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문화도시를 가다(6) 취안저우 5- 개원사
동아시아문화도시를 가다(6) 취안저우 5- 개원사
  • 정인서 기자
  • 승인 2014.03.24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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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현종 칙명으로 세워져
중국 최대의 쌍석탑 그대로 간직해
▲ 개원사 인근 상점가에서 쌍탑을 바라보는 야경은 고혹스러운 맛을 풍겨낸다.

취안저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1327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개원사(開元寺)이다. 택시를 타고 개원사에 내려달라 했다. 좀 늦은 시간에 택시가 내려준 곳에 도착했더니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쪽문만 열려 있다. 입장료는 10위안이었는데 아무도 없다.
안에는 관람객이 있었고 일부는 나오는 중이었다. 그래서 발을 들이 밀었는데 한 스님이 관람시간이 끝나 들어올 수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 왔는데 좀 봐달라”, “금방 휙 둘러보고 사진만 찍고 가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 다음 일정 때문에 이곳을 보지 못하면 큰 일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하는 수없이 난간형 석조 담을 따라 걸으며 안을 들여다봤다. 유명하다는 쌍탑도 보였다. 밖에서라도 사진을 찍었다. 왔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였다. 코너를 돌아 좀 걸었더니 개원사 정문 같은 곳이 보였다. 역시 그곳도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안을 들여다봤다. 천왕전과 같은 모습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위엄있게 사천왕상의 모습을 한 조각상 2개가 양 옆을 지키고 있었다. 한 스님이 있었다. 안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절 안으로도 들어가라고 했다.
오른쪽에는 매표소가 있었지만 매표 시간이 끝난 탓에 그냥 들어갈 수 있었다. 개원사는 1961년 푸젠성 문물보호구역, 1982년 중국의 중점문물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300여년의 역사 간직한 개원사

▲ 푸젠성 문불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는 표지석
개원사는 서기 686년에 처음 축조된 사찰로 알려져 있다. 1300여년의 역사 동안 연화사, 흥교사, 용흥사라는 이름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오른 편에 뿌리가 붙어있는 두 그루의 노송이 그 역사를 보여주는 듯 했다. 절 마당에는 중국의 어느 절이나 그러하듯이 묶음 향이 가득한 큰 향로가 있고 빨간 양초를 놓는 곳이 있었다.
개원사는 거부 황수공(黄守恭)이라는 사람이 땅을 기증하여 이 절이 만들어진 것으로 전한다. 이 사람이 취안저우 황씨의 시조라 한다. 그의 선조인 황원방(黃元方) 때 지금의 푸젠성 남부지역인 민남(閩南)으로 이주해왔는데 황수공이 취안저우에 정착했다.
당(唐)나라 때인 738년 현종(玄宗)의 칙명으로 다시 건립되었는데 이때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푸젠성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최대의 절인 개원사는 웅장한 규모와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는 데 뤄양(洛陽)의 백마사(白馬寺), 항조우(杭州)의 영은사(靈隱寺), 베이징(北京)의 광제사(廣濟寺)와 이름을 나란히 한다.

취안저우 서가(西街)에 위치한 개원사는 푸젠성 ‘베스트 텐(十佳)’ 명승지이며,또한 취안저우 18경 중의 하나에 들어가는 곳이다. 구도가 안정하고 웅장한 사원 건물로 군락을 형성해 제법 큰 절이었다는 점을 느끼게 만든다. 중앙으로는 자운병(紫云屛)과 천왕전(天王殿), 배정(拜亭), 대웅보전(大雄寶殿), 감로계대(甘露戒台), 장경각(藏經閣) 등이 있고 양 옆으로 몇몇 건물들이 있다.
개원사는 단순히 사찰 규모가 큰 것이 아니라 구조가 대칭적이며 매우 엄밀하다. 지금 보존된 개원사(www.qzdkys.com)는 남북 260m, 동서 300m, 면적은 78,000㎡이다. 산문을 들어서면 배정(拜庭)이 있는데 배정은 전부 돌로 깔았으며 그 면적은 2,800㎡이다. 배정의 끝머리는 바로 대웅보전이다.

