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길 공원(1) 추억 속 기찻길 공원으로 탈바꿈
푸른길 공원(1) 추억 속 기찻길 공원으로 탈바꿈
  • 박재완 시민기자
  • 승인 2014.03.2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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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날이면 가족과 함께 거닐어볼만

▲푸른길 공원 농장다리 근처에서 주말이면 공연을 펼치고 있는 재능 기부자들
'기차길옆~오막살이~ 아기아기~잘도 잔다~ / 칙~폭~칙칙~폭폭~칙칙폭폭~칙칙폭폭 / 기적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

초등학교 음악책에 나온 윤극영 작곡, 윤석중 작사의 동요로 40대 이후들이 가장 애창되어온 동요다. 동네마당에서 이 동요를 부르며 새끼줄로 네댓 명이 기차놀이 하며 이 골목 저 골목 쏴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생각이 난다.

기자가 진월동에서 철길 근처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새벽 4~5시 사이면 어김없이 육중한 무개의 화물열차가 지가나면서 흔들리는 진동과 소음에 잠을 깨어주는 괘종시계 역할을 하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철마(鐵馬) 역사를 살펴보자. 1894년 7월 최초로 철도업무를 관장하는 기구인 ‘철도국’을 대한제국 말기 만들어지면서, 열강들의 이권다툼이 본격화 된다. 미국의 제임스 R 모스가 경인선 부설권을 획득, 1897년 3월 29일 인천 우각현(牛角峴-지금의 도원고개)에서 경인선 기공식을 했으나 자금난으로 공사를 중단했다.

이후 일본인의 경인철도회사(京仁鐵道會社)가 부설권을 인수하여 1899년 4월 공사를 재개, 같은해 9월 18일 인천 제물포∼노량진 사이의 33.2km를 개통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열차인 ‘칙칙폭폭’ ‘모갈1호’가 시속 20~30km로 운행을 시작했다.

또한 호남선 1910년 1월에 대전에서 시작하여 1914년 1월 목포에서 호남선 구간이 완성이 된다. 그리고 광주선은 1921년 4월에 착공하여 1922년 7월에 광주역인, 광주 동구 대인동 현재는 동구 소방서 건물에서 완공되어 (광주송정)송정리-극락강-운암역-광주간 열차가 다녔다.

1922년 12월에 광주-망월-장산-마항-담양까지 전남선(담양선)이 개통되어, 약 22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잘 다니다가 결국 1944년 2월에 전쟁물자인 鐵(철)부족으로 철로가 공출 당하며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1936년 광주선(송정리-여수)이 개통되고, 근 30여년 후인 1968년 진주-순천 개통되면서 비로소 경전선이 완공됐다. 광주 동구 대인동 광주역을 출발한 기차는 현재는 대인시장통을 거쳐 계림오거리 속칭 나무전거리에서 갈라진다.

그중 하나는 망월-장산-마항-담양 경유하는 담양선이며, 또 하나는 광주교도소 인근의 농장다리쪽을 지나 남광주-벽도-효천-남평-화순을 경유 여수방면으로 가는 철길이었으나, 1969년 광주역은 대인동 시대를 마감하고 북구 중흥동 현 역사로 옮겨진다.

그렇게 광주의 도심을 반 바퀴 정도 도는 철길이 있었다. 그것은 경전선 철길로 광주송정-극락강-광주-남광주-효천으로의 철길이다. 근대화 시대에 이끌었던 철길은 1922년부터 2000년까지 78년 동안 다녔으나, 도심의 팽창과 소음 그리고 사고 등으로 인한 기찻길 옆 동네들이 슬럼화가 진행됐다.

이후 주민들이 철도 이설을 요구해 광주송정-서광주역-효천으로 실현됐으며, 광주 도심에는 길이 10.8㎞, 너비 8~26m, 면적 16만5000㎡인 띠 모양의 기찻길 터만 남게 됐다.

그리고 2002년 5월 광주역~동성중 7.9㎞의 폐 기찻길이 ‘푸른길 공원’으로 지정됐다. 기찻길이 공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요즘 같은 화창한 날이면 푸른길 공원에 가족과 들러볼만 하다. 걷기 편한 포장길에 곳곳에 쉼터와 생태공원, 그리고 곳곳에서 공연도 있어 주말을 즐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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