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은 억울했다?!
문창극은 억울했다?!
  • 이홍길
  • 승인 2014.06.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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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대통령의 귀국을 기다리고 침묵의 칩거로 시간을 보내던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함으로서 문창극 쇼는 그 막을 내렸다. 대통령과 후보자의 팽팽한 긴장이 부담스러웠던 모든 사람들에게 잘 마무리된 한 편의 드라마였다. 후보자의 짐을 벗고 이제 야인이 된 문창극의 억울한 심정을 헤아려 본다.
먼저 문창극이 총리 자리를 자원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해본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지명된 영광에 그 표현은 여하간에 환호작약했을 그의 주변인들이 많았을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언론들이 난리다. 수년전에 교회에서 강론한 것이 빌미가 되었다. 언론의 집중적 포화가 그를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교인으로서 교회에서 그의 소박한 신념을 토로한 것이 꼬투리가 되어 재상의 꿈이 물거품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이조 500년을 허송한 것에 대한 시련으로 민족성을 바꾸기 위한 하느님의 뜻이었고, 남북분단 역시 하느님의 뜻으로 ‘온전한 독립을 주었으면 공산화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한국 사람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한 사람들로 일제하의 민족개조론자들의 인식과 괘를 같이 하고 있었다.
일제하에서 훈작을 받고 귀족원 의원까지 역임하고 해방 이후 반민특위의 친일 조사를 받는 도중 자살한 윤치호를 추앙해 ‘친일을 했지만 기독교를 끝까지 가지고서 죽었다고 말하면서 그가 영어까지를 아주 잘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일제하에서 우리 사회의 주류는 두말할 것도 없이 친일세력이었고 그들은 일제하 조선인 기득권 세력으로 3.1운동 이후 일본의 문화통치 시기와 내선일치 시기에 일제의 권력과 밀착되어 있었던 세력이었다.

그들은 증산계획과 문화정치 농촌진흥운동과 내선일치를 통하여 식민지 근대화를 촉진하였다. 민족주의 사가들에게 지배와 수탈로 인식된 식민지 근대화가 친일 기득권 세력과 그 후계들에게 있어서는 한국 근대화의 기초를 다진 행위로 인식되었다. 친일 근대화 과정에 발생한 과실들을 균점할 수 있었던 친일 기득권 세력은 그들의 정치 경제 사회적 행위가 전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그들의 존재가 부정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분단 건국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 현대사에서 이승만을 필두로 하는 냉전세력은 친일 기득권 세력을 골간으로 하고 있었고, 부일의 만주 군관학교 출신들의 5.16군사정권은 냉전세력을 주축으로 하는 반공 민주주의 세력이 되었다. 제2차 대전의 패배로 중단될 수밖에 없었던 친일 근대화가 일본 자본의 유입으로 그 종편의 휘황한 광휘를 뽐내면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게 되고 친일과 냉전의 주류세력들이 그 기선을 장악하면서, 그 확대 재생산한 것이 오늘의 한국이 아닐까?

친일과 냉전의 잔재들은 우리 사회 도처에 널려있고 그에 따른 언론들 또한 적지 않아 일제 찬양과 민족 폄하의 주장들은 좌.우 대립을 조장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문창극이 지명자로 선택되고 보편적 국민감정을 배려 못했던 과거의 소박한 소신이 재상되어 가는 길목 동티를 낸 것이다.
문창극과 같은 소신을 갖은 사람들이 널려있다. 후보자가 된 것이 뭇매를 맞는 모양새가 되었기 때문에 문창극은 ‘왜 나만 갖고 그래! 하고 억울해 할 수 있다. 국민 감정과 문창극의 경력과 출신을 소통의 자세로 고려하지 않은 지명이 보다 문제가 되어야 했다고 판단한다. 제발 잘못된 것은 반복되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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