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칼럼 4, 여유(與猶)와 지지(知止)
청백리 칼럼 4, 여유(與猶)와 지지(知止)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 승인 2014.09.19 0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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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다산 정약용 생가에는 ‘여유당(與猶堂)’이라는 서재가 있습니다. 1800년 여름에 정조 임금이 승하하자 정약용은 고향인 남양주시 능내면 마재마을로 내려와 자신의 공부방을 여유당이라 이름하고 <여유당기 與猶堂記>를 지었습니다.

노자는 ‘여與여! 머뭇거림은 마치 살 언 겨울 냇가를 건너는 것 같고, 유猶여! 신중함은 마치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경계하는 것 같도다 與呵其若冬涉水 猶呵其若畏四隣’ 라고 말하였다.
안타까워라. 이 두 마디 말이 내 약점의 치료제가 아니겠는가.

‘여유與猶’는 노자 <도덕경> 제15장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여유餘裕롭게 살자는 의미나, 즐기면서 여행旅遊 한다는 뜻이 아니라, 조심하고 또 조심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경구입니다.
정약용은 이렇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살겠다는 다짐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801년 천주교 박해 사건에 연루되어 형 정약종은 순교 당하고 그는 18년간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 고위 공직자들은 여유與猶를 무시하고 사는 듯합니다.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경계하는 조심성도 없고, 살 언 겨울 냇가를 건널 때의 머뭇거림도 없이 마구 일탈을 하여 스스로 무너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제주지검장이 대로변에서 이상한 짓을 하다가 공연음란죄로 체포되었고 육군 1군 사령관이 만취 추태로 전역하였으며, 현직 판사가 후배 여대생을 성추행한 혐의로 조사 받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추석 연휴기간에도 공군 간부 2명이 찜질방에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이들은 자기 처신을 제대로 안하고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여 스스로 추락하고 만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시민들은 소위 관피아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공직자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들의 잘못에 대하여 너그럽지 않습니다.
제주지검장이 대로변에서 한 일이 공연음란으로 밝혀진 것도 여고생의 고발 때문이었고, 1군 사령관의 별 네 개가 단번에 떨어진 것도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폐쇄에 분노한 시민들의 항의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민심은 공직자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시민들을 공직을 불신하고 있고 부정부패한 공직자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부정부패한 공직자를 목격하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동영상 촬영을 하여 곧바로 SNS에 올립니다.
아울러 관계기관에 고발하고 반드시 그 결과를 확인합니다. 그만큼 공직부패 척결에 대한 시민정신이 투철하여 졌습니다.

더욱이나 제4의 권력인 언론도 공직기강 문제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최근에 국회의원의 뇌물 수수와 입법 로비에 대하여 여러 종편들이 앞 다투어 보도하는 사례가 그것을 말해 줍니다.
CCTV도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CCTV가 아니었다면 제주지검장의 공연음란 사건의 진실이 그리 빨리 밝혀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렇듯 공직자의 부적절한 처신을 감시하는 눈이 사방에 있습니다.
한편 장성군 삼계면에 있는 관수정觀水亭은 청백리 송흠(1459-1547)이 말년에 지냈던 정자입니다. 관수정은 ‘맑은 물을 보고 나쁜 마음을 씻는다.’는 의미이며, 송흠의 호는 지지당知止堂입니다.

노자 <도덕경> 제44장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만족할 줄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나니
그러면 오래 갈 수 있다.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이렇듯 송흠은 욕심 부리지 않고 멈출 줄을 알고 절제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청백리를 일곱 번이나 하였습니다.
공직자 여러분, 여유與猶와 지지知止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의 잘못으로 평생 공들여 쌓아놓은 공직자의 명예가 단숨에 무너지는 세상입니다. 스스로 절제하고 삼가며, 물욕物慾 앞에 멈출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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