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무] 그리고 프란체스코 교황
@[해무] 그리고 프란체스코 교황
  • 김영주
  • 승인 2014.08.2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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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뒤덮은 짙은 안개 [해무], 잔혹한 장면이 부담스럽다고 해서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그 잔혹한 장면이 그리 노골적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잘 만든 영화이고 사회성 짙은 무거운 영화이다. 역시나 주인공 김윤석은 참 대단하다. 조연들의 연기가 생생하고 치열하다. 문성근과 김상호의 연기는 물론이고, 한애리나 유승목과 이희준의 연기도 매우 좋다. 유승목이나 이희준이 보여주는 쫄다구 수컷의 비열한 횡포는 유별나다. 비열한 수컷의 폭행이 설치기 시작하면, 세상은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게 얼마나 몸서리치는 고통인지는 당해 본 사람만 안다. 윤일병의 죽음도 그 전형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군대와 직장에서 그런 폭행과 모욕을 서로 물고 물리면서 저지르기도 하고 당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의 틈새에 숨어 있기에 얼핏 보이지 않지만, 구겨진 신문지 한 장만 들추면 보인다. 서로 불편하니까 모른 채 할 따름이다. 지금 이 세상이, 겉모습은 화려해도 속모습은 저질이다. [해무]는 그걸 초점으로 잡아서 보여주고 있기에 무겁고 아주 불편하다. 밀항회사 사장이 가라사대 “그게 또 다- 국가에도 좋은 것이여~!”, 무심코 하는 말이지만 섬뜩하다. * 대중재미 C0(내 재미 A0), * 영화기술 A0, * 감독의 관점과 내공 : 사회파 A0. 좋은 영화인데, 관객은 별로 모이지 않겠다.
 
<예고편>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VideoView.do?movieId=79524&videoId=45022&t__nil_main_video=thumbnail

좋은 영화니까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만, 무거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짧게 이야기하고 '프란체스코 교황'께 감사함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이 영화처럼 요즘 세상인심이 심상챦게 무겁다. 그런데 겉으론 모두들 태연하다. 분노가 아니라 체념으로 가고 있다. 병이 속으로 곪아들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이 이대로 가면 안 되는데 . . .” 그나마 다행스런 게, 교황이 베네딕토에서 프란체스코로 바꾸어진 거다. 교황이 바꾸어진 게 뭔 대수냐? 신도가 아닌 사람은 더욱 그러하겠고, 교황의 인기를 질투하는 다른 종교신도는 더 더욱 그러할 게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프란체스코로 교황이 바뀐 건 카톨릭교의 축복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축복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 같지만, 미국 대통령과 카톨릭 교황은 그렇지 않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실은 내 개인 생활에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우리는 미국 대통령과 카톨릭 교황이 누구이냐에 일희일비하고 민감해야 한다.

난 동양과 서양을 두루두루 공부했지만, 지금 세상은 동양의 ‘상호관계론 문화’보다는 서양의 ‘대립존재론 문화’로 지나치게 쏠려 있다고 보기 때문에, 상호관계론 문화를 강화시켜야 한다는 쪽에 서 있다. 그래서 내가 종교 중에서 천주교에 가장 호감을 갖고 있지만, 지금 세상이 서양문화가 너무 지나치다고 보기 때문에 천주교에 발을 딛지 않고 있다. 천주교의 정의사제단이 매우 옳고 의롭다. 만약 정의사제단이라는 촛불마저 없다면, 우리나라는 깜깜한 절망이다. 그런데 2005년에 보수적인 베네딕토가 교황이 되었다. 맘이 심난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 추기경에 보수적인 정진석을 임명했다. 신도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을 매스컴에서만 주워듣고 있지만, 그들은 역시나 우울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시장만능주의가 온 세상을 휩쓸고 있는데 천주교까지 그러하니, 세상은 더욱 어두운 수렁으로 휘말려 들어갔다. 진보파가 항상 옳은 건 아니지만, 지금 보수파는 해도 해도 너무한다. 극악스럽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지구촌이 온통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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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에 갑작스레 교황이 베네딕토에서 프란체스코로 바뀌었다. 깜짝 놀랐고 10년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이 기뻤다. 꽉 막힌 숨통에 겨우 한 숨을 돌릴 수 있겠다 싶었다. 드디어 프란체스코 교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걸음 하나 손짓 하나 말씀 하나에, 모두 감사하고 감복했다. 그 감사와 감복을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면 손가락질 받을 것 같아서, 마누라 앞에서만 마구 환호하고 찬양했다. “교황 만세! 근디 나이가 팔십이라네? 저런 분이 적어도 20년은 더 하셔야 한디 . . . !” 천주교가 너무 부러웠고, 이제라도 성당에 나가볼까 싶은 맘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그런데 “이 뭔 일이여? 보수적인 염수정이 추기경이 되야불다니? 교황이 우리나라 사정을 잘 모른가~? 그럴 리 없을 텐데?” 신경질이 돋았지만, 그 속내가 잔뜩 궁금했다. 어느 날 교황이 한국을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래, 우리나라에서 오셔서 그 분의 말씀과 행보를 보면, 뭔가 감이 잡히겠구나.” 바짝 긴장되었다. 촉각을 세워서 매스컴을 살펴보았다. 두 추기경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수적인 두 추기경이 실세가 아니라는 증거이다.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리의 높낮이도 중요하지만, 실세가 누구냐가 더 중요하다.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가! “교황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제가 비록 신도는 아니지만, 그 어느 신도에 못지않게 교황님을 숭모합니다. 건강하신 몸으로, 딱 100살까지만 이 지구촌을 보살펴주시옵소서! 두 추기경이 진보적인 사람으로 바뀔 날만 학수고대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하옵니다.”

