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예술마을을 보다(12) 광주만의 브랜드형 예술마을 가능성
파리에서 예술마을을 보다(12) 광주만의 브랜드형 예술마을 가능성
  • 정인서 정성용 기자
  • 승인 2014.06.18 0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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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 바쁜 낙후지역 문제 ‘겉만 번지르르’

공공미술사업, 지역 특성 반영 없는 독자 작업 ‘형식적’
문화기획자, 주민과 소통 노력 관련기관 지원 뒤따라야

이번 기획취재는 광주에 예술마을을 만드는 데 있어 다른 도시와는 차별화된, 그리고 문화도시다운 선도형 예술마을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국내와 프랑스의 여러 도시를 방문하고 비교하여 대안을 찾는데 노력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취재 일정이 제작 여건상 짧은 일정으로 진행되어 심도 있는 취재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취재 지역과 관련된 책자나 관련 기관의 자료를 참고하는가 하면 현지 작가나 주민 인터뷰를 통해 보완하였다.
물론 현지에서 만난 사람이 그 지역의 대표성을 갖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더라도 현장 분위기를 보고 인터뷰를 통해 어느 정도 예술마을의 상황을 알 수는 있었다.
대체로 예술마을은 창조마을, 미술마을, 문화마을, 벽화마을 등 다양한 사업명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따라 사업명이 다를 뿐 이들 마을이 지향하는 바는 대부분 공통적인 목적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대부분 정부지원형의 공모사업을 통해 낙후된 마을 개선과 지역주민 참여를 통한 지역활력을 찾겠다는 취지다. 지난 2년여 동안 여러 기획취재나 행사 등이 있을 때마다 일부러 시간을 내어 가능하면 그런 현장을 방문할 시간을 가졌다.

“벽화사업은 절대로 하지 말라”

그리고 취재진이 내린 결론은 정부가 그동안 쏟아부은 예술마을 사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다름없는 사업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공모사업의 경우 일반적으로 정부 지원 5천만원과 해당 지자체의 매칭펀드 5천만원 등 1억원 정도로 1년 사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성과가 좋은, 아니면 보고서를 잘 써낸 사업에 대해 추가로 2년 정도 더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이런 사업의 종말은 대부분 비슷하다. 처음 시작할 때 제법 그럴싸해 보이지만 이내 2~3년쯤 지나면 사후관리가 안되고 작가들도 없고 마을 주민들도 참여의식이 떨어진 채 먹고 살기에 바쁘다는 대답만 나온다.

▲ 박지탁 전업미술가협회 광주지회장
박지탁 전업미술가협회 광주지회장은 낙후지역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은 좋은 의미를 갖는다면서 문화도시 광주의 경우 이런 사업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만 처음에 지역주민들에게 설명회도 갖고 참여를 권유하면 대부분 주민들이 한 두 차례 못이겨 참석하고는 그 뒤로 이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한다.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대상지역이 흔히 하는 말로 ‘달동네’이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먹고살기 바쁜 사람들인데 어떻게 시간을 낼 것인가. 또 벽화를 그렸다면 주민들이 사후관리를 하는 경우 전문적 지식이 없거나 작품의 유지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일쑤다. 그래서 행정적으로 사업을 정하고 예산을 내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업이 무엇인가를 오랜 시간을 들여서라도 알아보고 그들 스스로 필요로 할 때 지원해주는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통영 동피랑마을은 벽화마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다. 벽화를 하는 사람치고 이곳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도 한계는 있다. 윤미숙 푸른통영21 사무국장은 이곳에 사는 지역주민들 가운데 상당수는 그야말로 ‘먹고 살기 빠듯한데’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벽화를 그렸더니 사람들만 북적이고 시끄러우며 주말에는 잠 한 숨 청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필자에게 귀뜸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벽화는 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지역작가와 주민 자발적 참여 관건

