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명과의 대화-광주를 말한다(24) 노동주 영화감독
100명과의 대화-광주를 말한다(24) 노동주 영화감독
  • 권준환 기자
  • 승인 2015.01.07 0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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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사회참여 위한 활동보조 지원 늘었으면
시민들의 문화 표현의 자유와 권리 보장해야
장애인의 꿈을 외면하는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더불어 사는 광주, 참여하는 자치도시를 지향하기 위한 시민들의 목소리는 무엇일까? <시민의 소리>는 다양한 분야의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100명의 시민에게 릴레이로 ‘시민의 소리’를 듣는 기획기사를 마련했다. 광주의 발전과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과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눠본다. /편집자 주

노동주 씨는 영화감독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을 주제로 한 단편 독립영화를 제작해 사람들의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는 시각장애인 영화감독이기 때문이다.
원래 공부 잘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축구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대학병원 응급실이다. 옆에선 어머니가 울면서 그를 보고 있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엄마. 왜 저를 묶어놨어요. 좀 풀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의 어머니는 “동주야. 엄마가 너를 왜 묶어놔”라며 대성통곡했다. 온몸에 마비가 오는 ‘다발성 경화증’이라는 희귀 난치성 병이었다. 하지만 노동주 씨 어머니의 뜨거운 기도 덕분이었는지, 그의 병세는 많이 호전돼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완치된 줄 알고, 퇴원 후 늦춰진 학업을 따라가려고 밤을 새며 공부했다. 어느 날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피곤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자고 일어났는데 양쪽 눈이 모두 보이지 않았다. 다발성 경화증이 재발해 시력을 앗아간 것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시각장애인의 고충과 고민들을 영상을 통해 말하고자 한다.
이번 100명과의 대화 스물네 번째 순서는 노동주 영화감독과 대화를 나눠봤다.

   
 
▲만약 광주광역시장이 된다면 어떤 정책을 펼치고 싶나요?
-윤장현 시장님이 당선됐을 때, 기대가 아주 컸어요. 선거유세를 할 때, 근육병을 앓고 있는 장애인 한 분을 동원해 장애인들의 표를 많이 얻기도 하셨죠. 장애인이라는 입장에서 ‘우리를 위해 많은 일을 해주실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막상 시장에 당선된 후 딱히 장애인들을 위해 해준 것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중증장애인들은 활동보조인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가사, 사회활동 참여, 운동, 문화생활 영유 등을 함에 있어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책정된 시간에 따라 장애등급별로 하루 최대 8시간의 활동보조인이 도와줍니다. 아주 중증인 장애인에게는 24시간도 지원해주기로 한 지역도 있어요. 또한 한 사람의 장애인에게 최대 3명까지 지원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사회활동을 함에 있어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윤장현 시장님 공약 중에 활동보조시간을 더 늘려주겠다는 공약도 있었던 것 같은데 실천이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화정동에 있는 광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는 초중도 장애인들이 너무 많아요. 더 많은 활동보조인 시간이 필요한대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아요.

제가 만약 시장이라면, 물론 예산문제가 있겠지만 예산범위 내에서 중증장애인들의 실태를 파악해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문화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지원해주고 싶습니다. ‘저 사람은 활동보조인 없이는 살 수 없겠구나’라는 사람들만이라도요.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집에만 갇혀 지낼 순 없잖아요. 장애인들도 사회활동을 하고 싶어하고, 문화여가생활도 누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최근에 광주비엔날레에 홍성담 화가가 세월오월 그림을 그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풍자한 것을 상부의 요구로 닭으로 교체를 했음에도 광주시장이 그 그림을 내리라고 했어요.

윤장현 시장님도 홍성담 화가와 같이 시민운동을 하셨던 분인데, 이런 분이 어떻게 하나의 문화고, 예술인 작품을 반대하고 내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물론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정부의 예산을 가져와서 광주 살림에 보태야하는 문제들이 있겠죠. 하지만 그 당시의 결정은 남자답지 못했고, 시장답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시민들도 이 상황을 무척 안타깝게 바라봤었습니다.

