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 걸개그림, 제작부터 ‘전시유보’가 되기까지
홍성담 걸개그림, 제작부터 ‘전시유보’가 되기까지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08.13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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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차게 준비한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무산 위기 오려나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에 전시될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전시유보에 대한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이는 문화·예술에 대한 표현의 자유 침해로 ‘사전검열’ 논란을 불러일으킨 광주시가 이번 전시여부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내놔야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0년 5월을 겪으며,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당선된 윤장현 시장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세월호 사건 이후 작품 제작 결심해

초창기 홍성담 화백은 작품제작 의뢰를 받았지만 처음엔 수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4월 16일 세월호 사건 이후 생각이 달라졌다.

80년 5월 광주처럼 국가시스템에 의해 수백 명이 한 번에 학살된 사건으로 오늘날의 ‘광주정신’이 깃든 걸개그림 작품을 제작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홍성담 화백의 안산 작업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단원고 학생마저 이번 사고를 계기로 희생됐기 때문이다.

작품 구상 과정에서 홍성담 화백은 담당 큐레이터와 많은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협의 끝에 걸개그림에 담을 내용을 그려냈다.

홍성담 작가 외 20명이 협업한 작품으로 특별전에 출품될 ‘세월오월’ 속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정을 받는 ‘허수아비’로 표현된 박근혜 대통령과 5.18당시 시민군과 주먹밥 아줌마가 ‘세월호’ 바다를 들어 올리면서 바다가 갈라지고  승객들을 안전하게 탈출시키는 모습을 묘사했다.

또한 노란색 비옷을 입고 유모차를 앞세운 시민들이 ‘가만있지 마라’라는 펼침막을 들고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모습도 묘사됐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의미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장 난 로봇 물고기로 형상화하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문창극 전 국무총리 지명자 등의 모습도 담는 등 최근의 사회적 문제도 함께 거론하였다.

세월오월' 작품 수정 요구 및 전시불가 발표

그러나 ‘달콤한 이슬 :1980이후’ 개막 이틀전인 6일 전시 출품작이 박근혜 대통령을 그의 부친인 박정희 대통령의 허수아비로 묘사한데 대해 광주시가 ‘전시불가’ 입장을 밝히면서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결국 1980년 5월 시민군을 치료하기도 했다는 시민운동가 출신 윤장현 광주시장에게 공은 넘어갔다. 후보시절 공약으로 “광주시는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지원만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했기에 여론의 질타를 맞게 됐다.

윤 시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자 지난 7일 중국출장 중에 한발 물러서 입장을 밝혔다. 그는 “광주시는 지원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작품 전시여부는 광주비엔날레재단의 전문가들이 판단할 문제다”고 결정권을 떠넘기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윤 시장이 ‘세월오월’에 대해 시민사회의 뭇매와 비판은 슬그머니 빠져나가면서 문제가 불거질 경우 애꿎은 비엔날레 재단과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넘기겠다는 의미로 평가됐다.

결국 홍성담 화백은 8일 개막일 오전 메이홀 작업실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태는 행정공무원이 문화예술계에 와서 사전검열을 한 것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며 “모든 사건에 관련한 말을 내뱉었던 오형국 부시장은 광주 예술인들에게 공개사과 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번 작품은 80년 광주와 같은 세월호에 대한 국가폭력을 새롭게 찾아내 피해자들을 치유하고 위로하기 위한 작품이다”며 “새로운 현대사에 대한 인식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역사가 나누어 질 것이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닭'으로 교체 작품 출품

8일 오후 6시 ‘달콤한 이슬:1980년 이후’ 개막식 이전 ‘세월오월’은 박정희 장군의 계급장과 허수아비로 내세워진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군과 ‘닭’으로 교체하여 출품했다.

하지만 7시부터 시작되는 개막식에는 윤장현 광주시장이 참석하지 않았고, 광주시립미술관 로비에 전시될 ‘세월오월’은 끝내 걸리지 않았다. 걸개그림 제막과 테이프커팅, 경과보고, 환영인사 등이 송두리째 빠지고, 단 5분~10간의 국악공연만 펼쳐진 채 개막식이 끝났다. 결국,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은 이곳에 전시되지 못하는 파행을 맞았다.

