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의 종, 12년 논란의 역사
민주의 종, 12년 논란의 역사
  • 박용구 기자
  • 승인 2014.12.31 0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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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의 종', 제야의 종 타종으로 면죄부 부여 움직임
"광주시, 그들은 종 치기 행사에만 목 매달고 있나?"
▲ 12년 논란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제야의 종 타종을 기다리고 있는 민주의 종

【시민의소리=박용구 기자】제야의 종 타종이 몇 시간 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민주의 종’과 관련된 논란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최초 민주의 종 건립이 논의된 2002년부터 시작된 이 논란은 1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민주의 종’은 지난 2000년 11월 동구지역 유지 297명이 주축이 된 ‘광주 민주의 종 추진위원회’(위원장 김계윤)가 동구청의 지원을 받아 추진해 왔지만 건립 부지 선정과 기금 조성, 시민들의 충분한 공감대 등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보류됐다.

이 과정에서 2002년 4월 17일 광주전남문화연대, 참여자치21 등 이 지역 5개 시민단체는 성명을 내고 “민주의 종을 세우려면 민주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사업이 공공예술적 측면, 5.18의 정신계승 측면, 행정의 투명성 확보, 그리고 문화소비자인 시민들의 공감대 수렴 등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우여곡절 끝에 이 사업은 2002년 광주시로 이관되었다. 시는 자치행정과를 추진 전담부서로 지정해 5개 자치구로부터 지도급 인사를 추천받아 추진위원회를 확대 개편했다. 그리고 2003년 3월 5일 시청 상황실에서 ‘민주의 종’ 추진위 구성 및 첫 모임이 열렸다.

대기업 중심 뭉칫돈 모금...시민참여 거의 없어

이 당시 추진 과정의 문제는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이해와 동의가 수반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 실무 중심으로 추진됐었다는 점이다.

광주시로 이관되고 추진위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추진위는 토론회나 공청회 한번 거치지 않았다. 더욱이 당초 추진위와 같이 푼돈보다는 대기업 중심의 뭉칫돈을 모금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시민의 참여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는 결국 재원 전부가 시보조금과 삼성화재해상보험(3억원)과 광주롯데백화점(3억원) 등 대기업으로부터 거둔 준조세성 기금으로 구성된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민주의 종’이라는 이름도 추진위에서 별다른 검토 없이 통과됐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민주의 종은 이 사업이 시작된 지 3년이 다 된 2005년 10월 17일 옛 전남경찰청 부지에 세워진 종각 안에 걸렸다.

총 사업비로는 24억3400만원(종 제작비 9억900만원, 종각 건축비 5억6500만원, 종각 부지(63평) 8억4000만원, 부대비 1억2000만원)이 사용됐다. 이 사업비는 시비 10억4000만원, 구비가 1억600만원,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21개 법인 기금 12억8800만원, 개인 100만원 등으로 마련됐다.

기금을 낸 '개인'의 신분과 기업들이 낸 정확한 액수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민주의 종 추진위원들이 단 1원도 기금을 내지 않은 점은 '명예'만 얻으려 한 셈이었을까?

건립추진위원장과 일부 위원들 적절성 논란

이때부터 민주의 종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추진과정과 기금 모금 방법의 문제와 더불어 김양균 민주의종 건립추진위원장과 일부 위원들에 대한 적절성 논란이 중심으로 떠오른다.

김범태 5.18 당시 시민협상 대표는 2005년 10월 21일 <시민의소리> 특별기고를 통해 “일부 추진위원들을 제외하고 민주의 종 건립 취지인 민주, 인권, 평화와 번영의 염원과 8.15광복절 그리고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의미에 적합한 인사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고 특히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양균 변호사의 경우 그에 걸맞은 분인지 의아할 따름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박정희 독재자 시대로부터 광주민중학살의 주범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호남 민중의 고립화를 위한 3당 야합의 주범 김영삼 정부에 이르기까지 고등검사장,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 독재정권 아래서 요직을 두루 역임한 사람이 과연 민주의 종 건립추진위원장으로 적합한 인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김 변호사는 헌법재판관으로 재직 중이었던 지난 93년 5.18 광주민중항쟁동지회에서 제기한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 위헌확인 청구소송’에서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자기 관련성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적법한 것”이라 하여 각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민주의 종 첫 타종식은 2005년 11월 1일, 광주 시민의 날을 기념해 열렸다. 이날 타종식에는 박광태 광주시장, 김양균 민주의종 건립추진위원장, 김희중 천주교 광주대교구 총대리주교 등 각계 인사 8명이 참석했다.

