환전이 되지 않으니 더 골치다. 보관해놓으면 언젠가는 쓸 일이 생기기는 할 것이다. 아내는 지난 파리 여행에서 남은 동전과, 심지어는 쓰지 않은 지하철 표까지 잘 보관해놓았다가 이번 여행 때 유용하게 사용했다.

유로 동전은 종류가 8가지나 된다. 2유로, 1유로, 50센트, 20센트, 10센트, 5센트, 2센트, 1센트까지. 일단, 독특하게 생기고 쓸모가 많은 2유로, 1유로 동전은 가지고 다니면 유용하지만, 나머지 동전들은 다들 엇비슷하게 생겨서 혼란스럽다.

사람들이 줄지어있는 슈퍼 계산대 앞에 서서 동전을 하나 둘 세고 있으면,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짜증이 느껴지기에 작은 동전들은 그렇게 쌓여만 간다. 또, 점원들도 동전 다루기를 귀찮아하는 듯 하다.

파리에서 처음 슈퍼마켓에 간 날, 간단한 장을 보고 20유로 지폐를 내밀었다. 가격은 아마 7유로 3센트였던 것 같다. 점원은 나에게 97센트를 동전으로 일일이 세어서 거슬러 줄 생각이 엄두가 나지 않았는지 3센트를 빼주고는 그냥 가라고 했다. 어느 빵집에서는 심지어 거스름돈을 자동으로 내어주는 육중한 기계를 설치해놓았었다.

불어의 숫자 세는 법을 알면, 거스름돈 계산에 진절머리를 내는 파리 사람들이 어느정도 이해가 간다. 우리가 수를 세는 원리는 너무나 쉽고 간단하다. 숫자 183을 예로 들어보자. 백 + 팔 (곱하기) 십 + 삼, 따라서 백팔십삼. 영부터 구까지 셀 줄 알고, 십, 백, 천 단위를 알면 어떤 숫자든지 응용해서 쉽게 셀 수 있다.

똑같은 숫자를 불어식으로 읽어보자. 백 + 사 (곱하기) 이십 + 삼 (cent quatre-vingt-trois). 잠깐만, 팔십이라는 숫자를 읽는데 사(곱하기)이십이라고 읽는다고? 그렇다. 뜬금없이 전혀 새로운 단위가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70이라는 숫자는 60 (더하기) 10 (soixante-dix)이라고 읽어야 하고, 90이라는 숫자는 80 (더하기) 10 (quatre-vingt-dix)이라고 읽어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다.

여기에도 반복되는 규칙이 있기는 하지만, 단순히 수를 세는데 그 규칙이 너무 많다. 수를 셀 때 언제나 이런 과정이 머릿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니, 익숙해진 어른들은 몰라도 처음 산수를 하는 초등학교 학생들은 혼 좀 많이 날 것 같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아시아의 어린 학생들이 수학에 더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데에는 좀 더 논리적인 숫자 세는 방법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영어에도 eleven, twelve와 같은 숫자들에서 불규칙함이 있지만, 불어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건 그렇고, 탁자 위에 쌓여가는 동전들은 여전히 해결책이 필요했다. 내가 생각한 임시방편은 50센트 동전 하나와 10센트 동전 다섯 개를 들고 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다양한 상황에서 동전 소비가 가능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남게 되는 소액의 동전들은 어떻게 할까.

인터넷에서 본 여행의 지혜가 생각난다. 여행 후, 남은 동전들은 홈리스에게 주라는 것이다. 괜히 사소한 일에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도움을 주고, 나는 홀가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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