또한 지난 10일 이번 특별전의 윤범모 책임 큐레이터는 책임을 통감하고 “전시여부를 결정하는 회의 자리에서 전시 총괄 책임자로서의 역할에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고, 말로만 ‘책임’ 큐레이터이지 무엇을 ‘책임’지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며 자진사퇴했다.

책임 큐레이터의 사퇴 이후 지역 미술계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한 사전검열의 항의가 더욱 거세졌다. 지난 11일 광주시립미술관이 휴관이었지만 특별전에 작품을 출품한 이윤엽, 홍성민 작가가 “시대 풍자 그림도 보호 못하는 광주비엔날레에 출품하는 것이 작가로써 치욕스럽다”고 밝혔다.

이날 작가의 그림을 보호하지 못하는 광주비엔날레의 저급한 행태를 지적하며 이윤엽, 홍성민, 정영창 작가들이 스스로 작품을 철거했다.

같은 날 광주미술협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더 이상 이념논쟁과 세력다툼으로 순수한 예술가들의 권위를 손상시키며 우리를 불안하게 하거나 자유를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며 “20억이라는 엄청난 시민혈세가 투입된 이번 행사에서 전시예산은 고작 4억이며, 창작 지원비라는 명분아래 200만원에서 1억 가까운 금액을 차등 지급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비민주적인 예산책정 또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고 지역미술 행정을 꼬집었다.

지역미술계, 공개사과 및 원본작품 전시 요구 빗발

광주시민단체협의회도 잇따라 12일 “광주비엔날레의 결정이 민주도시 광주정신에 어긋나며, 광주비엔날레의 발전을 위해서도 큰 악수라고 판단한다”며 “윤장현 시장이 중앙정치의 눈치를 보지 않고 문화도시 광주를 위해, 광주비엔날레의 발전을 위해 독립적 결정을 내릴 것을 요구한다”고 ‘세월오월’ 작품을 본래대로 전시를 주장했다.

또한 13일 광주문화도시협의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전시유보’결정은 민주인권평화·문화 도시 광주의 자긍심과 시민들의 명예를 실추한 행위로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반문화적 행위다”며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는 시민에게 사과하고 홍성담 작가의 작품을 본래대로 전시하라”고 입장을 밝혔다.

광주문화도시협의회는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광주전남문화유산연대, 대동문화재단, 광주전남문화연대, 광주장애인문화협회, 광주장애인미술가협회, 전통문화연구회 얼쑤, 오월어머니집 등으로 구성됐다.

같은날 광주민족예술단체총연합(이하 민예총)도 “이젠 양심의 마지막 보류인 이 땅의 예술마저 완력으로 침몰시키려 하는가”라며 “만약 광주비엔날레가 이 지경으로 개막한다면 전 세계 문화인들의 조롱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민주적인 국가운영의 저력없는 민족으로 낙인 찍히게 될 것이다”고 지적했다.

민예총은 “이미 검열을 하여 특정 작품에 시비가 걸린 마당에 이를 마치 잘 통과한 부류로 남듯 한 작가들은 창작의 등급을 매겨 놓은 것이나 진배없다”며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측은 지금 즉시 참여 작품에 대한 검열을 중단하고, 국민앞에 사죄하고 광주정신을 정상화 시켜야 할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2일 독일 여성 작가 케테 콜비츠의 판화와 조각 46점을 출품한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의 사키마 마치오 관장과 참여작가 이가 토요미츠, 킨조 미루츠 등도 서신을 통해 “특별전의 원래 취지로 되돌아가 책임큐레이터 윤범모씨의 기획을 존중하고, 홍성담씨의 작품을 전시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오키나와에서 우리가 참여할 의미가 전혀없다”고 작품 철거의사를 밝혔다.