▲ 개원사 배정과 대웅보전
대웅보전은 금빛 휘황하며 기백이 비범하다. 86개의 돌기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백주전(百柱殿)이라 하며, 이 건물을 지을 때 자주빛의 구름이 자욱하게 건물을 덮었다고 해서 자운(紫云)대전이라 말한다. 대전 앞에 있는 댓돌에는 사람 머리에 짐승의 몸을 가진 72개의 청석조각과 대전 뒤 복도 처마 아래에 고인도 신화를 조각한 청석주는 특색있는 유물이다.
대웅보전은 일존불 혹은 삼존불을 모시는 다른 절과는 달리 오존불이 있다. 중앙에 석가모니상이 있고 그 양쪽에 남방의 보생불(寶生佛)과 서방의 아미타불, 동방의 아촉불(阿閦佛), 북방의 성취불(成就佛)이 모셔져 있다. 5개 불상은 오방불(五方彿)이라고 하는데 동서남북중 5개 위치를 대표하는 것으로 공간의 개념을 넓혀서 온갖 대지가 부처의 보살핌을 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중국, 인도, 서양의 문화가 융합한 곳

대웅보전의 대들보에는 사람 머리에 새의 몸을 가진 24개의 묘음조(妙音鳥)가 장식되어 있다. 인도 불교와 서양의 천사, 중국 고대 예악무(禮樂舞) 등 서로 다른 세 곳의 문화가 융합된 고대 취안저우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 24개 비천(飛天)은 1년의 24개 절기를 대표하며 그들의 머리에 있는 화관은 지탱 작용을 하여 건축과 예술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개원사에는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도가 있다. 중앙 광장 양 옆으로 동쪽과 서쪽 광장에는 40m가 넘는 석탑이다. 진국탑(鎭國塔)과 인수탑(仁壽塔)이라 불리는 쌍탑이다. 중국에 현존하는 쌍석탑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개원사 쌍탑 중의 하나인 진국탑
1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그룹들이 있다. 그들이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할 뿐이다. 또 다른 탑 밑에서는 4명의 노인들이 탁자에 앉아 마작을 즐기고 있었다. 한쪽에는 사람들이 보든 말든 아랑곳 않고 건강 체조를 하는 한 노인이 있었다. 사진을 찍겠다고 말하자 포즈를 취해주었다. 역시 중국인의 전형적인 일상 생활 모습이다.
쌍탑은 8각 5층으로 팔각형으로 된 탑에 무사와 천왕, 금강, 나한을 비롯해 384점의 정교한 석각이 새겨져 있다. 현재 중국에서 제일 높고 제일 큰 목질구조를 모방한 누락식 석탑이다. 옛 도시 취안저우의 상징이며 중국 고대 석조건물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진국탑은 당나라 860~873년 간에 건립되었다. 원래는 목탑이었으나 남송 때 훼손과 복원을 거치면서 1238년 석탑으로 재건되었다. 높이 48m에 이르고, 지름 18.5m, 각 변의 길이는 7.8m이다. 탑신 아래에는 낮은 수미좌(須彌座) 형태의 기단(基壇)이 있고, 기단의 아래위로 연꽃과 권초(卷草)가 각각 1층씩 새겨져 있다. 8개의 전각부(轉角部)에는 큰 기단부를 떠받치고 있는 역사상(力士像)이 각각 1개씩 조각되어 있다. 탑신(塔身)은 외벽, 외주랑(外走廊)과 내회랑(內回廊), 탑심주(塔心柱) 등으로 나뉜다.