▲ 박선정 동아시아문화도시추진위원회 기획단장
결국 겉모습만 바꾸고 속은 그대로 있다면 그것이 바뀐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김정희 지역문화교류재단 운영위원장은 지방정부의 특성이 가시적 성과창출이라는 점에서 여기저기 사업을 벌려놓고 일방적으로 예산을 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보니 지역주민 유리된 사업시행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물론 주민공청회 형식으로 한 두차례 설명회를 갖고는 그들의 의도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공모사업이 이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이승찬 광주 515갤러리 관장은 대부분의 공모사업의 공고기간이 1~2주일, 신청기간은 최초 공고일로부터 2~4주일 내에 신청해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렇다보니 기획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지역 현황파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맞는 형식적인 기획서 작 성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이승찬 515갤러리 관장
박선정 동아시아문화도시추진위원회 기획단장은 광주에서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은 정부에서 붙여준 말일 뿐 아시아 어느 국가에서도 인정해주는 말은 아니다고 지적한다. 다만 상징적으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성장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는 할 수 있다.
박 단장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고 이름 붙인 큰 건물을 짓는다고 해서, 2023년까지 상당한 예산을 투입해 광주의 주요 지역을 개발한다고 해서 광주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광주는 베이징이나 상하이, 요코하마 등에 비해 문화예술적 기반시설이나 작가들의 활동이 충분하지 않다.
박 단장은 그렇지만 올해 광주가 지정된 동아시아문화도시라는 이름은 현재 한중일 세 나라가 인정한 도시명칭이다고 말한다. 앞으로 아시아 전역의 국가로 이 사업이 확대될 예정으로 있는데 그렇다면 훨씬 그 명성이 인정받을 것이다. 그리고 오는 11월 미디어아트창의도시를 예정하고 있어 유네스코로부터 인정받는 예술도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광주가 거기에 걸맞은 문화도시인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사업은 지역작가들의 참여도가 어느 정도인가를 스스로 물어봐야 한다. 또 이에 앞서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은 지역작가나 지역주민에게 얼마나 소통의 공간을 내주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한다.

협업형 예술창작 공간 운영 바람직

▲ 정철 동신대 교수
박지탁 전업미술가협회 광주지회장은 지금의 광주는 국제적인 미술행사를 세계 어느 도시 못지않게 치르고 있지만 행사 자체에만 치중하는 행정편의주의가 만연하다고 지적한다. 또 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비엔날레까지의 동선에 대한 지역공동체의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행정가들은 가시적인 단기성과에만 집착하고 지역작가들은 이기주의가 팽배해 문화도시다운 동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기획자도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그는 광주에서 10여년동안 작가로 일하면서 문화도시 브랜드를 만드는 데 일조하기 위해 문화기획자로서 선배들과 함께 때로는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단적으로 지역작가들은 이기주의 때문에 발전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어떤 문화예술사업을 하는데 있어 대부분 일정 수준까지는 일을 합심하며 하지만 어느 선을 넘기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딴주머니’를 차기 때문에 통일된 의견을 내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고
▲ 김미숙 조선대 무용학과 교수
말한다.
여기서 딴주머니는 자기만의 아집에 빠진 작가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점을 말할 수 있다. 이어서 자기가 옳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양보하지 않고 오히려 흔들어 사업 자체를 포기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김미숙 조선대 무용학과 교수는 광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마을 사업들이 대부분 미술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예술에 대한 편식이라고 말한다. 탄약고를 옮긴 뒤 국제예술창작촌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다양한 예술영역이 함께 모여 협업을 통해 새로운 창작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 철 동신대 문화관광대학 학장은 우리 지역 예술가들은 정부나 지자체 지원에만 지나치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가야할 길과 제 몫을 다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자신이 속한 지역이나 단체의 문화예술적인 내용물을 채울 수 있는 데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문화기획자가 상주하면서 주민들과의 끝없는 소통을 통해 예술마을을 만들어가는 노력과 관련기관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마을단위 프로그램 지도로 이루어져야

▲ 김정희 지역문화교류재단 운영위원장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각종 예술마을은 대부분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주민의 자발적인 참여와 관심이 없는 사업은 한 두해 지나면 열기가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유명하다고 소문난 예술마을에 가보면 다른 마을과 비슷할 게 없는 사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 리옹의 씨테크레아시옹의 명제가 ‘벽화는 사람의 피부와 같다’라고 했던 것처럼 지역의 특성에 맞는 사업을 하되 시간을 두고 주민 스스로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프로그램 지도를 해주는 선에서 그 역할을 다해야 한다.
프랑스 파리 인근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고흐가 불과 70여일 살았지만 이 당시 만든 작품이 무려 77점이었고 죽은 뒤에 유명해져서 덕(?)을 본 마을이다. 또 모네의 지베르니, 밀레의 바르비종, 세잔의 액상프로방스, 샤갈의 생폴드방스 등은 예술가를 통해 유명해진 마을이다.
광주에도 수많은 예술가를 배출한 양림동이 있고 지산동의 오지호, 무등산의 허백련, 소촌동의 박용철과 같은 예술가를 활용하는 마을형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인 서창이나 양과동은 예술공장 개념으로 접근해도 될 성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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