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을 넘어 희망을 찾아(2)- 홍암 나철과 대종교
절망을 넘어 희망을 찾아(2)- 홍암 나철과 대종교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4.03.2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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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홍길 고문

홍수전의 탄생도 예사롭지 않아 그가 태어난 날, 온종일 서기가 그의 집을 비추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다 극적인 것은 홍수전이 수차례에 걸친 과거에 낙방하고 나서 노독탓이었던지 잇달은 과거 실패에서 오는 좌절감 때문이었던지 병이 나서, 40여 일간의 와병생활을 하는 가운데 생생한 환상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청의동자와 선녀의 안내로 천부와 천모 그리고 천형을 환상 중에 만나게 되고, 천부의 질책을 받아 줄행랑치는 공자를 목격하기도 한다. 천부 하느님은 인간은 하느님이 만들었는데 은혜를 배반하고 요마를 숭배하고 있는 것을 분노하면서 검과 거울을 홍수전에게 당부한다. 요마는 현실의 청나라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환상을 경험한 것은 아편전쟁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43년이었다. 그런데 홍수전은 1934년 20세 때 선교사 윌리암 밀른의 시대를 께우치는 좋은 소식이 ⌜권세양언⌟ 으로 양아발에 의해 번역된 간추린 성경을 건내받았다. 그는 읽고 감명을 받았지만 잊어버렸는데. 2,3년 후에 병에 걸렸던 것이다.
1930~40년대는 내우외환으로 남부 중국의 사회 경제적 환경이 대단히 불온하였다. 홍수전이 속한 객가집단은 전통적인 소외집단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세력이었다. 현실에 있어서 돌파구가 필요한 그들에게 ⌜권세양언⌟의 복음은 환상으로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개인은 소외 속에 소멸해 버릴 수 있지만, 수 백년의 가난을 견뎌낸 역사적 소외집단으로 강한 유대감을 갖는 객가는 살기 위해서 현실을 돌파해야 했고 신약 구약을 통권으로 간추린 성경은 충분한 그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성경이 주는 정보는 환상 속에서 중국적 경험과 결합하면서 ⌜배상제회⌟라는 신정(神政) 관념을 형성하여 태평천국의 역사를 근대 중국사에 남기게 되었다.
고종 황제의 비서실장을 지낸 정환덕은 ⌜남가몽⌟ 이라는 일기를 남겼는데, 1904년말 노일전쟁이 일어나자 의정대신을 비롯 모든 대신들이 수채구멍으로 빠져나가던지 담을 넘어 도망쳐 그림자도 찾을 수 없는 현실을 쓰고 있다. 내로라하는 산림처사로 천거된 선비가 내놓은 구국책은 겨우 “폐하께서는 독서를 게을리하지 마옵소서” 였다.
비탈에 두어도 반반한 말씀이 있다는데, 책 잡힐 일 없는 진언이 분명했겠다. 한국 정부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일제는 강압으로 한일의정서를 체결하여 일본군은 한국 내에서 마음대로 군사행동을 할 수 있고 일본의 시정 개선 요구를 한국은 무조건 수용하게 되었다.
한국의 군사권 재정권 외교권을 빼앗은 이등박문은 을사조약을 체결하는 마당에서 “차제에 폐하께서는 한번 일본을 유람하시기 바랍니다. 관광할 것이 많습니다” 하고 진언하는 꼬락서니도 모자라 조약안을 거절하면 중대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 협박한다.
고종은 “짐이 이 나라를 위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받아 드릴 수 없다” 고 버텼지만 이완용을 필두로 을사오적이 가표를 던짐으로써 을사보호조약은 비준되고 말았다. 장지연은 황성신문을 통하여 “단군과 기자 이래 4000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돌연 멸망하고 말았구나. 오호! 아프고 아프도다. 오호! 분하고 분하도다”고 울부짖었다.
고종은 끝까지 승인하지 않았지만 일제는 한국 황제의 승인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약이 성립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국새를 빼앗아 찍고 황제의 성명까지 위조하여 무력으로 성립시킨 조약은 국제법상 무효이지만, 그것을 관철시킬 힘이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 천추의 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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