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말 사잇길-건더꿀 아짐
전라도 말 사잇길-건더꿀 아짐
  • 시민의소리
  • 승인 2001.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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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말에 많은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나는 그다지 전라도 말에 자신이 없다.

지금도 시골에서 오래 사신 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말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내가 사용하는 말을 어떻게 표기해야 할 것인지 난감한 때도 있다.

예를 들면 '-하면'이라는 말에 해당하는 전라도 말은 '-하믄'이나 '-하먼'인데, 딱히 어떤 것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 대개의 지역에서는 이 둘이 동시에 사용되기 때문이다.

내 주위에는 전라도 말에 관심을 갖고 즐겨 쓰는 분들이 꽤나 있다. 그중 한 분이 '건더꿀 아짐'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분인데, 일면식도 없지만 무척 살갑게 느껴지는 분이다. 그분이 얼마 전부터 내 홈페이지에 자신의 일상을 순 전라도 말로 올려 주신다. 나는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표기의 어려움에 대해서 고민을 하곤 한다.

적지금 나름대로 많언 생각덜얼 허고 살겄재만
카만히 생각해보먼 대부분으 사람덜언 밸 생각읎이 사넌것몬냥 뵈입디다


두어달 전에 그 분이 쓴 글의 서두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발음이 꼬인 분들이 상당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제법 전라도 말을 잘 사용한다는 사람도 막상 문자로 된 전라도 말을 읽기는 쉽지가 않다. 그분이 글이 너무 길기 때문에 부분부분 생략을 하고 넘어가는 무례를 범할 수밖에 없다.

그라긴 그라지라이 살었응께 살었재 어디 우덜이 살어온 것이 사람몬냥 갖추고 살았당가요
헌디 문제넌 동무덜얼 만나먼 자꼬 자석 자랑이나 허고 아즉도 자석 뒷바라지 꺽정허재 지 사넌 것언 안중에도 읎습디다
문 말이냐 허먼, 자꼬 자석이 무시 되야쓰고, 자석이 공부 잘해사 쓰고 허넌 말덜얼 허는디 지는 앙꿋또 안허드라 그 말이어라우


그분의 생각이 옳고 그름은 논외로 두고, 그분이 문자로 남긴 말들을 읽어 보라. 읽는다는 것은 그냥 뱉는 것하고는 다르다.

당신이 만약 전라도 사람이라면, 자기도 모르게 말로 뱉은 전라도 말을 종이에 옮겨 적어 보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자기 입으로 한 말을 자기 손으로 표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지넌 책도 안 보고 있음서 자석덜 헌테만 공부 안 헌다고 허드란 말이요
나도 그랬소야, 인자 아그덜이 많이 커부러서 그란 말도 잘 안 허요만
시상에 지넌 못헌 거슬 자석 한테 바라고 있다넌 것언, 가만 생각허먼 우스운 일이재라이


나는 그분의 글을 읽으면서 그분의 생활을 그대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곤 한다. 그것은 나름대로 많은 훈련을 겪은 탓이다. 몇 년간 가졌던 관심이 비로소 그 글들을 말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살아있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민중의 몫이지만,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나 같은 사람들 몫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솔직히 혼자서는 벅차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은 죽지 않는 말'에 관심을 갖고 기록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내게는 있다.

졑에 사람덜 보먼 돈돈돈 해싼디... 물론 이 나라에서 살라먼 돈이 질 중요헌 것 같습디다만

정말이지 많은 사람들이 돈돈돈 해대는 세상이다. 하지만 자신이 사용하는 말을 기록한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도 자신의 말을 기록하는 일에 동참했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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