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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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숙/시인
  • 승인 2014.04.3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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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님들께

                                                                                           전숙/시인

기도하자는데,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가 나오지 않는다
무슨 양파 껍질도 아니고
벗길수록 캄캄해지는 나라에서
파렴치한 선장에게 화를 내다가
더딘 구조작업에 화를 내다가
입만 떠다니는 방송에 화를 내다가
불법 개조한 선박회사에 화를 내다가
어두운 양파나라의 새카만 발톱인 나에게 화를 내다가
盡人事待天命이라는데
파수꾼처럼 제 자리를 지킨 사람이 아무데도 없어서
하늘에 간구할 염치가 없어 기도도 할 수 없고
곡비처럼 한바탕 통곡을 해야 숨이 쉬어질 것 같은데
뒤집힌 세월호처럼 숨길이 막혀서 울음도 나오지 않는다
꽃망울 같은 우리 아이들을 안고
절망의 파도에 휩쓸리다가 깨어나는 악몽의 연속
악몽에서 혼자만 깨어난 게 또 악몽이어서
스치는 바람까지 백두대간이 누리누리 앓고 있다

의인이 열 명이면 소돔과 고모라도 구한다는데
세월호 침몰은 막장드라마로 끝나는가 싶을 때
어둠을 뚫고 피어난 희망이 있었다
제 자리를 지킨 꽃들이 하늘길을 열어 주었다
박지영 승무원이 숨길을,
남윤철 선생님이 기도길을,
강해성 승무원이 눈물길을 터주었다
여섯 살 여동생에게 구명조끼를 입혀
침몰해가는 배 밖으로 밀어낸 일곱 살 오빠의 고사리손,
‘엄마, 말 못할까봐...사랑해.’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우리의 아이가
마지막 숨결에 띄워 보낸 마침표는 사랑이었다

진흙수렁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피워 올린
몇 송이 연꽃의 향기가 의인이 되어
위로 받아야할 꽃들이
길을 잃은 우리를 위로하고 있다
주먹 몇 번 쥐었다 펴면 오늘의 아픔을 까맣게 잊고
또 다른 세월호에 어린 꽃망울을 떠나보낼
양은냄비보다 더 얇은
양파껍질들의 숨길을 열어주고 있다

제 자리를 지킨 어여쁜 꽃망울들아,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한 미운 어른으로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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