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 김다이 기자
  • 승인 2014.01.21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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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 제 3기 이금례 할머니
무릎교육, 할머니의 그리운 ‘옛날이야기’
조손간 대화, 유아 인성교육 효과 ‘톡톡’

“옛~날 옛적에~ 키가 엄~청 큰 키다리, 물레방아를 돌릴 정도로 콧김이 쎈 콧바람, 아파트 집채만 한 짐을 질 수 있는 돌쇠, 백발백중 새를 떨어트리는 돌팔매 네 친구가 만나 길동무를 하고 길을 가고 있었답니다.”

깊어가는 밤 호롱불 밑에서 잠을 재워주려던 할머니의 무릎에 누워 들을 수 있는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 ‘옛날, 옛적에’라는 말만 들어도 벌써 눈이 반짝이고, 귀가 쫑긋 올라간다.

“우리 강아지, 여기로 와봐. 할머니가 옛날이야기 들려줄게~”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부터 함께 살아왔을 것 같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는 짧지만 그 내용 속에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덕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훈이 담겨있다.

재미있고, 무서운 옛날 이야기

▲이야기 할머니 이금례씨(72)
이처럼 할머니 곁에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무릎교육 만큼 아이들의 인성교육에 좋은 전통방식은 없다.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는 거의 제목이 없다. 이야기 속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이야기의 제목이다.

가끔 할머니의 이야기는 무서운 호랑이와 도깨비도 등장해 무서움에 치맛자락을 끌어당기기도 한다.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들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어 간다.

이렇게 재미있는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이금례(72)씨를 만나러 북구 연제동에 위치한 자택을 찾아갔다.

이 할머니는 미리 준비해 논 유자차를 건네며 따뜻하게 아랫목에 들어오라며 “뜨끈 뜨끈하게 군불 지펴 논 곳에 안거~ 따숩제?”라며 반갑게 맞이해 줬다. 설을 앞두고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찾아간 듯 한 포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할머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이 공개모집해 지난 2011년 제3기 이야기할머니로 뽑혀 3년 동안 활동해온 아름다운 이야기할머니다. 그녀는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전해 받은 재미있고, 오래된 이야기보따리가 가득했다.

이금례 할머니는 역시 일주일에 3번씩 알록달록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이야기책을 들고서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찾아간다. 귀여운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날에는 항상 설렘이 가득하다.

손자 세대에게 이야기 전달하는 역할

전남 담양군 수북면이 고향인 이 할머니는 어린 시절 늘 자신의 할머니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자라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할머니 사업에 더욱 애착이 간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 할머니는 “나 어릴 때는 할머니 무릎에 누워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륵 잠들곤 했었어. 근데 지금 애기들은 이런 추억거리가 없는 분위기 속에 살아가는 모습이 짠하지”라며 안타까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현대화가 급속화되고, 핵가족화 및 부모의 경제활동 증가로 유아기의 인성교육의 교육주체가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이다. 전통적인 인성교육 방법이 실종된 지금 아이들은 유해한 환경에 많이 노출 되어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성장해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줄 ‘꽃보다 아름다운 할머니들’이 나선 것이다.

이금례 할머니의 집 한켠에는 붓과 먹물, 벼루, 화선지가 가득했다. 평소 문인화와 서예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이 할머니는 보람 있는 일을 찾기 위해 광주 요한병원에서 호스피스로 봉사활동을 하며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고 한다. 북소리 북구명예주부기자로 활동하며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다 2011년 우연히 지인을 통해 ‘이야기할머니’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맞아! 딱 내가 해야 할 일이네. 옳지, 내가 찾던 게 딱 바로 이거네”라며 원서접수에 필요한 서류를 정성들여 작성하고, 마감 날에 맞춰 빠듯하게 우편접수를 했다고 한다.

그렇게 접수를 하고 나서 1차 발표가 난 후 더욱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1차 합격자 명단에 ‘이금례’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광주에서 전주까지 먼 걸음을 하면서 면접을 통해 ‘이야기 할머니’가 됐다. 이 할머니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안동에 있는 터라 2박 3일 교육으로 광주에서 안동까지 걸음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 할머니를 포함해 광주지역 1기로 50명이 선발됐다.

▲평소 문인화와 서예가 취미라는 이금례씨.
긴장과 설렘이 가득했던 첫날

교육이 끝나고 처음으로 유치원을 방문하기로 한 날. 이 할머니는 긴장감이 백배였다고 한다. 알고 있는 이야기 이외에 책에 있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로 외워서 아이들 앞에서 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떨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아이들은 너무 반갑게 이 할머니를 맞이해 줬고, “할머니~ 더해주세요!”라는 말이 쏟아져 나왔다.

이 할머니는 “유치원에 가면 아이들이 그렇게 귀엽고 예쁠 수가 없지. 한번은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한 아이가 달려와서 ‘와~ 이야기 할머니 오셨다~’라고 소리치며 와락 안기더니 반 아이들 전체가 달려와서 서로 안아 달라고 해서 넘어질 뻔한 적도 있어”라며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그리고 이 할머니는 주변 친구들에게 안 입는 한복을 대여해서 다양한 색상의 한복을 차려입고 간다. 집에 있는 한복만 해서 7~8벌 정도가 된다. 그녀는 아이들이 “할머니~ 왜 이렇게 예쁜 색깔 한복이 많아? 나도 한복 입고 싶어~하나 해줘~”라고 애교를 피우는 아이들을 볼 때면 너무 예쁘다고 한다.

그녀는 어머니 머리에 있는 이를 없애주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잔 효심이 지극한 주세붕이야기를 들려줬을 때는 너무 뿌듯했다고 한다.

이 할머니는 “주세붕 이야기를 듣고 나서 아이들이 어른들도 외우기 힘든 오륜가를 적어달라고 해서 종이에 곧바로 적어서 줬는데 너도나도 달라고 해서 깜짝 놀란 적도 있어”라며 “저 멀리 떨어져 딴 짓을 하던 아이도 달려와서 이야기가 끝나자 ‘할머니! 왜 이렇게 짧아요’라고 할 때는 다 듣고 있었구나 깨닫게 되었지”라고 설명했다.

미래세대 소통과 전통문화 전승 동참

이제는 멀리 떨어진 아이에게도 잘 들릴 수 있도록 눈빛으로 교감하며 사랑의 총알을 쏘고, 정성껏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아이들의 이름까지 외워가며 안아주고, 귓속말을 하면서 아이들과 교감을 한다. 가끔은 아이들이 하는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한다.

그럴때면 “애들이라고 모를 것 같지만 애들이 맞춤법 하나도 바로 잡아 줄 때도 있는데 그때는 정신이 번쩍 들지. 애들 앞에서 작은 말 실수도 하면 안 되겠구나 생각이 들면서 더 조심하게 돼”라며 아이들에게 오히려 배우는 게 많다고 한다.

앞으로 이 할머니는 “얌전한 아이와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멀리 떨어진 아이들도 진심을 담아 사랑을 많이 주면 다 통하게 돼있어”라며 “교훈적이고 재미있는 옛 이야기, 우리 주변의 미담을 들려주면서 아이들 인성함양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어”라고 조손간의 문화적 단절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였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학진흥원은 오는 2월 21일까지 만 56세(1958년생)에서 만 70세(1944년생)까지 여성어르신으로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제6기를 모집하고 있다./김다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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