* 존경하는 채현국님이, 교황의 한국방문에 즈음하여 신학자 김근수의 [교황과 나]를 추천했다. 우연히 만난 공지영의 [높고 푸른 사다리]를 읽었다. 그녀의 잡글은 몇 번 읽었지만 그녀의 소설을 읽은 건 처음이다. 밑줄 긋고 메모까지 해가며 보았다. 소설을 좋아하지만, 소설에 시간을 별로 들이지 못했다. 앞으로 소설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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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한겨레신문, <왜냐면>.

* 신학자 김근수가 쓴 [교황과 나]를 추천한다. 채현국, 140814.


신학자 김근수와 그의 책 <행동하는 예수>를 얼마 전 어느 지식인에게서 소개받았다. 그리고 제주에서 그를 만나 같이 밥 먹고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졌다. 독일과 남미에서 성서와 해방신학을 오래 공부한 그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신학연구의 중심에 놓고 있었다. 참으로 고맙다.

교황 방한을 맞아 그는 <교황과 나>를 최근 내놓았다. 교황들의 역사를 통해서 가톨릭교회를 보고, 20세기 가톨릭신학의 흐름을 소개하며, 여러 문헌들을 분석하여 한국천주교회의 문제를 짚고 있다.

교황에 대한 우상숭배나 가톨릭교회의 이익에 그는 전혀 관심이 없다. 교회개혁, 사회개혁을 외치는 교황을 그는 공정하게 전하려 애쓰고 있다. 부자와 권력자들 편에 기운 한국천주교회의 현실을 그는 안타까워한다.

나는 가톨릭신자가 아니다. 나는 한국천주교회의 전반적인 행태에 호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부자들을 편드는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의 처신이 정말 못마땅하다.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뜨자마자 어찌 그렇게 가톨릭교회가 돌변하고 말았는가. 분한 일이다.

교황의 방한 일정을 보고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보지도 않는 일정이 교황에게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교황을 아예 망신 주려고 짜 놓은 일정 같다. 이런 방한에 나는 사실 별다른 기대도 없다.

그래도 오는 김에 교황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주면 좋겠다. 이참에 한국 가톨릭이 우리 민족의 역사에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고 회개하기 바란다. 종교집단의 이익보다 인간과 민족의 운명을 먼저 좀 생각하라고 한국천주교회에 부탁하고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관심이 많다. 한국 사회와 종교가 개혁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배울 점은 얼마든지 있다. 한국 사회와 종교는 크게 바뀌어야 한다. 그런 뜻에서 해방신학자 김근수의 <교황과 나>를 나는 여러분에게 기꺼이 추천한다. 참 좋은 책이다. 이런 책은 꼭 읽어야 한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인간의 도리다.

 

 

 

저자 김근수는 천주교 신앙을 200여 년 지켜온 가정에서 태어난 김근수는, 외가는 김대건 신부의 남동생 쪽 후손이고, 친가에도 순교자 조상들이 여럿 있다.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신학을 하고, 가난한 교회를 촉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라 생각하며, 이들의 눈으로 역사의 예수를 집중 연구하고 있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광주가톨릭대학과 독일 마인츠대학에서 신약성서를, 남미 엘살바도르 중앙아메리카대학(UCA)에서 해방신학을 공부했다. 한국에서 보기 드물게 성서신학과 해방신학을 함께 전공했다. 저명한 해방신학자 혼 소브리노(Jon Sobrino)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은 아시아 최초의 제자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사상을 잘 알며 교황청 내부 사정에 밝은 평신도 신학자다. 제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다. SNS를 통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는 신학자로, 2013년에 첫 책 ?슬픈 예수?를 내면서 가톨릭계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저서로는 마르코복음 해설서 《슬픈 예수》(2013)와, 마태오복음 해설서 《행동하는 예수》(2014)가 있다. 

