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에 대한 관심의 향배(2)
인권에 대한 관심의 향배(2)
  •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 승인 2014.02.06 10: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홍길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고문
낙관은 희망을 주지만 모든 달관된 모습들이 그렇듯이 구체적 노력과 책임을 천연시킬 수 있다. 분단 60년에 남북 상호간에 켜켜히 쌓인 참담한 외상들이 쉽게 치유되어 극복의 새 모습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하고 곱씹어본다.

먹먹해 오는 가슴을 움켜쥔 채 시작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것이라는 자기 격려가 당위를 정당화하는 용약돌진의 주장을 내보이기도 하지만,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는 현실에서 당위를 앞세운 주장은 힘을 잃는다.

그럼에도 돌파구는 열려야 한다는 다짐 가운데, 인권은 정권들을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인민의 인간됨의 기본조건임을 불현듯 확인하면서 인민주권의 결과가 아닌 정치권력이 북돋은 인권은 역사적 사례가 없음 또한 확인한다. 인권은 인민들의 자기 몫이기 때문에 그 처분권도 결국 인민들에게 귀속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권이 대체적으로 자유권과 사회권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우선 남한의 인민들에 비해서 자유권 향유에서 뒤져 있는 북한 인민들의 자유권을 회복시킬 수 있는 원론적 사설이라도 거론해 보기로 한다.

분명 한반도의 주권자들인 이 땅의 인민들은 통일문제를 둘러싸고 자신들의 의견을 갖기 이권에 정치권력들에 의해서 오도되고 선동되어, 인민의 자결권을 정치권력들에게 찬탈당하고, 끝내는 그 폭력들에 압복되고 말았다. 과거를 돌이켜 보자. 과거 남한사람 북한사람은 조선 사람으로서 안재홍 선생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일제식민지 생활을 함께 겪고 유대감속에 살았던 우리들로, 언제든 환난상휼이 가능했던 이웃사촌들이었다.

억울한 그냥 백성들은 푸념이 길다. 그런데 해방이 되고 미군이 들어오고 소련군이 들어오고 38선이 생기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더니만, 사람들은 옛날처럼 그 자리에 그냥 있었는데도 빨갱이가 만들어지고 반동분자가 만들어지더니만 어느새 우익이 되고 좌익이 되고 말았다.

결코 우리들의 선택이 아니었다. 우리들 속의 극소수의 선택이었는지 부화뇌동이었는지 어느새 우리들은 투쟁의 유산을 떠맡게 되었다. 무연고의 유산 상속자들인 줄도 모른 채, 권력자들의 노끈 줄 노름에 일희일비 일소일로하면서 생래적으로 갈무리했던 사람다운 본성을 각가지 형상으로 구기고 말았다.

그런데 그냥 백성의 수준에서 짚어보기로 하자. 분단 60년의 세월 속에 나는 나의 아버지와 나의 형제자매들은 오늘의 현실과 오늘의 우리들을 만드는데 특별한 일도 결정적인 일도 하지 않았다. 결정력을 배분받지 못하는 조건 때문이었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분단의 조건들은 각가지 분단 증후증을 유발시켜왔다. 물론 남과 북에 분단을 향유하는 세력이 없잖아 있겠지만, 그것은 소수중의 소수일 것이다.

그런데 그 소수가 권력을 등에 업고 각가지 멜로디의 분단 찬가를 쉴 새 없이 부르는 통에 안보 증후군 미제 증후군이 창궐하는 가운데, 인민은 멘붕에 빠져 인민주권이 찬탈됨에도 불구하고 분단찬가 서울찬가 주체찬가의 미망 속에 아까운 우리들의 인생들을 낭비하고 만다.

이승만과 김일성이 국부이고 항일 장군인 것은 그들의 정치 자본이었을 뿐이다. 우리들에게 그들은 분단의 원흉으로 재인식되는 것이 마땅하고 그 결과 남북한에 걸친 인민의식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승만은 분단의 서막인 단독정부의 주창자였고 김일성은 한국전쟁의 원흉이었던 것은, 당신들의 호불호와는 상관없이, 역사적 사실이었다. 인민의 머리로 인민의 시각으로 우리를 다시 돌이켜 볼 때, 인민주권의 서막이 열릴 것이다.


최신 HOT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