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
다시 친일 아리랑을 읊는다.
  • 이홍길 고문
  • 승인 2014.11.19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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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이제는 고인이 되어 망월동 5.18묘역에 영면하고 계신 이영희 선생은 독일의 바이즈커 대통령의 2차 세계대전 패망 40주년 기념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그는 “과거의 일들을 정직하게 그리고 왜곡함이 없이 회상함으로써 우리들의 참된 존재의 부분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과거를 기억함은 역사를 통한 하느님의 증언이다. 그것은 속죄의 원칙이다. …이 증거를 망각하거나 거부하는 자는 내일의 일을 상실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마냥 두렵고 싫은 사람들과 세력들이 만연한 것이 그냥 사바세상인 모양이다.

일본의 총리였던 나까소네는 같은 기념사에서 “전쟁에 이기건 지건, 국가는 국가다. 오욕을 털어버리고 영광을 추구하여 매진하는 것이 국가이며 국민의 모습이어야 한다”고 호언했다. 전쟁 가해자의 참회가 있을 수 없겠다. 일본 정부의 망언이 계속되는 소이가 그들의 의식이 역사와 가치에서 벗어나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으려는 것은 한국의 기득권자들도 마찬가지이고 오히려 적반하장도 서슴치 않는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토지조사사업을 높이 평가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당화시키고 있었는데, 한국의 일부 학자들이. 부화뇌동하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그들은 토지조사 사업을 수탈의 방법으로 보는 것을 청산해야 할 환상이라고 주장하면서, 토지조사사업의 약탈성을 부정, 근대적 토지제도를 확립한 정책이라는 미야지마의 견해를 추종하고 있다. 국유지 약탈도 없었고 분쟁지 처리에서 민족별로 기우는 것도 없었으며 민유처분에도 관대했다고 주장하면서 농촌주민과 일반민중은 사업의 성과를 즐거워하고 협조했다고 현실을 호도했다.
역사인식을 애국주의나 피해의식에 함몰되어 선정적 판단이 될 수 있음을 염려하는 충고의 수준을 넘는, 애초부터 식민지성에 대한 관념이 없었고 총독부 권력을 주권국가의 권력에 준하는 정부로 인식하여, 한사코 근대성을 부여하고자 몰두한 결과라 할 것이다.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의병투쟁과 3.1운동의 전국적 미만도 아랑곳하지 않는, 역사를 친일적 편견으로 본 소치가 아닐끼? 아니면 민족공동체 생존을 염두에 두지 않는 근대화 지상주의의 오류일 수도 있겠다. 하기사 친일의 잔여가 오늘에도 이어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왜곡된 역사성이 면면함을 부정할 수 없음에랴.
한국인의 문양도 다양하다. 쪽박 찬 사자방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한국의 오늘을 불량국가로 규정하는 백락청 교수가 있는가 하면 이명박도 조갑제도 있다. 일본인의 스펙트럼도 다양하여 이토와 아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심적인 일본인들도 많다.

이영희 교수에 의하면 1982년의 일본교과서 문제와 89년의 한국인 여성 일본군 강제연행, 정신대, 강제연행 노동자등의 문제를 일본사회에 공개한 것도 일본인들이었다. 그들은 일본재판소에 제소하고 한국의 그 해당자 개인 또는 운동단체들과 협력하여 일본 정부의 공식인정을 받아내고, 일본의 전국으로 계몽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양심적인 일본인들도 많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정치는 창부의 심술 같고 문학은 모방 외에 독창적인 발명이 없고, 신교는 미신으로 한정되며, 위정자는 권력과 허영과 음모와 요설을 즐기고’의 호소이 하지메가 있는가 하면 제암리 학살사건을 애통해 “어떤 학살사건”을 시로 남긴 사이토 다케시가 있고 헐려 짖는 광화문을 슬퍼한 야나기 무네요시도 있었다.
좋은 사람들의 연대는 국경을 초월한다. 지구적 연대와 동북아적 연대가 요청되는 현실에서 옥석을 구별하는 우리들의 인지가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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