제가 광주시장이라면 문화 표현의 자유, 표현의 권리를 보장하고 싶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문화적으로 의사표현을 하고,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싶습니다.
범법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본업이 영화감독이잖아요. 영화감독의 입장에서 펼치고 싶은 정책이 있나요?
-영화라는 예술은 가장 시각적인 예술인 것 같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렌즈로 찍어서 내가 보는 세상을 영상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가장 시각적인 작품을 가장 시각적으로 불편한 시각장애인이 만든다는 것부터 아이러니가 생겨요. 사람들은 ‘어떻게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만들 수 있어?’라고 생각하죠.

저는 어릴 때부터 눈을 감고 상상하며, 그 세상을 보며 살아왔어요. 하지만 지금 제가 보는 세상은 늘 밝고 환하고 풍요롭지만은 않아요.
2014년은 너무 화가 나고, 분노가 차오르고, 우울한 한 해였어요. 세월호 사건을 들으면서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나 먹먹한 심정도 있었고요.
다행히 이상호 기자가 이 내용으로 ‘다이빙벨’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지만, 상영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답답했었습니다.

대중들이 많이 볼 수 있을만한 영화를 만들려면, 정해진 눈으로 ‘A는 B다. B는 C다’라는 진행이 보여야 합니다. 하지만 제 눈으로 보면 ‘A에서 Z로, Y에서 C로’가는 등 이야기가 튈 때가 있어요. 이야기의 구성이 돼야 하니까 그 과정에서 시각장애인 혼자서는 절대 영화를 만들 수 없습니다. 영화계 종사자나 스텝들이 보조를 해줘야하죠.
하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감독들에게 후원해주는 기업은 적고, 대기업에서 후원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기업의 입맛에 맞는 영상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따라서 광주시에서 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꿈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지원을 많이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홍보를 해줘야 광주시민들이 많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노동주 감독이 만든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겠습니까?’라는 영화를 봤어요. 인상 깊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는데, 이 작품 뒤의 배경을 설명해주세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 아닙니다. 꽃다운 나이 스무 살에 시력을 잃었죠.
하지만 기죽지 않고, 죽어라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토익 만점에 수질환경기사, 대기환경기사, 한자2급, 정보처리기사, 사무자동화산업기사, 워드프로세서1급 자격증 등을 딸 수 있었어요.
소위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는 ‘스펙’이 갖춰진 것이죠. 그래서 기업들에 지원했습니다.
입사지원서에 시각장애인이란 것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면접을 보러가서, 면접관이 물어보는데 엉뚱한 곳을 쳐다보고 대답한 것 같습니다. 면접관들도 눈치를 챘겠지요. 결국 모든 곳에서 떨어졌습니다.

선배에게 가서 하소연했습니다. 왜 나는 자격, 스펙 다 갖췄는데 기업에서 써주지 않느냐고요. 선배가 그러더군요.
“동주야. 너 시각장애인이야. 나라도 너 안 뽑겠다”
이 말을 듣고 망치로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이후 안마사자격증을 따러 시각장애인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너희 꿈이 뭐냐고 물었어요. 아이들은 야구선수, 모델, 연예인, 회사사장, 심지어 비행기 조종사까지 정상인들도 가지고 있는 꿈을 똑같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에게 ‘너네 꿈 버려. 사회에서 너네 안 받아줘’라는 말을 차마 못하겠더라고요. 너무 눈물 나고, 화나고, 분했습니다.
그때, 이 현실을 사회에 고발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저는 광주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고용주라면 시각장애인을 고용하시겠습니까?”
시민들은 ‘힘들 것 같다’, ‘다른 직원들과 어울리지 못할 것 같다’, ‘업무 효율성과 생산성이 낮아질 것 같다’, ‘다치기라도 하면 보상하기 어렵다’ 등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시각장애인 학교 학생들의 저마다 자신의 꿈을 말하는 장면이 이어지죠.

장애인에게도 꿈이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꾸는 똑같은 꿈이요. 저는 이 꿈을 철저히 외면하는 현실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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