이렇듯 광주시가 ‘세월오월’ 일부 중 박근혜 대통령 묘사부분을 수정해달라는 요구로 시작된 이번 논란은 특별전에 참여한 작가들이 이미 설치된 작품을 자진 철거하는 파행까지 맞게 됐다. 광주비엔날레가 20주년을 맞이하여 '광주정신'이 깃든 특별전을 야침차게 준비했지만 '광주정신'을 훼손시켜 전국적, 세계적으로 먹칠한 셈이 됐다.

문화관광부는 13일 이번 사태에 대한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지역문화예술계의 공개 사과 및 ‘세월오월’ 작품 전시 요구가 쏟아지는 가운데 문화수도 광주를 이끌어가는 윤장현 시장이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성담 대형 걸개그림 '세월오월' 논란 일지

2014년

2월 27일 윤범모 책임 큐레이터로부터 ‘광주정신’展 걸개그림 작품 의뢰 받음.
3월 14일 홍성담 화백 ‘광주정신’ 원탁회의 발제자로 참여. 또 다시 작품의뢰 받았지만 거절.
4월 16일 안산 단원고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홍 화백 안산 작업실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단원고 학생까지 희생.- 이를 계기로 80년 5월과 같은 오늘날의 국가시스템에 대한 학살인 세월호 사건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 결정.
7월 4일 동구 메이홀 작업실에서 집들이 고사를 지내고, 광주시각매체연구회와 대형 걸개그림 제작 착수.
7월 17일 책임큐레이터와 협력 큐레이터가 작품 수정 요구.
7월 24일 국가폭력에 대한 노래를 부르는 일본의 미카미카씨 초대로 세월호 사건을 진원하는 콘서트 개최.
7월 31일 걸개그림 작업실서 판갈이 퍼포먼스 및 그림 주막 행사 진행.
8월 4일 큐레이터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 묘사 부분 작품 수정 재요구. 홍성담 작가 1안 하얗게 비워 놓은 채로 지우겠다, 2안 닭을 그려 넣겠다 제안. -이후 광주시 계급장과 선글라스, 김기춘 비서실장 추가로 수정 요구.
8월 5일 시민들과 걸개그림 작업에 참여한 광주시각매체연구회, 윤범모 책임큐레이터와 함께 진도 팽목항 방문.
8월 6일 ‘세월오월’ 작품 전시불가 광주시 공식입장 발표. 걸개그림을 공공청사나 건물 외벽에 게시하는 일체행위도 불허 명시.
8월 7일 문상필 광주광역시의원(새정치민주연합), 광주시의 ‘세월오월’ 작품 전시불가 입장 철회 주장.
8월 7일 윤장현 광주시장, 광주시는 지원만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 입장 발표. 세월오월 작품 전시에 관련해서 광주비엔날레재단에게 결정권 넘김
8월 8일 ‘달콤한 이슬: 1980년 이후’ 개막에 앞서 오전 11시 홍성담 화백 공식 기자회견.
오후 6시 박근혜 대통령은 ‘닭’, 박정희 전 대통령 계급장은 일본황실 상징하는 국화 모양 교체 후 작품 출품.
8월 8일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이후’ 오후 7시 개막식에 윤장현 광주시장 불참. 광주시립미술관 로비에 설치될 ‘세월오월’ 걸개그림 전시 유보.
8월 10일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윤범모 책임큐레이터 자진 사퇴 긴급기자회견.
8월 11일 ‘세월오월’ 전시 유보로 인해 항의 의사로 특별전에 참여한 이윤엽, 홍성민, 정영창 작가 작품 자진철거.
8월 12일 오키나와 사키마 미술관 측 홍성담 ‘세월오월’ 작품전시 강력 요구.
8월 12일 광주시민단체협의회, ‘세월오월’ 작품 원본대로 전시 요구.

8월 13일 문화관광부, 홍 화백 걸개그림 전시유보 사태 진상조사 착수
8월 13일 광주문화도시협의회, 홍성담 작품 원본대로 전시요구 및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공개 사과 요구.
8월 13일 광주민족예술단체총연합, 광주정신 정상화 시켜 참여 작품 검열 중단 및 국민 앞에 사과 요구.
8월 13일 광주시립미술관 황영성 관장 사퇴의사 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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