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을미년(乙未年)에 무슨 일이(?)
역대 을미년(乙未年)에 무슨 일이(?)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12.30 1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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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을미사변, 을미개혁 발생해
1955년 6.25전쟁 휴전 직후 전국에 흉년 들어

2015년의 새해는 간지(干支)로 따져서 양의 해다. 60간지 중 32번째로 을미년(乙未年)의 ‘을(乙)’은 청을 뜻하고, ‘미(未)’는 양을 뜻해 올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청양띠’가 된다.

양(羊)은 일반적으로 성격이 온순하고 착한데다 화목하면서 평화롭게 사는 동물로 알고 있다. 보통 양들은 무리지어 살고 있으며, 활동력이 적당히 있는 편으로 사회성이 뛰어나 공동체 내에서 잘 어울린다고 한다.

여기에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색깔이 푸른색이 더해졌다. 따라서 청양띠는 진취적인 청색의 영향을 받아 양띠의 단점이 보완되는 해라고 보면 된다.

그렇다면 지나온 ‘을미년(乙未年)’에는 무슨 일들이 벌여졌을까?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 을미년에 발생한 가장 유명한 사건으로 역사의 슬픔인 1895년 10월 8일 ‘을미사변’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을미사변은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주동이 되어 경복궁에 쳐들어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일본세력 강화를 위한 정변이었다.

을미사변이 발생했던 이유는 우리나라가 러시아를 이용해 일본의 간섭을 벗어나고자 다양한 노력을 해왔지만, 이를 지켜본 일본은 친러정책의 가장 핵심인물이었던 명성황후를 암살하기로 결정하며 벌어진 사건이다.

또한 같은해 외세의 압력을 받은 친일파 김홍집 내각은 을미개혁으로 단발령을 공포해 성인남자들은 오랫동안 길러왔던 ‘상투’를 자르게 됐다.

을미개혁으로 지금껏 음력을 사용해오던 전통을 깨트리고 정부는 ‘양력’을 도입해 1896년 새해 첫날의 기능은 양력설(신정)에 내줬다.

그 후로부터 60년 후. 1955년 을미년에는 6.25전쟁 휴전 직후로 전국에 흉년이 이어졌다. 최근 개봉한 영화 국제시장을 봤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을 듯하다. ‘쪼코레또 기브미’를 외치며 미군 트럭 뒤를 따라가던 때가 있었다.

베이비부머 첫 세대인 1955년생들이 60세, 환갑을 맞이하는 해이다. 이들은 어느덧 대부분이 직장에서 퇴직을 했거나 서서히 퇴장을 준비하는 나이가 됐다.

이렇듯 을미년의 근현대사는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했고, 절망스러운 사건들이 많았다. 지난 갑오년 2014년은 너무나 굵직하고 커다란 사건 사고가 발생했던 한해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표현한 사자성어로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으로 ‘도행역시(倒行逆施)’가 선정됐고, 올해는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한다’는 뜻으로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선정됐다. 2014년과 2015년 모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만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2014년에 있었던 대형 참사 세월호 침몰, 헌정최초 정당 해산 등 초유의 일들이 2015년 을미년 새해에는 발생하지 않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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