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5)
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5)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동지회 고문
  • 승인 2014.12.18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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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친일 문제가 나오면 그런 문제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생뚱맞아 하는 인사들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한다.

한국과 일본의 과거가 있고 현재가 있는데다 친일의 정신적 외상이 한국인 각자의 자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친일파의 후손은 아무래도 찜찜해서 사람들의 공적 생활에 상당한 손해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사코 나의 할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결코 친일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비록 친일했다손 치더라도 그보다 건국의 공로가 훨씬 컸다고 발명하기도 한다.

미국내 대표적 지일파 교수인 조셉 나이(Joseph Nye) 하바드대 석좌교수는 한일관계를 언급하면서 "한국과 일본이 이제는 역사를 뒤로 하고 미래를 보아야 할 때"라고 충고하고 지일파 교수답게 "지금 일본은 70년전의 일본이 아니라 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평화를 지켜온 나라"라고 일본을 두둔하면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우뚝 서고자 하는 일본의 우경화를 간과하고 있다.

당사자에서 벗어나 있는 그에게 중국과 한국의 일본에 대한 우려는 기우일 수도 있겠다. 한국의 친일파문제도 이제 70년이 넘은 묵은 문제이고 친일의 당사자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으며 당시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실이 있었음에도 친일파 청산이 실패했다. 반백년이 훌쩍 넘은 지금 긁어 부스럼격으로 국민간의 위화감을 조성할 것이 뻔한데도 과거사를 꼭 정리해야 하느냐고 욱박지르는 주장이 뉴라이트들이 앞장서고 불행한 과거를 잊고 싶어하는 정서들이 그 바탕을 제공한다.

대중들에게 있어서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역사적 응어리와 가치보다는 구체적이고 손쉬운 즐거움이 먼저여서 갈등은 해소되거나 은폐되어 태평성대의 외양만 갖추면 그만이다(?) 오늘이 편하고 즐거우면 만만세다 그러나 시세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난다.

비록 해방 직후에는 이승만 정권의 농간으로 친일파 청산이 실패했지만, 민족정기를 바로 세운다는 측면에서 시민들의 뜨거운 관심과 적극적 의지에 힘입어 2004년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여 반민족 행위의 기준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특정신문은 반대하였는데, 현실정치적 관점이 찬반의 향방을 결정짓는 가늠자가 되었다.

뉴라이트 측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과 일상의 접촉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져 협력은 불가피했고 그러한 부서와 직종은 ‘주저하는 협력자’ 일 수 밖에 없어 당시의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먼저 이해할 것을 주장하였다.

상당한 논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골몰하고 천착하는 목적은 바람직한 친일파 청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친일파 청산을 비껴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민족정기의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민족해방 투쟁만을 제고하는 것은 민족주의의 한계와 그 왜곡 가능성을 성찰없이 수용할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일제의 동원과 강압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지만, 독립운동과 비교할 수 없는 큰 규모로 이루어진 전쟁수행에 따른 제반의 조선인들의 행위는, 친일과 부일을 통해서 일본적 신세계인 대동아 공영권에서 조선인의 위상과 역할을 높이려는 민족을 위한 친일이라는 1940년대의 친일 전도사들의 주장도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삶들은 역사라는 흔적을 남긴다. 자신들의 결정력이 차단되고 봉쇄된 가운데에서도 생존은 유지되어야 하고 꿈과 희망의 에너지가 생성 분출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면, 왜곡된 역사도 식민사로 쓰여저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열악한 생존 환경에서도 최소한의 윤리가 있으니 나의 생존을 위해 주변의 삶을 파괴하거나 훼손해서는 안될 것이다.반민족 행위의 기준이 이를 잘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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