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8)
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8)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5.01.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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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시내를 출입하는 길에 지하철을 타는데 지하철역의 승강장 입구에 선 시화(詩畵) 입간판을 만난다. 김상용 시인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도 그 중 히나다. 3대 전원파 시인으로 불렸다던 그의 시를 속 깊이 감상할 능력이 없어선지 남으로 창을 내겠다는 그의 시제가 너무나 당연해서, 하나마나한 신소리 같아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남향집을 선호하는 한국에서 남쪽으로 창을 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같아, 구태여 그것을 시제로 삼은 시인의 심사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의 시 마지막 연의 ‘왜 사냐건 웃지요‘하는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함께 웃고 만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널려 있었고, 있고 있을 삶들을 무어라고 설명할 것인가를 가늠하다보면, 허허 웃어버릴 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삶을 용훼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새삼 실감한다.
호남사학회 56호가 배달되었다. 후배 동학들의 계속된 연찬들이 가슴에 와 닿는다. 시쳇말로 별로 돈 되지 않는 영양가 없는 학문을, 그것도 후미진 지방에서 영위하는 그들의 노고는 분명 ‘학문의 전사’라 불러도 손색없을 것을 실감한다.
그런데 특집 논문이 크게 클로즈업되어 보인다. 회봉 안규용에 관한 논문 세 편이 그것이다. 중국사를 전공했던 필자는 한국사에 대해 과문한 탓으로 ‘안규용’이라는 함자가 익숙지 않은데다 특집으로 다루어진 관계로 더욱 열심히 읽었다.

안규용(1873-1959)은 그간 기호계열의 연제학파의 도학자로 평가받아왔다. 안규용이 추구한 도학 내용은 특집 연구진에 따르면 경세론을 제외한 성리학 전반이 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필자의 관심을 유발한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로, 그 시대에 안규용은 어떻게 대처하였을 것인가가 궁금했다.
갑오농민정쟁, 청일전쟁, 갑오경장이 일어난 1894년에 그는 만 21세의 청년이었다. 보호조약 당시는 32세, 합방 때는 37세였다. 특히 갑오년은 역사적으로 국가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대전환기였고 혼란기였는데, 20대의 청년으로 그 시대의 격랑을 어떻게 헤쳐 나가고 생존을 유지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보호조약 합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안규용은 척사위정론을 제시하고 행동했던 기정진 문하의 정시림의 ‘강습제’에서 독서하였고 송시열의 도학 이념을 계승한 송병선 송병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송병선은 보호조약에 울분하여 음독 자결하고 송병순은 병합 후 1912년 또한 음독자살하였다. 두 스승의 예사롭지 않은 죽음과 나라의 멸망으로 큰 충격과 고통을 받았다.
연구자에 의하면 그는 의관과 서적을 다 거두어 다락에 올려놓고 들판의 초목들 사이를 쏘다니며 목청을 돋우며 울분을 노래하기도 하고, 만동묘로 들어가는 길에는 술 한 동이를 시켜 통곡하며 다 비우기도 하였다.
이후 삶의 뜻을 잃어버린 그는 스스로 “이 세상에서 무엇을 구할 것 인가”라고 묻고 “仁으로 갈고 義로 김매고 싶다”는 뜻을 드러냈다. 송시열 문하에서 사사하고 만동묘를 찾아 통음하는 그의 자세에서 그가 당시의 주류 성리학의 한 사람임을 살필 수 있겠다.

안규용보다 앞선 시대를 살았던 전우(田愚)는 한말의 정세는 항일투쟁으로도 회복할 수 없어 죽음으로 지조를 지키거나 나무를 끌어안고 백이숙제처럼 굶어 죽거나 숨어살면서 제자를 기르는 것이었는데, 안규용이 선택한 것은 깊은 산으로 들어가 은거하여 제자들에게 성리학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조수 동군설로 잘 표현하고 있는데, 사욕에 탐닉되어 오랑캐나 금수로 변한 모습이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이때보다 더 심한 적이 없어 더불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었으니, 금수세상에서 자신을 죄과에 빠뜨려 본성을 멸하기 보다는 “차라리 몸을 깨끗이 하고 세상을 피해 깊은 산, 거친 들판으로 들어가 새나 짐승과 더불어 사는 것이 보다 나은 일”이라고 하여 구례의 문수동에서 은거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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