목차

1장 가난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을 보듬는다

화재 현장에 출동한 추기경 |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 | 사제의 길-아버지의 수긍과 어머니의 낙담
프란치스코 교황의 나침반 하나, 예수회 | 애벌레가 나비로 탈바꿈하는 마지막 절차
프란치스코 교황의 나침반 둘, 프란치스코 성인 | 프란치스코 교황의 나침반 셋, 조국 아르헨티나
베르골리오는 군사정권에 협력했는가? | 인권은 가난 탓에 상처받고 있다
누구나 하느님을 마음에 품을 수 있다 |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는 교황

2장 266명의 교황 그리고 3번째 개혁 교황의 탄생

개혁 의지가 낳은 산물 | 베네딕토 16세, 아름답게 퇴장하다 | ‘현직’ 교황의 사임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 | 굿 나잇에서 굿 이브닝까지
예수회와 프란치스코회의 공조 | 남미 추기경이 최초로 주목받다
전통을 깨뜨리는 것이 진정한 개혁이다 | 가난한 사람을 잊지 마십시오

3장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의 선택

2천 년 역사를 이어오기까지 | 탄압에 맞선 초기 ‘순교자들’ | 지상의 제국에서 영원의 제국으로
‘칼 두 자루’의 역사 | 새롭고 끝없는 도전 | 노동자들의 교황, 레오 13세-최초의 개혁 교황
제2대 개혁 교황 요한 23세 | 교회 ‘수호’가 아닌 ‘개혁’, 제2차 바티칸공의회
세계 각지에서 2,500명이 모이다 | 마리아를 넘어야 개혁이다 | 교회 일치운동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은 잘 실현되고 있는가 | 이스탄불의 ‘외교가’, 론칼리
현대 교황의 모델이 된 요한 23세 | 그리고 다시 개혁은 후퇴하였다 | 라칭어 추기경의 보수적 행보
남미 해방신학을 억누르다 | 해방신학은 가난한 이들 곁에 있는 ‘현장 신학’
프란치스코 신학의 근본정신 | 프란치스코의 철학 담긴 ‘아파레시다 문헌’ | 해방신학의 해금

4장 한국 사회와 종교에 남은 선택지

왜 가난이 문제인가 | 새로운 도전, 신자유주의 | 인구 감소가 불러온 불평등
가난한 교회를 향한 프란치스코의 기도 | 누구든 신과 독대할 수 있다 | 여성 사제
신자와 함께하는 제3차 공의회 | 종교 간 대화 | 또 다른 과제들 | 한국 천주교회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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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은 19세기의 레오 13세, 20세기의 요한 23세에 이은 세 번째 개혁 교황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회’를 주창하는 해방신학을 가슴에 품고 있다. 교황은 교황청과 교회의 혁신을 강력히 주장하는데, 한국에서는 주로 그의 선행만이 부각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에 정통한 한국의 해방신학자 김근수가 쓴 『교황과 나』에서 저자는 교황 개인을 넘어 교황청이란 조직의 개혁을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교황 프란치스코를 얘기하는 데 있어 특히 중요한 요소로 ‘예수회’를 든다. 교황이 성직에 입문하면서 지금까지 유지해온 신앙적 정체성의 바탕인 예수회는 가톨릭교회가 위기를 맞을 때마다 교계 내부에서 쓴 소리를 서슴지 않은 ‘야당’과도 같은 존재로, 가톨릭교회가 혼탁해지려고 할 때마다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위한 출발점이 되어주었다. 프란치스코가 이끄는 지금의 교황청의 모습은 이처럼 개혁적인 예수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은 세계 가톨릭의 총본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자정의 목소리가 안타깝게도 한국 땅에는 미치지 않고 있다고 말하며, 한국 교회에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교회가 될 것을 제안한다. 또 성직자가 규칙적으로 육체노동을 하고, 교황청과 성직자 중심이 아닌 평신도가 앞장서서 가톨릭을 이끌고 나갈 것을 권하며, 한국 교회가 교황 환영을 뛰어넘어 교황과 교황청의 개혁 메시지를 자신에게 적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교보문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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