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6-교수님과의 재회
정대인의 파리문화기행6-교수님과의 재회
  • 정대인 전 미국 산타페에술대 교수
  • 승인 2014.10.30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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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인, Le Sévigné, 아이패드작업, 2014.

파리 ENSAD 교환학생 시절, 내 은사님이셨던 조르쥬 시피아노 Georges Sifianos 교수님을 뵈었다. 얼마 전에 그리스에서 휴가를 마치고, 다음 날이면 불가리아의 애니메이션 페스티벌로 여행을 가시는 바쁜 일정에도 흔쾌히 만나주신 것이 7년 만에 보는 제자가 반가우셨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 기억 모습 그대로이셨지만, 건강이 조금 안좋다고 하셔서 안쓰러웠다.

함께 간 곳은 파리 중심지에 있는 300년 이상 된 레스토랑인데 이 곳에서 사람들이 프랑스 혁명을 도모했다고 한다. 메뉴에는 두 도끼가 하얀 천으로 묶여진 그림이 있었는데 약간은 섬찟했다. 이미 미국, 일본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는 것이 유명한 곳이었다. 선생님은 평소에 이런 곳에 잘 나오지 않으시는데, 오늘 특별히 온 것이라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하시겠다고 했다.

사실 파리 교환학생은 세 달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강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든 수업이 불어로 진행이 되니 수업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너무나 답답할 지경이었다. 결국에는 일반수업을 억지로 듣는 대신, 시피아노 교수님과 매주 개인 면담으로 작업을 진행했었다.

ENSAD에서 흥미로웠던 점은 그렇게 교수님과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선생님 두 분과 함께 미팅을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 한 사람의 개인적 의견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는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교수님 한 분은 성함이 기억나지 않는데, 이 분은 영어를 못하셨기 때문에 시피아노 교수님이 통역해서 나에게 전달해주시곤 했다. 우스운 것은 가끔은 두 분 의견이 잘 맞지 않으신지, 나를 앞에 두고 서로 토론을 하실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영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멀뚱거릴 수 밖에 없었다.

그 학교에서 내 대학원 졸업작품의 구상에 들어갔는데 내가 처음에 냈던 의견이 영 부족했던지 선생님은 매번 더 준비하라고 나를 자극하셨다. 한 번은 주말동안 스케치를 해오라고 숙제를 주셔서 10장 정도를 준비해갔다. 교수님은 내 앞에서 한 장씩 종이의 수를 새셨다. 하나, 둘, 셋, ... 아홉, 열. 그리고는 겨우 10장 해왔느냐고 물으셨다. 말도 통하지 않는 파리 생활에 작업도 잘 되지 않으니 당시에는 굉장히 우울했었다.

결국에는 낯선 곳에 온 만큼 내 고집을 버리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처음 구상으로 돌아가서 내 마음에 흡족한 아이디어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미국의 한 학교에서만 작업하던 내가 아주 다른 방식으로 작업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큰 경험이었다.

졸업을 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나에게도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 나의 생각으로는 분명히 학생이 더 잘할 수 있고, 더 멋진 작업을 만들 수 있는 걸 알기에 계속 격려하고 자극하는데 학생 입장에서는 그것이 선생님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 작업이 별로라고 생각한다고 오해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학생에 대한 진정한 애정이 있다면, 교수는 학생을 포기할 수가 없다. 계속해서 더 전진하도록 도와줘야하는 것이다. 칭찬을 통해서 자신감을 가지게 하고, 또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자극하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는 나도 그런 것을 알기에 당시에 나를 많이 자극해주셨던 선생님이 더욱 고맙게 느껴진다.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서, 헤어지기 전, 한 가지 질문을 해야 했다. 과연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은 누가 만든 것입니까? 애니메이션 역사 자료를 찾아보면 프랑스의 에밀 콜 Émile Cohl이 만든 Fantasmagorie가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어느 자료를 보면 미국의 제이 스튜어트 블랙튼 J. Stuart Blackton이 만든 Humorous Phases of Funny Faces가 최초의 애니메이션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결국 누구에게 묻느냐에 따라서도 다른 대답이 나온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프랑스에 사시니까 묻고 싶은 살짝의 장난기 섞인 질문이었다. 결국 이 우문에 선생님은 그 당시 여러 곳에서 동시에 조금씩 발전시켜간 것이 아니겠냐는 지혜로운 말씀으로 대답을 대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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