이어 2006년 1월 1일 새벽 민주의 종 건립 후 첫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열렸다. 이날 타종식에는 박광태 광주시장을 비롯, 시의회 의장, 지역원로, 종교계, 시민단체, 여성계, 노동계 대표와 소녀가장 등 14명이 참여했다.

표지석과 기념비 논란...처음으로 제동

순탄할 것처럼 보이던 민주의 종 타종은 민주의 종 앞에 설치돼 있던 표지석과 기념비가 논란이 되면서 처음으로 제동이 걸리게 된다.

2006년 5.18 제26주년 기념일 때의 민주의 종 타종은 결국 무산되기에 이른다.

당시 5.18 행사위가 “건립추진위에 참여한 일부 인사들이 ‘비민주적’이며 이들의 이름이 적힌 표지석 등은 철거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시는 “건립 추진위에는 5.18 관련 단체 인사들도 다수 참여했으며 일부가 당시 공직에 있었다는 이유로 ‘비민주적’이라는 주장은 무리다”고 반박했다.

이후 민주의 종은 2008년 광복절인 8월 15일 다시 타종이 된 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공사로 2009년 4월 해체돼 그동안 환경시설관리공단에 보관되었다.

긴 숙면에 빠진 민주의 종을 다시 깨운 것은 2011년 12월 16일, 깨진 종이 납품된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였다.

민주의 종은 “깨졌고, 무게가 적고, 제작방식이 다르다”는 논란에 휩싸였고, 원제작사인 성종사가 자비 9억900만원을 들여 최초 제작시와 동일하게 다시 제작해 납품하면서 일단락됐다.

시민 동의 없는 市의 일방적 타종행사

‘깨진 종’ 파문을 야기했던 광주 ‘민주의 종’은 2013년 9월 10일 예전과 같은 자리에 재설치 됐고, 2015년 1월 1일 0시를 기해 7년만의 제야의 종 타종을 기다리고 있다.

광주시는 26일 2015 을미년 새해를 맞아 오는 31일 오후 11시20분부터 새해 1일 오전 0시20분까지 금남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민주의 종각에서 ‘민주의 종’ 타종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박남언 시 안전행정국장은 이날 “2015년은 호남고속철도 개통,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개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 공동혁신도시 준공 등 지역 발전의 획기적 전환점이 예상되는 해로 시민들의 기대가 매우 크다”며 “시민 역량을 결집해 도약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마련한 타종식에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는 타종은 반대하지만 적극적인 반대의사를 표현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반면 5.18 관련 단체 일부와 시민단체협의회는 건립취지문이 새겨진 원형 기념비를 철거했으므로 타종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또 다른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시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논란이 됐던 ‘건립취지문’과 ‘광주가는 길’이라는 시가 새겨진 원형비석을 철거했다고 하더라도 건립 추진의 역사는 사라지지 않는다”면서 “이번에 타종을 하게 되면 이 건립 추진 역사마저도 정당성을 갖게 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논란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윤장현 시장은 30일 “지역사회 일부에서는 여전히 민주의 종 위치의 적정성 등에 대한 논의를 제기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며 “이런 의견 등을 반영하여 앞으로 광주시는 민주의 종각 위치에서 과거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고초를 겪었던 역사적 사실을 안내표지석으로 제작·설치하는 방안과 민주의 종과 관련하여 문제 제기된 제반 사항에 대해서도 공론화하여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남는다. '민주의 종'은 여전히 광주시민이 참여하지 않은 채 제작된 종이라는 점이다. 광주시나 지역사회는 이런 점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누가 뭐라 하든 종만 치면 될 일이라는 생각 뿐인 것 같다. 이것이 '민주의 종'을 치는 것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한 이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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