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손맛팥죽’ 손이 저울이제~
‘할매손맛팥죽’ 손이 저울이제~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12.30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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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시니어클럽, 노인일자리사업으로 지난 7월 문열어
비슷한 연령대 지닌 여성 어르신, 경제활동 참여 독려

1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동짓날에 먹는 팥죽. 얼어붙은 몸을 녹이며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하며 먹는 팥죽. 나쁜 기운을 쫓아내고 새알심을 나이만큼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등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다.

이렇게 옛 설화와 추억이 담긴 팥죽은 시골에 가면 할머니가 직접 정성껏 끓여주는 달달한 팥죽의 맛을 똑같이 내는 곳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60~70대 할머니들이 광주 동구에 ‘할매손맛팥죽’집을 열어 숨은 맛 집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일거리를 찾기 힘들었던 할머니들이 자신의 음식솜씨로 역량을 발휘했다. 더욱이 경제활동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펄펄 끊는 뜨거운 불 옆, 정성과 사랑 담아내

“요리솜씨 경력이 몇 년인데 손이 ‘저울’이고, 간이 딱딱 맞아 떨어져불제”

조선대 정문 앞 전남대병원 일방로 골목에 위치한 ‘할매손맛팥죽’ 가게를 찾았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할머니들은 맛있는 팥죽을 끓이기 위해 역할분담을 해서 한쪽에서는 팥을 걸러내고, 한쪽에서는 새알심을 빚을 찹쌀을 불리고 재료 준비에 분주했다.

팥죽은 보통 펄펄 끓는 물에 준비된 팥과 정성들여 만든 새알심을 넣고 눌어붙지 않도록 계속 저어주는 정성이 들어간다.

또한 오랜 시간 동안 뜨거운 불 옆에 서서 일하기 때문에 때로는 몸이 불편하고 힘들지만 맛있게 먹어줄 사람들을 생각하며 팥죽에는 사랑도 들어간다.

할매손맛팥죽에서 주방장을 맡고 있는 박영례(70)씨를 만났다. 그녀는 30여년 요리 경력에 박 씨의 손맛은 유명하기로 알려져 업체에서 스카우트를 해갈 정도라고 한다.

박 씨가 또 찾고 싶은 맛있는 손맛을 가지게 된 것은 소문난 요리솜씨를 지닌 어머니 덕분이다. 할머니는 “나는 시골에서 자랐었는디 어릴 적 엄마가 ‘팥죽’을 그렇게 맛있게 끓여주셨던 기억이 있어. 그때 당시 엄마는 동네에서 요리도 잘하고 참한 며느리로 소문나 모든 잔치날에는 동네에서 요리를 하고 다니셨어”라고 떠올렸다.

그렇게 요리솜씨가 뛰어난 어머니 곁에서 자라온 탓에 박 씨는 시집을 가서도 시아버지에게 “아 글쎄, 우리 며느리는 ‘똥’말고 버릴 것이 없어”라는 말을 들으며 예쁨을 받고 살아왔다.

‘손이 아깝다’ 소문난 음식솜씨 지녀

그러나 안타깝게도 박 씨는 42세의 젊은 나이에 시청에 근무하던 남편이 갑자기 뇌를 다치게 되어 하늘로 보내게 되고 홀로 사형제를 키워야했다. 그렇게 소일거리를 찾아 돈을 벌기 시작하게 된 그녀는 호텔 주방에서 묵묵히 일을 해왔다고 한다.

‘손이 아깝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이 바닥에서 그녀의 손맛은 소문날 정도였다. 당시 여기저기에서 주방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이어졌고, 여러 골프장에서 주방찬모로 지내오다 동구시니어클럽을 통해 ‘할매손맛팥죽’의 주방장을 맡게 됐다.

이처럼 예전부터 요리에 일가견이 있었던 그녀는 이러한 경력으로 안 해본 요리가 없을 정도로 모든 요리를 해왔다. ‘팥죽’을 만드는 조리법에 대해서도 평범한 듯 따라할 수 없는 노하우가 있는 듯했다.

박 씨는 “팥죽을 만들 때에도 손이 다 알고 있어블지, 손으로 어느정도 집어 올려야 이 맛이고 어떤 맛 인지 바로 알 수 있고, 손이 저울이여~! 그게 바로 판단력이고 기술이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각자의 손맛들이 조금씩 달라”라고 말했다.

팥죽을 만들 때 제일먼저 팥에도 ‘독기’가 있기 때문에 삶아내고 물로 씻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다시 삶고 끓이는 것을 조금씩 다르게 불 조절을 해가면서 3시간동안 끓여야 한다. 팥죽에도 온도별로 소금 간과 설탕 간을 조금씩 다르게 해야한다고 한다.

현재 ‘할매손맛팥죽’에는 옛날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다른 메뉴들도 다양하다. 동지죽, 바지락칼국수, 호박죽, 김밥, 식혜, 생강·모과차, 레몬차 등 그리운 맛들을 맛 볼 수 있다. 재료 또한 국산재료만 쓰는 특별함을 더하고 있다.

경제활동 참여 어려운 노년세대 일자리 제공

한편 박 씨는 “이제는 아이들도 다 길러내고 손자까지 봤는디 아직도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은께 소일거리를 찾게 됐어”라며 “어린 손자들이 100점 맞아오믄 나도 돈을 벌고 있응께 만 원짜리 한 장 꺼내면서 용돈을 줄 수 있어 손자 키우는 재미가 얼마나 재미있고 좋은지 몰라”고 활짝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렇게 자활음식점인 ‘할매손맛팥죽’에서 일하고 있는 어르신들은 적은 임금이지만 비슷한 연령대의 친구들과 함께 용돈벌이도 하며, 즐겁게 웃으며 노년을 보내고 있다.

동구시니어클럽에서 노인일자리사업의 하나로 지난 7월에 문을 연 ‘할매손맛팥죽’은 어르신들에게 사회참여의 기회를 제공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 수익창출을 통해 지역 노인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65세 이상의 여성 어르신 12명이 3개조로 돌아가며 지역민들에게 할머니들의 손맛이 담긴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고 있어, 할머니 손맛이 입소문이나 찾아오는 손님도 줄을 잇고 있다.

영업시간은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운영하고 있다.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담긴 팥죽이 4,000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지역민들에게 그리운 옛 맛을 환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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