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시인, 지역 정신은 ‘문학’에 있다
김정희 시인, 지역 정신은 ‘문학’에 있다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12.10 17: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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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국제 PEN광주문학상, 광주문학상 동시 수상 '영예'

“성과에 대한 지나친 칭찬이기보다 격려의 의미로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극단 정거장의 공연 준비소리가 한창인 서구문화원을 찾았다. 겨울바람을 뚫고 서구문화원의 문을 열자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김정희 씨는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이해줬다.

연말을 앞둔 김정희 시인에게 기분 좋은 소식이 연달아 생겼다. 제 11회 국제PEN광주지회 문학상 수상과 동시에 제27회 광주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겹경사를 맞이했다. 한 해에 2개의 문학상을 연달아 받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다.

또 오랫동안 활동해왔던 청소년적십자로부터 감사패로 총재상도 받게 됐다. 그녀가 모든 일에 열심히 한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던 터다.

푸른계단, 김정희 시인의 첫 시집

한 해를 마감하면서 3개의 상을 수상해 그동안 묵묵히 활동해온 저력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인터뷰에 앞서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녀는 “동시에 이렇게 영광스러운 상을 주셔서 너무 감사하면서 죄송한 느낌이 있다”며 “오랫동안 활동해온 것을 지켜봤던 이들에게 왜 이제야 받느냐라는 말도 듣곤 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간한 ‘푸른 계단’ 시집은 그녀가 지난 17여 년 동안 써왔던 시를 한 책으로 엮어냈다. 그녀가 등단하게 된 것은 지난 1998년 ‘문학공간’을 통해 등단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르게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녀의 매력적인 인생사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광주 서광여중을 다니던 시절부터 거슬러갔다.

그녀가 중학교를 다니는 던 시절. 학교에서 서클활동으로 청소년적십자를 접하게 되면서 활발한 활동을 해왔다. 활발하게 활동했던 탓에 청소년적십자회 학교 대표가 되고, 광주·전남의 대표까지 맡게 됐었다.

그렇게 전남여고를 입학하고 나서도 청소년적십자 활동을 이어갔다. 당시는 공부에 전념하고, 학업을 더욱 중요시 여기던 시기였지만 학업과 동시에 청소년적십자에서 대표를 맡아왔다.
 

김정희 시인은 “당시 어렸을 때 서울까지 가서 활동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며 “그때부터 적십자 활동을 하면서 동기회 부회장을 맡게 됐고,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어 아주 오랫동안 활동했기 때문에 감사패를 받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풍부한 감수성, 글로 표현한 학창시절 보내

그녀는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풍부하던 시절인 중학교 2학년 때 글을 쓰는 문학소녀였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 그대로를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그러다 당시 지역 내 가장 규모가 컸던 백일장인 ‘용봉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게 됐다.

당시를 떠올리며 “문예반장을 도맡아오면서 글 쓰는 것도 좋아했지만 백일장을 통해 장원을 하면서 글 쓰는데 소질이 있구나! 그때 처음 느끼게 됐다”고 속마음을 털어놨다.

그렇게 글쓰기를 좋아했던 문학생도였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1976년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입학하게 됐다. 대학에서는 교내 신문사 활동으로 글 쓰는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학교 기자생활을 하면서 학보사 편집장까지 맡고 졸업하게 됐다.

이후 국어 교사로 교편을 잠시 잡고, 결혼으로 육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결혼하면서 시집살이를 했었는데 아주 예전에는 지금의 시집살이와 많이 달랐다”며 “외출 자체를 허락을 맡아야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였다”고 떠올렸다.

하지만 글을 쓰던 재능을 이대로 버려둘 수만 없었다. 자녀들을 기르며 주부생활 10여년을 넘기다 보니 “이러다 내가 완전히 화석이 되어 버리진 않을까”하는 생각이 번쩍 들면서 다시 펜을 붙잡게 되는 계기가 찾아왔다.

1997년 어느 날 아침 신문에 1단 기사로 짤막하게 나온 광주시민백일장이 열린다는 단신을 읽게 됐다. 그리고 날짜를 확인했다. 백일장이 열리는 날짜는 신문기사를 읽은 당일이었다. 그러나 시댁식구들과 함께 사는 탓에 외출이 쉽지 않았다.

단 한 명의 독자라도 감동 줄 수 있어 감사

그녀는 “글을 쓰고 싶었기에 백일장에 참가하겠다는 허락을 겨우 맡고서, 참가만 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며 “그런데 오후 5시가 되자 시상식에 왜 참석하지 않느냐는 연락이 왔고, 백일장에서 차상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고 말했다.

그 계기로 인해 그녀는 다시 쓰고 싶었던 글을 쓰면서 펜을 잡게 됐다. 백일장 시상금으로 받은 상금으로 일반문예창작아카데미를 등록하고, 1998년 ‘문학공간’을 통해 등단하게 됐다.

수필과 시로 독자들에게 이야기 하는 그녀는 “여자가 나이 듦에 따라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는 시기에 강진의 옛길이라는 연재물을 쓰게 됐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글인 것 같다”며 “우연히 이 글을 읽었던 독자가 감동을 받아 현재 문학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고, 이 글을 읽고 직접 마량을 가기도 하고,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까지 하기도 했었다”고 했다. 그녀는 이처럼 단 한 사람이라도 인생의 변화를 시킬 수 있는 글을 쓰게 된 점을 소중히 여겼다.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겠다는 김 시인은 “내가 전환기에 느꼈던 감정을 담은 글을 공감하고, 남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 너무 기쁘다”며 “지역정신을 이끌어 가는 것은 소설이나 시와 같은 문학인데 예향 광주에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더욱 가졌으면 한다”고 소망했다.

그녀는 광주가 수많은 문학인을 배출했고 이름있는 문학인들이 많은데도 문학관 하나 없는 것이 내내 아쉽다고 덧붙였다. 민선6기 윤장현 시장이 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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