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8) 서점 산책: Le Monte-en-l'Air
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8) 서점 산책: Le Monte-en-l'Air
  • 정대인 전 미국 산타페예술대 교수
  • 승인 2014.11.1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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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대인, 이어폰을 낀 여자, 아이패드작업, 2014.

파리에서 놀란 것은 책과 가까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파리의 지하철은 서울과는 달라서 정류장 사이가 매우 짧고, 노선 자체도 길지 않다. 보통 10분에서 15분 내로 기차에서 내리거나 갈아타게 되는데, 그 와중에도 앉아서 책에 빠져있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어떤 내용을 읽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위기를 보면 문학, 소설책을 많이 읽는 듯하다. 미국에서는 다들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에, 책 읽는 사람을 거리에서 보기 쉽지 않다. 그래서 오디오북이 인기라고 한다.
거리를 걷다보면 librairie라고 적힌 간판이 자주 보인다. 처음에는 도서관이 이렇게 많은가 싶었지만, 리브레리는 불어로 서점을 말한다. 도서관은 비블리오떼끄 bibliothèque라고 한다.

얼마 전 산책삼아 갔던 뤽상부르 공원 주변에는 정말로 수많은 작은 서점들이 있었다. 근처에 대학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런 줄 알았다. 그렇지만, 베트남 국수를 먹으러 갔던 차이나타운에도 조금은 어울리지 않게 서점이 몇 곳 있었다.
칠 년 전에도 갔었던 식당인데, 그 때 보았던 근처 서점이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대형서점이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고, 지역 서점이 이렇게 살아남은 걸 보니 내심 반가웠다.
오늘은 집 근처 메닐몽땅 Ménilmontant 지역에 만화, 일러스트 관련 서적을 전문으로 파는 서점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그 쪽으로 경로를 정했다. 파리 20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파리와는 사뭇 다른 곳이다. 동화 속 나라같은 파리가 아니라 또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파리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거리를 걸어보니 저렴한, 혹은 싸구려 식당들, 저가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많이 보인다. 앞에 보이는 밀라노라는 이름의 식당에서는 그리스 샌드위치와 피자를 판다고 한다. 거리를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랍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이민자들로 보인다. 이들도 파리 한 구석에 자신들의 문화를 구축하고 살아가고 있는 듯.
이런 곳에 정말 내가 찾는 서점이 있을까 조금은 의아해 하던 순간, 르 몽땅 레어 Le Monte-en-l’Air를 발견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들어간 이 서점에서, 우리는 족히 한 시간은 책 구경에 빠져들었다.
이 곳이 매력적인 것은 온라인 서점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그런 서적들뿐만이 아니라, 로컬 아티스트들이 소규모로 출판한 개성이 넘치는 서적이나 진 zine 등도 많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례로 이런 소규모 서점을 발견했다. 서점의 다른 반쪽은 갤러리였다. 기괴하게 생긴 외계 생명체들을 그리는 어느 예술가의 작업들이 전시, 판매 중이었다. 가격은 일반 사람도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50-200유로 수준. 만화, 일러스트, 작품집, 잡지 등 작은 공간에 빽빽히 들어선 수백, 수천 권의 서적은, 프랑스가 단지 박물관에 전시된 그림뿐만이 아니라 현 세대에도 풍부한 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뽐내는 하나의 예시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런 예술이 얼마나 일상의 사람들에게 가까이 존재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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