그리고 인수탑은 오대십국(五代十國)의 양(梁)나라 때인 916년에 건립되었다. 진국탑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목탑이었으나 훼손되어 남송 때 석탑으로 재건되었다. 높이 44m가 넘고 형태와 구조는 진국탑과 대체로 비슷하다. 탑찰은 대표적인 누각식 탑의 금속 탑찰 형식으로 매우 매끈하고 수려하다. 철제 탑찰이 우람하고, 탑 꼭대기의 8각 수척(垂脊)에 8개의 쇠사슬을 늘어뜨려 보호하고 있어 듬직한 느낌을 준다.

옛상가 거리 불빛 고혹스러워

▲ 상점가의 한 잡화점 안에는 조상의 은덕을 입는다는 뜻으로 돌아가신 선친들의 사진을 걸어놓았다.
개원사는 가능하면 해가 질 무렵에 보는 게 훨씬 멋있다. 폐문 직전에 들어가 1시간여쯤 둘러본 뒤에 정문으로 나와 왼쪽으로 향하면 허름한 2층 구조의 상가건물이 5백여m쯤 즐비하다. 상점은 판잣집마냥 허름해도 제법 괜찮은 물건들로 가득하고 어둠이 내리면 고혹스러운 불빛에 어울려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개원사가 큰 사찰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래전부터 시가지가 형성된 것으로 보였다. 그 거리에서 석양 빛이 비치는 개원사를 바라보니 쌍탑이 어우러져 그 풍치를 더했다. 상가를 걷다가 헌책방도 돌러보고 허름한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었다. 깨끗한 식당은 아니고 입맛에 잘 맞지는 않았지만 둘이 배불리 골라 먹어도 우리 돈 3천원이었다.

한 잡화점은 문은 닫혔지만 열린 옆문 사이로 들여다보니 가족 사진이 걸려 있었다. 돌아가신 4분의 할아버지 할머니 초상이었다. 상점 주인은 조상들이 상점 번영을 도와준다고 했다. 그렇게 5백여m 쯤 걸어가니 이내 서양식 시계탑이 나타나고 그 뒤로 뻗은 거리에는 현대식 석조건물 상가 사이로 승용차와 버스가 뒤엉키며 운행을 했다. 마치 다른 세계로 금세 건너온 느낌을 갖게 만든다. 그러다가도 조금만 옆으로 비켜 가면 전통적인 중국 가옥이 있는 주택가로 빠져들기 십상이다.

지난해 9월 27일 광주 빛고을시민문화관 공연장에서는 한중일예술제 공연이 열렸다. 동아시아문화도시로 선정된 3개 도시의 축하공연과 같은 행사였다. 더욱이 취안저우는 3개 도시 가운데 불과 1개월여 전에 선정된 도시였는데 발빠르게 공연을 준비했다.
취안저우의 공연 가운데 ‘망석중 인형극’은 정월대보름의 번화한 밤거리에서 아주 오래된 거슴 치기 춤, 편고 춤, 사자 춤을 추는 사람들이 서로 기예를 겨루고 있다. 못생긴 여인이 미녀로 탈 바꾸는 것도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꽃등들 밑에 거리구경 하러 몰려나온 각양각색 사람들의 생기 넘친 모습이 보인다. 망석중 인형극은 독보적인 절기로 송나라와 원나라 때 취안저우항만의 번화가를 보여 준다.

또 ‘개원비천’이라는 독무는 개원사 본당의 대들보 위에 하늘을 빙빙 돌며 날고 있는 24명 천인들의 축소판이다. 선녀들의 하늘거리는 치맛자락, 공중에서 선회하는 리본, 춤추는 우아한 자태가 당나라와 송나라 시대에 ‘동방 제일 항만’이었던 취안저우의 광대한 성황을 나타낸다.
앞으로 광주와 취안저우는 문화교류를 통해 우리가 더 가까이 다가야 할 도시이다. 관심을 가져야 문화적 자원을 살펴보고 우리에게 무엇이 있고 그들과 어떤 교류를 해야할 지 늘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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