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16) 버스 정류장
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16) 버스 정류장
  • 정대인 전 미국 산타페예술대 교수
  • 승인 2015.01.08 10: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레 지구로 이사 와서 좋은 점 중의 하나는 다양한 노선의 버스와 지하철 역이 많아서 대중교통의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다는 것이다. 지하철을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불편한 점들도 있다.
파리의 지하철에는 계단이 무척 많다. 엘리베이터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고 에스컬레이터도 없는 곳이 종종 있다. 그래서 보통 노인들은 버스를 선호한다. 우리와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집 앞의 버스 정류장에 나갔다. 정류장 전광판에 도로 공사로 버스가 이곳에 서지 않는다는 문구가 보였다. 옆에서 안내문을 골똘히 보고 있던 프랑스 아주머니에게 여기 버스 운행하지 않나요 물었더니, 뭔가 길게 답변을 하는데 물론 알아들을 수 없었다.
단지 몸짓을 해석해보니 자신도 당황스럽다는 그런 의미인 듯 했고, 나는 다 알아듣는 척 동의하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주머니는 조금 더 생각하더니 다른 곳으로 향했다.
나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까부터 옆에서 조용히 지도를 쳐다보고 있던 여행객으로 보이는 한 아가씨가 순진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면서 지도를 내밀었다. 손가락으로 지도 위의 오페라 역을 가리키고 있었다. 응? 뭐지? 프랑스 아주머니와 대화가 되는 척 하던 나를 보고 내가 이 동네 사람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 오페라 역에 가려구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진한 처녀 좀 보게나. 딱해보여서 조금 설명을 해줬다. 파리에 한 달 있었더니 길을 설명해줄 수 있는 지위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 보니까 버스가 운행하지 않는 것 같거든요. 이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지하철역이 나오니까 거기서 이걸 타고, 여기서 갈아타면 오페라까지 갈 수 있어요. 아니면, 이쪽으로 돌아가도 되구요.
음,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혼자 여행하는 이 순진한 아가씨에게는 지하철을 갈아타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는지도 모른다. 읽을 수도 없는 역 이름과 형형색색의 노선들로 가득 찬 지하철 지도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지하철을 갈아타야 한다니! 그러다가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면!
나는 설명을 마쳤는데, 아가씨는 전혀 움직일 기색이 없어 보였다. 나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어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 우두커니 서서 지도만 바라보던 아가씨가 자꾸 마음에 밟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