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동포 이야기③ 그들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고려인 동포 이야기③ 그들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 박재완 시민기자
  • 승인 2014.07.17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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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땅에 흩어져 사는 우리의 또다른 이산가족 디아스포라(Diaspora). <시민의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박재완 시민기자는 고려인돕기운동본부와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 맞이해 모국초청행사를 위해 지난 6월 14일 러시아로 동행해 22일 함께 들어왔다.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 시민기자는 이미 지난 2011년부터 연해주를 다니며, 고려인 동포들의 영정 사진, 가족사진을 찍어주는 봉사활동을 해왔던 터라 고려인들과 알고 지내온 인연이 꽤나 있었다. 앞으로 고려인 이주사 뿐만 아니라 강제 이주에 얽힌 이야기, 독립유공자의 후손들의 이야기 등 함께 지내온 고려인 동포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를 총 4회에 거쳐 생생하게 전달한다./편집자주

그들은 지금 죽어 있는 것인지, 벌레처럼 살아 있는지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기차에서 내려 그들을 맞이한 것은 허허벌판, 갈대만 무성한 소금 투성의 황무지였다. 또 다른 일행들은 얼굴이 따갑게 내리치며, 천산에서 내려치는 삭풍을 감싸 안은 채 사막의 벌판에 패댕이 쳐 졌다.

그들은 요즘의 표현으로 산업폐기물 같은 소수민족을 중앙아시아 벌판에 버린 셈이었다. 이들 고려인들은 1937년 겨울을 그렇게 보내야 했다. 흙구덩이 팔 연장이 없어, 깨진 사금파리 쪼가리와 웅덩이의 조개껍질을 주어다 손톱이 빠지도록 바람 피할 구덩이와 갈대를 엮어 바람막이를 하면서 한 해를 보냈다.

그렇게 몇 십 년 같은 그 해의 겨울을 보낸 것이다. 그들은 그해 겨울동안 40일간의 기차여행에서도 이긴 질긴 목숨을 토굴생활 하면서 웅덩이 물을 마시는 등의 환경에 의한 풍토병으로도 세상과 이별을 해야 했다. 그래서 옛 토굴의 흔적 주변에는 해가 뜨는 방향으로 원동(遠東) 즉 6,000km 떨어진 연해주를 향하여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바라보며면서 영면했다.

이런 고통 속에 그들은 너무 억울했고, 왜 내가 여기서 있어야 하는지를 몰랐다. 1938년 한 소년이 스탈린에게 쓴 탄원서이다.

"저는 빨치산 대원에 아들입니다. 내전 때 저희 아버지는 일본인에 의해 살해 되었습니다. 저는 16세 한인으로 소비에트학교 8학년까지 다녔습니다. 극동구에서 이주할 때 당기관과 내무인민위원부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인 여러분, 중앙아시아의 자치주로 이주 됩니다.' 우리는 이 통보에 매우 기뻐했지만,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집도 없는 이주민들은 수없이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공부를 못하고 있고 한인학교와 신문은 없어 졌습니다. 만일 우리가 여기서 어렵게 힘들게 살 것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우리는 거기 극동에서 죽었어야 했습니다.

왜 우리를 극동에서 죽이지 않았습니까? 수많은 한인들이 이주 후에는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병들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전체 부서가 동지의 손에 달려 있으며 우리의 목숨 또한 동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원하신다면 우리를 죽여주십시오.
우리에게는 잘 살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도 없습니다.

마학봉"

이 16세 소년의 절규는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 국가문서 보관소에서 근래 공개 된 것이다. 그들의 현실은 절망과 고도의 극한에서 살아가야 했다. 삶의 터전과 한민족문화 말살정책을 실시하면서 노예로 전락된 삶을 살아가야 했다.

이들은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할 때 까지 16년간의 그들은 집단농장에 생활하면서, 맨 황무지를 황금의 벌판을 만들어, 수많은 모범 콜호즈(kolkhoz, 옛 소련의 농업생산협동조합, 집단농장)를 탄생시켰다. 소련에서 자랑하는 콜호즈는 모두가 고려인들이 만들었다.

소련 전역의 노력영웅은 약 1,200명 정도인데 고려인이 약 750명 정도였다. 그중에서도 ‘스베르드보프 콜호즈’에서는 21명의 영웅이 탄생했다고 한다. 심지어 사람이 노동인 시절이라 다산의 영웅도 고려인이라 쓴 웃음이 나온다. 이에 대해 한운석 동포는 “지금 생각해보면 미련했다 싶기도 하다”고 술회한다.

1938년 11월 우즈베키스탄공화국 농업부장 바꿀린은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다음과 같이 보고서를 냈다. "타슈켄트의 고려인 거주 집단농장은 대단히 높은 영농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거의 불모지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확을 거두었다."

실제로 그들은 그렇게 황금의 땅으로 맨손으로 갈대숲을 베고, 수로를 팠고, 늪을 말렸고, 땅을 갈아엎어 씨를 뿌렸다.

그리고 짚과 갈대를 섞어 벽돌을 만들고 집을 지어 안정적인 삶을 찾으며 그날에 악몽을 씻어가면서 오직 영농에 대한 집념으로 그들의 영혼을 불살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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