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철민, 청춘들에게 ‘꿈’을 말하다
배우 박철민, 청춘들에게 ‘꿈’을 말하다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10.29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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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대 중앙도서관, 국제회의동에서 초청강연 열어

▲영화배우 박철민
드라마 속 감초 역할로 시청자들에게 깨알웃음을 선사하는 배우 박철민씨가 동신대학교를 찾았다. 동신대 학생들은 ‘또 하나의 약속’을 감상한 뒤 영화 속에 나오는 주연배우를 직접 만난다는 생각에 객석을 가득 채웠다.

이날 초청 강연은 ‘지역 문화와 엔터테이먼트산업’이라는 주제로 동신대 중앙도서관 1층 국제회의동에서 영화배우 박철민씨를 초청해 진행됐다. 객석은 가득 찼고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학생들은 뒤쪽 한켠에 서서 듣는 열의를 보였다.

멈출줄 모르는 개그 본능, 객석 웃음바다 만들어 

강연에 앞서 광주 계림동이 고향인 박 씨는 광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지녔다는 말로 학생들과 친근감을 표현했다. 80년 5.18민주화항쟁을 소재로 다룬 ‘화려한 휴가’에 직접 출연한 것이 자랑스럽다던 박 씨의 진솔한 강연이 시작됐다.

그는 “인기는 밥알 먹듯이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지금 남은 인기가 있어 겸손하거나 고개숙이고 싶지 않다”며 “인기가 사라지면 겸손해지도록 하겠다”며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배우 박철민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 섭외를 받았기 때문에 소통이 빠른 젊은 20대층의 눈높이에 맞춰 즉석으로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가 출연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던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다뤘다. 대기업이 이슈화되기를 꺼려하는 소재를 다룬 터라 개봉 전부터 ‘외압’에 관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질문 역시 직접적인 ‘외압’이 없었냐는 것이 제일 먼저 나왔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제작진이나 배급에서 큰 외압을 받지 않을 걸로 알고 있었고, 나 또한 출연하지 말라 왜 출연하느냐 그런 외압은 없었다”며 “그러나 절대 경제권력의 당사자들의 소재로 다룬 영화이기 때문에 알아서 눈치를 보고 투자를 못하는 분위기가 흘러간 부분은 있다”고 털어놨다.

'크라우드 펀딩' 통해 의미있는 영화 개봉

또한 박 씨는 “알아서 투자를 잘 안 해준다던가 개봉할 때는 극장에서 많은 상영관을 열어주진 못했다”며 “많은 개봉관에서 다양하게 많은 관객들이 직접적으로 만나지 못한 게 굳이 외압이라면 외압이라고 말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약속’은 작은 개미들이 힘을 합쳐 완성하는 일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박 씨는 “쌈짓돈을 모아모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개봉을 할 수 있었고, 크게 흥행하지는 못했지만 손익분기점은 살짝 넘었다”며 “다행히도 조금의 수익이 나서 투자자들에게 적어도 손해는 끼치지 않는 영화가 됐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의 성과는 영화로 인해 기업과 노동자 측이 합의점을 찾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영화가 사회적인 관심을 끌어내는데 작은 단초의 역할을 한 것 같아 자랑스럽다”고 답변했다.

그동안 그는 극중 코믹연기로 웃음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역할을 맡아왔지만 이번 ‘또 하나의 약속’에서는 진중한 역할을 맡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첫 대본을 받았을 때 감독과 술 한잔을 하고 나서 집에 들어가 테이블에 대본을 놓았는데 대학교 3학년 딸이 읽어보고 꼭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와 함께 너무나 필요한 영화라고 적극 추천했었다”며 “사회적인 작품, 사회 이슈를 영화화 시켜 알리는 것이 의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약속’ 영화 자체는 아주 건조하다. 박 씨는 “감독이 절제한 부분도 있다.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감정들을 자극적으로 흔들어 놓는 것보다 보시는 분들이 영화를 보고 담백하게 의미를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배우 박철민은 드라마 뉴하트와 영화 화려한 휴가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빠지지 않고 두 작품의 이야기도 나왔다.

20년 무명생활, 명품 조연 되기까지

80년 5.18 광주항쟁에 대해 그는 “화려한 휴가 영화 자체도 오래됐지만 광주항쟁은 먼 과거가 됐다”며 “중학교 2학년때 광주항쟁을 맞이했기 때문에 나름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박 씨는 “이는 우리 고장에서 일어났던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역사이기도 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하다”며 “그런 사건을 작품 속에서 만난다는 것이 자랑스러웠고 부담스럽기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꿈을 갖고 열정을 쏟아야할 청춘들을 만나는 시간이었기에 ‘미래’와 ‘꿈’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중학교때부터 배우가 꿈이었던 그는 조대부고 연극반을 접하면서 연극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인해 중앙대 경영학과에 입학하게 됐지만 연극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대학때도 아쉬운 마음에 바로 연극 동아리를 들어가서 대학생활 4년 내내 동아리 활동을 했다”며 “적당히 부모님과 타협을 하면서 꿈을 유지해나갔던 것 같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그렇게 박철민은 꿈을 버리지 않고 20년 무명생활 끝에 명품조연으로 거듭났다. 비록 한 달에 20만원 밖에 못 벌던 시절, 연봉이 100만원도 안 되는 시기도 있었지만 그는 ‘꿈’을 아주 뜨겁게 붙잡고 있었다.

이에 대해 “포스터를 붙이거나 전단을 나눠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꿈을 붙잡고 있었고, 언젠가 더 화려하게 멋지게 저 무대에 내가 설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다”며 “고민이나 역경이 있었다면 내가 표현하고 싶은 연기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배우 박철민은 강연을 듣는 청춘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야 하지만 사실 찾아내기 힘들긴 하다”며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알면 이를 갈고 닦으면서 부대끼는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분명히 경제적으로 화려하고 신나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고 진심어린 격려의 조언으로 강연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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