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 13-상카트르 Le Centquatre
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 13-상카트르 Le Centquatre
  • 정대인 전 미국 산타페에술대 교수
  • 승인 2014.12.1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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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만들어진 이래, 아니 만들어지기 이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던 곳, 상카트르 Le Centquatre - 불어로 숫자 104를 의미한다. 오래된 장례식장 건물을 예술,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건축물의 형태나 규모를 보면 기차역을 개조해서 만든 오르세 미술관이 생각나기도 한다. 파리에서 빈곤한 지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19구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문화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대규모 쇼핑몰이나 아파트 단지가 아니라 예술을 통해서 지역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그 생각이 감탄스럽다.

처음 계획 단계에서는 예술을 공장처럼 제도화시키는 것이 예술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의심도 있었고, 오픈 스튜디오 개념으로 방문객들이 아티스트들의 작업 환경과 과정을 가까이서 살펴보는 것이 예술가들을 마치 동물원에 가둬놓는 것이 아니겠냐는 부정적인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풍부한 행사 일정이나 소속 레지던시 아티스트들의 작업 등을 살펴보면 그런 걱정은 필요 없어 보인다. 정말로 커다란 메인 홀을 중심으로 벽 쪽에 위치한 작업실 유리 너머로 작가들의 모습과 진행 중인 작업을 살펴볼 수 있었다.

딱히 특정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 방문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인상 깊었던 것은 낙후된 환경에 예술의 손길이 닿음으로써 정말로 변화가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삼삼오오 모여있는 (아마도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이 붐박스에서 나오는 힙합 리듬에 맞춰 춤 연습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만약 으슥한 골목에서 이렇게 덩치 큰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봤다면, 조금은 위협적으로도 느껴졌을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주변 시선은 전혀 개의치 않고, 열심히 춤을 연습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다.
젊은 혈기가 끓어 넘치는 그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그 에너지를 분출하는 대신에 자연스럽게 이곳에 와서, 몸을 움직이면서 그 열기를 춤으로, 긍정적으로 풀어낼 공간이 있다는 것, 그 에너지가 예술 활동으로 이어지고 또, 그 에너지가 갤러리 전시와 입주 작가들 그리고 방문객들에게 전달되고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아름다운 하모니처럼 느껴졌다. 그 하모니는 전통적인 클래식 음악의 선율이라기보다는 날이 살아있는 힙합 음악의 리듬에 더 가까웠다.

젊은이들에게는 분출구가 필요하다. 지금 머무르고 있는 20구 벨빌역 근처의 데노예즈 거리 Rue Denoyez는 온 벽이 그래피티로 뒤덮혀 있는데, 매일매일 새로운 페인팅이 이전의 그림을 덮으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벽화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다녔던 미국의 학교에서도, 당연히 학교 규칙 상, 건물에 스프레이 페인팅을 하면 안되지만, 유일하게 모든 것이 허용되는 지하 복도가 있었다. 그 곳에는 새벽 시간에도,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다.
물론, 그래피티 문화가 단지 그림을 그릴 장소가 없어서 시작된 것은 아니고, 이렇게 따로 공간이 마련된다고 해서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무조건 젊은 세대를 윽박지르고 억압하지 않고, 숨통을 열어주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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