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씨구! 친일 아리랑(7)
얼씨구! 친일 아리랑(7)
  • 이홍길
  • 승인 2014.08.21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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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사람들은 총론에서는 뜻을 함께 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서로의 주장을 달리하기가 십상이다. 다 같이 독립을 원하나 어떻게 독립을 달성할 것인가 하는 방법에서는 뜻을 달리한 것이 1910년의 신민회의 확대판회의인 ‘청도회의’에서 급진론과 점진론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급진파는 간도와 연해주에 있는 동포의 재력과 인력을 규합하여 당장 일본에 대항하여 무장투쟁을 하자는 것으로 이동휘가 이 주장을 대표하고 점진론은 실력없는 거사는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격으로 국내동포에 대한 적의 경계와 압박을 더욱 엄중하게 하여 문화와 경제적 향상을 저지하게 될 것을 지적하였고 그 대표는 도산 안창호였다.

단재 신채호는 실력양성도 독립투쟁도 모두 역사의식으로 무장한 연후에야 가능하다고 역설하였다. 치열한 논쟁을 유발한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회의는 독립운동기지를 마련하여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하고 개간사업으로 농토를 일구어 산업진흥을 도모하기로 의견을 집약 절충하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아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저간의 우여곡절과 실패의 사정은 60년을 넘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목메어 불렀으면서도 설득력 있는 각론을 내어놓지 못한 채, 적대적 공존의 토대위에 위풍당당한 분단정권들만이 그 군사적 역량을 뽐내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상기시킨다.
한민족의 생존과 발전에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은 당위적인 것인가 정치적인 것인가를 판별하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닐 성싶다. 사람들의 욕구와 역량을 모아서 목표를 달성하는 행위라는 점에서는 정치일 수 있지만, 그것은 통상의 정치와는 다른 대의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신념이 기반이 된다 할 것이다.

그 신념이 진리라고 판단할 때에는 독립과 통일은 정치를 훌쩍 뛰어넘는 가치가 되고 도덕이 되고 사람 된 도리가 된다. 그렇다고 모든 민족 구성원이 손쉽게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명과 재산과 가문을 담보하는 순명의 사업이기 때문이다. 단재에게 국가는 민족정신으로 이루어진 유기체이면서 오천년에 걸친 민족의 삶과 얼이 응결된 것으로 독립운동을 보통의 정치로 칭하는 것은 패덕행위가 된다.
통일운동가들의 입장에서 주객관의 조건이 착종하는 현실을 모든 것에 우선하는 민족대업의 가치로 수렴코저 하는 자세도 구국항쟁의 급진론을 닮아 있음이 확인된다. 모든 사람들의 삶과 엮일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아픈 현대사를 생각하다 보면, 옛날이나 오늘이나 삶의 가치적 자각이 소망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 절대화 앞에 어쩔줄 몰라 망연함을 감출 수 없다.

망연함과 경건함은 같을 수 있는데, 육신을 갖고 땅위에 발 딛고 의식주를 걱정하고 사는 사람들의 존재의 자각이 정체성 혼란을 가져왔을 가능성은, 식민지 조국에서나 분단 조국에서나 마찬가지일 수 있었음을 실감한다. 역사를 통한 나라사랑의 단재의 감상과 무실역행의 도산의 준비론의 관념도 어떤 수준의역량은 될 수 있지만 그들이 그토록 소망했던 독립의 역량은 될 수 없었다.
무장역량 문화역량 경제역량도 현실에서 이룰 수밖에 없었고 없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우리 독립투쟁이 일사불란하지 못하고 파행적이면서 지리멸렬할 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현실에 귀착된 현실 때문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삶을 살면서 역사속의 우리로 사는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사람됨을 파헤치면서 교황의 당부대로 깨어 있고 함석헌 선생의 말씀대로 생각하고 레지스탕스의 노전사처럼 불의에 분노하다 보면 어둠이 걷히는 희망이 보일 것을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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