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문화도시10, 요코하마3 -아카렌가소코
동아시아문화도시10, 요코하마3 -아카렌가소코
  • 일본 요코하마=정인서 기자
  • 승인 2014.07.24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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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물 된 개항기 창고 도시활성화 상품 변신
근대화시기 ‘붉은 벽돌’ 자원활용 성과 나타나
광주, 민관합동 문화도시 큰 밑그림 마련해야
▲ 붉은 벽돌 창고라는 뜻을 가진 아카렌가 소코가 이제는 유명한 전시공간과 쇼핑몰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요코하마항구 끝자락으로 붉은 벽돌 건물이 있다. 마치 거대한 항공모함과 같은 모습으로 바다 한가운데 위치한 오오산바시(大さん橋)국제여객터미널 부근에서 10여분 정도 걸어가면 다가갈 수 있는 지척의 거리이다.
숙소가 있는 요코하마차이나타운에서 아침을 먹고 나섰다. 요코하마 인형의 집, 마린타워, 요코하마의 가장 큰 야마시테공원을 거쳐 뱅크아트를 들리고 요코하마창조도시센터와 랜드마크타워, 요코하마미술관, 대관람차, 라면박물관 등을 보고 간다면 지루하지 않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 상당히 규모가 큰 도시인데도 요코하마에서 볼만한 모든 것들을 걸어 다니며 볼 정도라면 요코하마가 때로는 작은 도시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

붉은 벽돌창고(赤レンガ倉庫)는 일본어로 ‘아카렌가소코’라 부른다. 가까이 다가가면 상당히 규모가 큰 3층 창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설 당시에는 해상 무역을 통해 오가던 세관 화물을 보관하는 창고였다. 도쿄와 요코하마를 연결하는 철도 물류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1911년에 지어진 2호관과 1013년에 지어진 1호관 등 두 동이 있다. 1호관은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절반 정도가 무너졌다.
관동대지진 때 요코하마의 대부분 붉은 벽돌 건축물이 무너졌다. 그런데 이 창고만 버텨 남아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것이다. 붉은 벽돌은 개항과 함께 메이지시대의 근대화를 나타내는 건물양식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부터 대규모 컨테이너항구가 개발되면서 1970년대 이후로는 거의 폐허처럼 방치되었던 흉물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현재는 노스탤지어의 상징으로 각광받고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여전히 버림받은 곳이었지만 1990년대 후반 요코하마 시 당국은 낡은 창고이지만 든든한 이 붉은 벽돌 건물을 관광 상품화하기로 하였다. 창고로서의 공간적 기능은 사라졌지만 요코하마의 경관적 위치로서는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 해상수상버스 운항도 그림
유네스코, 문화유산 아시아태평양 유산상

이 창고는 요코하마만과 맞닿은 곳에 있다. 요코하마역에서부터는 수상버스를 타고 아카렌가 창고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 수상버스가 Sea Bus인줄 알았더니 Sea Bass로 표시되어 있다.
요코하마역에서부터 동쪽으로 돌아 미나토미라이(みなとみらい), 아카렌가(赤レンガ), 야마시타공원(山下公園)을 연결하는 바다에서 항만지구(Bay Area)의 명소를 바라보면서 요코하마의 주요 관광지까지 이동할 수 있는 특유의 해상 교통선이다. 표를 끊을 때는 탑승 거리만큼 요금도 달라진다. 요금이 좀 비싼 편인데 미나토미라이는 400엔, 아카렌가는 580엔, 야마시타공원은 700엔이다. 바다 쪽에서 경관을 보지 않으려면 걸어도 충분한 거리이다.
요코하마시청 무라카미 하루미(村上 温美)의 소개로 아카렌가소코 1호관의 공익재단법인 요코하마시예술문화진흥재단(www.yokohama-akarenga.jp)의 오구라 렌타로(小椋 錬太郞)를 만났다. 그의 명함에는 ‘붉은벽돌창고1호관 창건 100년’이라는 큼직한 글씨와 창고의 배경사진이 이채로웠다. 지난해 100년이 됐다고 한다. 그런데 명함에는 그의 직함이 없었다. 선글라스를 쓴 그는 상당히 나이 들어 보였다.

그는 “아카렌가소코는 문화의 창조와 발신 기지로서 요코하마의 상징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곳이고 ‘근대화’ 시기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주종을 이루면서 도시의 개성이 되었다”면서 “이를 활용한 시의 창조적인 문화도시 전략이 이제 그 성과를 내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에는 섬세한 복원작업과 도시재생의 계기가 된 점 등을 평가받아 일본에서는 처음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전을 위한 아시아태평양 유산상’ 우수상을 받았다. 1872년에 개설된 도쿄-요코하마의 철로를 그대로 살려 공원길을 만들고 이 창고는 철골로 내부를 보강하고 개조하였다.
3층까지 여러 전시장이 있는데 곳곳마다 다양한 전시가 열렸다. 필자가 방문했던 3월 무렵엔 미술대학 학생들의 졸업작품전이 열리는 전시장이 많았다. 뱅크아트에서도 요코하마국립대학, 달마미술대학 등 각 전공 학생들이 2월부터 3월 사이에 무려 10개의 졸업작품전을 진행 중이었다. 학생들의 수준을 넘어선 기발한 아이디어와 미디어아트를 보면서 우리 학생들과 자연스레 비교가 되었다.

