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께 무렵이면 멥쌀을 한 두말 정도를 물에 불려 떡살을 앉히고 떡쌀이 적당하게 불면 소쿠리에 담아 지게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재 넘어 원동기 기계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는 방앗간으로 간다. 떡살을 곱게 갈아 떡시루에 쪄서 가래떡 만들어 2~3일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떡을 살짝 말려 떡국 떡으로 온 가족이 모여서 자르기 시작했다.
"어이구 우리 손지 잘도 묵네"
그곳에 따라가면 볼거리 즐길거리와 새 옷과 운동화를 얻어 신을 수 있었다. 장바닥의 먹거리가 지천에 깔려 구경하는 것만 봐도 재미였다. 강냉이나 콩, 쌀 등을 한되박 튀밥을 튀면 한 말 정도 양이된다. 왠종일 장터에서 움쭐거리면서 여기저기 싸다니며 구경을 한다.
할머니께서 차례 상에 올리려고 곶감이라도 사면 한 개 얻어먹으려고 칭얼거렸다. 장터 주막의 돼지고기 몇 점 들어가는 국수 냄새가 그리 맛난 냄새여서, 내말이라면 다 들어주시던 할머니에게 배고프다고 엄살 부린다. 그러면 난장 좌판에 쭈그리고 앉아 할머니는 ‘어서 먹어라 아이구, 우리 손지 잘도 묵네.’ 하시면서 돼지고기며, 국수발은 전부 건네주시며, 당신은 겨우 국물만 자시던 생각 떠오른다.
이맘때 쯤이면 따뜻한 날을 잡아 헌 기왓장 토막을 주워 곱게 돌 위에서 돌멩이로 절구질하여 고운 가루 내어 형들과 누나, 삼촌들은 마당에 덕석(멍석)깔고 가족이 둘러앉아 놋그릇을 짚과 기왓장 가루로 광택을 내기 위해 닦아낸다.
그리고 반짝반짝 광나는 놋그릇으로 설날 차례를 올린다. 놋그릇 닦는 것은 10살 무렵의 나에게는 꽤 힘 부치는 일이였다. 지푸라기에 기왓장가루를 묻혀서 빡빡 힘주어 닦아야 윤택이 나기 때문이다. 요즘은 놋그릇이 가정에서 없어져 그런 정겨운 풍경도 없고, 또 있다 해도 요즘은 기계로 닦기 때문에 그런 고생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근래 들어와 명절날 아이들이 오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큰 아빠 컴퓨터 게임 되요?’ 그렇지 않으면 TV 앞에서 논다. 어른들은 술상이 오고가고 하거나. 동양화(?) 삼매경에 빠진다. 옛날의 정겨운 풍경이 사라진 것 같다. 윷놀이하고, 연 날리고, 이집 저집 다니면서 놀았던 놀이문화가 핵가족이라는 명제에서 이젠 사라져 버렸다.
이번 설날에 제발 식구끼리 화목하게
최근에 경찰서 상황실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서울 같은 대도시는 명절의 범죄 유형은 빈집털이란다. 그리고 도농이 함께 하는 광주의 같은 도시의 경우 명절에 상황실 접수 1~2순위가 가정문제라고 한다.
명절 증후군으로 스트레스 상황에 빠진 부부의 가정폭력이 심하다고 한다. 시가에서 명절을 보낸 이후 다녀와서 다툼이 급기야 폭력으로 이어져 결국은 파국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 극적 화해로 칼로 물 베기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하나는 가족이 모여서 부모님 부양문제나, 재산문제로 변해 급기야 큰소리가 오고가고, 폭력이 휘둘려지기도 한다. 특히 부모님이 갖고 계시는 재산이 없으면 큰 불씨라고 귀띔 한다. 나이 드시는 것도 서러운데 오갈 때가 없는 것이 더더욱 문제이며, 특히 노부부가 환자라도 있으면 심각한 단계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씁씁한 현실에 내가 설자리를 잊어버린 듯하였다. 이번 설날은 청말(靑馬)의 해의 정월 초하루다. 우리도 말처럼 힘찬 도약을 하면서 웅비를 한번 틀어 봤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