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추@[미생] 원본 만화보다 TV드라마가 더 재밌다.
강추@[미생] 원본 만화보다 TV드라마가 더 재밌다.
  • 김영주
  • 승인 2014.12.16 1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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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에 만화[미생]을 강력추천했다.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드라마가 케이블 tvN에서 12월 20일까지 20회로 종영한다는데, 이제 18회로 막바지에 이르렀다. 만화가 너무 재밌고 실감났었는데, 드라마는 원작만화와 내용도 상당히 다르고 더욱 실감나서 훨씬 더 재미있다. 사람들은 대체로 “영화(또는 드라마)가 원작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난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인지 원작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번도 없다. [완득이] [타짜] [레미제라블] [마당에 나온 암탉] [위대한 개츠비] [다빈치 코드] · · ·, 모두 영화가 더 좋다. [미생]도 그렇다.

메인 포스터

난 촌닭처럼 순박한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기 때문에, 세상살이 인심을 전혀 모른 채 자랐다. 우리 세대가 대체로 부모가 자식을 치밀하게 관리해서 자랐다기보다는 밥만 겨우 먹이고 나머지는 방치상태라고 할 정도로 들판에 내버려두고 방목하는 경우가 수두룩했다. 길바닥에 돌맹이처럼 혼자 이리저리 부닥치고 넘어지고 깨지면서 마구 굴러다녔다. 난 그 중에서도 그야말로 완전 방목이었다. 타고난 성격이 부드럽다 못해 물러 터져서, 양아치나 깡패 쪽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가 이런 푸념을 늘어놓는 것은, 아직 솜털도 벗지 못하고 젖비린내까지 어린 초롱초롱한 학생들에게, 그들이 3년~5년 뒤에 만나게 될 세상살이가 얼마나 냉혹하고 비열하고 추잡한 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이다. 어쩌다 좁쌀만큼 이야기해 줄 때가 있지만, 구체적이지 못해서 별로 생생하지도 못하고, 괜시리 음울하고 삐딱하다는 인상만 남긴 것 같아서 뒤끝이 찝찝하다. 학교울타리를 벗어나서 찬바람 몰아치는 사회생활에 들어서면서, 난 판판이 실패했고 껀껀이 당했고 물러터지고 모자라고 어리버리했다. 빼앗기고 뒤통수 맞고 밟히고 오욕에 찌들었다. 술에 잔뜩 취한 어느 날, 차디찬 마루바닥에 누워서 “하느님, 개~새끼!”라고 외친 뒤로는 그 흔하던 눈물이 말라버렸다. 그리곤 내 모든 걸 모두 다 갈아엎기 시작했다. 그 노력이 10여 년을 흐른 뒤에야, 겨우 50%쯤 바꿀 수 있었고, 이젠 겨우겨우 숨 쉬고 겨우겨우 지탱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내 인생모토 세 가지가 생겨났다. “다 뺐기더라도, 밥과 김치는 뺏기지 말자! · 계단은 천천히 살피면서 하나씩만 밟고 가자! · 빵점인생이 되지 말자!”

그런데 만화[미생]을 만나면서, 어린 학생들에게 그 답답함을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 공부는 못하더라도, [미생]을 꼭 보세요. 여학생들에게 별로 재미없을 수 있고, 껌이나 땅콩 같은 가벼운 재미는 아니지만, 머지않아 여러분 코앞으로 닥쳐올 고달픈 인생을 미리 보여줄 [미생]을 보세요. 이 세상의 매운 맛을 모르고 그렇게 착한 얼굴로 살아가면, 바보인생이 됩니다.” 그리곤 가슴을 텅텅 두드리며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진정으로 진정으로 가슴에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말합니다. [미생]을 세 번 이상 보세요.” 길게 말하면 30분, 짧게 말하면 5분으로 족하다. 이 비열하고 추악한 세상을 삐딱하게 비틀어서 말하지 않아도 되고, 흥분하고 열 받아서 침 튀기지 않아서 좋고, 교과서에서 벗어나 고리타분한 설교라는 비아냥이 없어서 좋고, 그 어떤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서 내 개인 사생활을 들추어내야 하거나 내 주변에 그 누군가를 씹어야 하는 부담감이 없어서 좋다.

<예고편> http://program.interest.me/tvn/misaeng/2/Vod/VodView/201409171322/914172/62904

대학교 신입생이 보면, 그 참맛의 50%밖에 느끼지 못할 게다. 졸업생이 보면, 그 맛의 70%는 느낄 꺼다. 졸업하고 사회생활 3년~5년차에 보면 100% 인생 교과서처럼 보일 게다. 그러나 나처럼 쉰 세대쯤 되어서 보면, 오과장과 김대리의 캐릭터가 허구의 낭만적 로망으로 보일 테고, 같은 동기의 캐릭터에 인공적인 조작이 눈에 거슬리고, 다른 부서 대리들이나 과장과 부장들도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과장되어 있다고 할 꺼다. 무엇보다도 주인공 장그래가 너무 곱상하고 너무 단정하고 너무 좋은 쪽으로만 그려져서 가장 허구라고 하겠다. 그래서 리얼러티가 떨어지는 대목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 이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안팎으로 만날 수밖에 없는 ‘정치’를 이만큼 생생하게 보여주는 작품도 없다. 새로 들어온 최과장은 말한다. “이런 게 바로 ‘회사안의 정치’라는 거야. 인생이 정치니까, 그렇게 알고 빨리 빨리 적응해야지~!” 그렇다. 그런데 거기에는 “얼마만큼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그 정도와 방법에 고민이 그림자처럼 뒤따라온다. 그 호흡조정이 골치 아프다. 그런 생지옥 같은 아귀다툼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처자식을 먹여살려야 하니 벗어나질 못한다. 나름대로 살아남을 ‘몇 가지 원칙’을 꽉 붙잡고 견디고 이겨내야 한다. 그 ‘몇 가지 원칙’이 때론 손해를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 ‘개잡놈’이 되지 않기 위해선 그 ‘몇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오과장과 김대리가 그 ‘몇 가지 원칙’을 지키려다가 그런 낭만적인 모습을 보이는 거다. “똥밭에는 똥파리, 꽃밭에는 꽃나비” 과연 얼마쯤에서 똥파리가 되고 얼마쯤에서 꽃나비가 되는 걸까? 정답은 없다. [미생]을 되새김질하며 ‘자기 나름의 자기 바둑’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20대는 초반 중반 종반에 걸쳐 [미생]을 서너 번쯤 되새기면서, ‘오과장과 김대리와 장그래의 로망’을 냉철하게 저울질하며 장기적인 생존과 안목을 키워야 한다.

지금 이 세상이 지겨운 것은, 바로 가까운 주변에 [미생]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그 수많은 작업과 음모를 제대로 까발리는 씻김굿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서로 물고 물리면서 평행상태를 유지하며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살아가는 가증스런 세상이다. 그나마 이 가증스런 가면을 벗겨내서 까발려 주는 [미생]이라는 작품이 만들어졌다는 게 지금 20대와 30대에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지금 20대가 40~50대가 되는 날, 이런 [미생]들이 반으로 줄어들어서 [반생]이라도 이룩하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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