▲ 아카렌가 소코를 안내하는 오구라 렌타로씨
100년 전의 기와, 작품으로 재탄생

2002년에 개장한 1호관이 미술관 및 전시장인 반면 2호관은 100여개의 레스토랑, 카페와 의류, 가방, 장신 구 등 화려한 쇼핑센터로 변신했다. 2개의 건물은 상호보완을 해주었다. 전시장에 온 관람객들은 2호관에서 물건도 사고 식사와 커피를 할 수 있는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두 개의 건물 사이에 있는 광장은 겨울이면 빙상스케이트틑 탈 수 있는 장소로 다시 한 번 변신한다.
아마도 요코하마를 들렸던 사람이라면 이곳은 대부분 한번쯤 거쳐 가기 마련이다. 우선 이곳은 나름 재미있다. 이제는 도시의 옛 향취와 예술공간, 관광명소란 세 가지 역할을 소화하고 있다. 특히 요코하마 데이트의 보석으로 알려진 아카렌가 창고는 드라마나 광고 등의 촬영지로도 인기 있는 명소이다.
이곳에서 바라본 미나토미라이의 대관람차나 요코하마 베이브릿지 등 요코하마의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위치가 또한 인기의 비밀이다. 그중에서도 2호관 2층의 발코니는 최고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이다.

오구라 렌타로는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지난해 창건 100주년을 맞아 아카렌가 창고 보존 개수 때에 철거된 100년 전의 기와를 사용하여 아트작품을 제작하여 판매 중이라고 말했다. 나는 아트 작품은 아니지만 기와 원형을 한 개 사왔다. 언젠가는 광주에서 아트 작품을 만드는 소재로 쓸 요량이었다.
유독 요코하마에 빨간 벽돌이 많은 이유는 요코하마가 개항항구로서 일찍부터 서양 문물을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를 개성으로 살리기 위해 요코하마는 도시를 빨간색 벽돌로 디자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시청 부근의 쿠스노키(楠樹)광장은 1974년에 완성된 요코하마 도시디자인의 최초의 사례이다. 바닥에 빨간색 길이 깔려있는 이 광장은 빈 땅에 조성한 것이 아니다. 요코하마시가 광장을 만들기 위해 도시기획을 통해 없었던 곳을 새롭게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인 곳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매우 의미 있는 공간으로 여긴다고 한다.
요코하마 시는 1971년 시 산하에 도시디자인실을 설치했다. 그 이후로 40여년 넘도록 일관되게 개성과 차별화라는 도시정책을 뚝심 있게 추진하면서 도시를 변화시켜 오고 있다. 특히 2003년 전문가로 구성된 ‘문화예술·관광 진흥에 의한 도심부 활성화 검토위원회’가 보고서를 낸 이후 2004년부터 문화예술도시창조사업본부를 만들어 문화예술에 의한 도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2011년에 문화관광국으로 격상됐다.

▲ 아카렌가 소코 전시장 내부 모습
▲ 아카렌가 소코 2호관 쇼핑몰 내부 창고 때의 철문미닫이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일관된 도시디자인 추진과 주민 참여

요코하마에서 배울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40여년 전에 도시디자인의 관점에서 요코하마의 발전에 관한 큰 밑그림을 그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10년 전에 문화예술이라는 차별화된 창조적인 발상으로 도시를 상품하고 있었다. 근대문물과 현대문명의 절묘한 조화는 요코하마가 갖고 있는 최대의 장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시민과 예술가들의 전폭적인 참여가 뒤따랐다.
이밖에도 3년마다 열리는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와 매년 열리는 ‘스마트 일류미네이션 요코하마’ 등은 요코하마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또 다른 매력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요코하마트리엔날레는 올해 8월1일부터 11월3일까지 89일간 열린다. 광주비엔날레와 기간이 중복되어 두 곳의 전시를 보면 동시대에 표현되는 차이점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스마트 일류미네이션은 지구친화적인 새로운 야경을 창조하는 예술이벤트로 5일간 도심항구 주변에서 열린다. 2011년 이후 예술가의 창조성을 살린 연출과 더불어 동일본대지진을 계기로 LED조명과 태양광 발전 등 에너지 절약기술의 활용을 주제로 매년 열리고 있다. 마치 광주에서 비엔날레 때마다 열리는 미디어아트특별전과 유사한 느낌을 갖는다.
이런 점을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우리 광주가 본받아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이름으로 개발 정책을 편지 꽤 오래 됐지만 광주의 모습은 변화되거나‘문화수도’를 지향했던 광주의 문화도시정책도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지 못한 채 갈팡질팡 하고 있다. 광주에 필요한 것은 요코하마에서 많이 배울 수 있다.
문화도시 광주로서 발판을 다지기 위해서는 민관합동의 문화도시 비전을 위한 큰 밑그림부터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화 관련 사업을 벌일 때마다 이를 추진하는 큐레이터나 감독, 전문가들이 자기들의 생각만을 담은 내용을 전개해 도시의 일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 반성해야 할 부분으로 여겨진다.

▲ 아카렌가 소코 야경
*아카렌가 창고의 역사
1911년 2호 창고(훗날의 2호관) 탄생
1913년 1호 창고(훗날의 1호관) 탄생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1호 창고가 반파
1989년 창고로서의 용도 폐지
2002년 항구의 활력과 문화를 창조하는 문화와 상업시설로 다시 태어남
201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보전을 위한 아시아태평양 유산상’ 우수상 일본 최초로 수상
2012년 아카렌가 창고가 다시 태어난 지 10주년
2012년 3월말 기준 5,700만명 돌파(현재는 8천만명 넘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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